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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① 북한강변 문호리나루터 - ( 2022.11.07 )

by the road of Wind. 2022. 11. 7.

북한강변 문호리나루터

- ( 2022.11.07 )

 

 

그동안 집에만 있었던 집사람에게 이 가을이 다가기 전에 북한강변 단풍과 바람을 쏘여주기 위해 경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나루터로 가보았습니다. 이곳은 마음이 답답할 때는 가보고싶는 곳입니다. 나는 이 문호리 주변의 경치를 아주 좋아합니다. 아름다운 북한강변과 주변의 산세, 그리고 그림같이 예쁜 외국의 휴양지 같은 곳같은 그런 아름다운 집들이 많아 이국적인 경치에 매료되곤 합니다. 

 

또한 이곳에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민물매운탕집이 있습니다. 나는 팔당호 건너편의 경기 광주 퇴촌면에 가면 엄지매운탕, 그리고, 양평군 서종면 북한강변에 오면 언제나 '숲속에 어부의 집'으로 가서 민물매기매운탕을 맛있게 먹습니다.  사실 나는 민물매운탕 생각이 나면 북한강변 또는 팔당호 근처 퇴촌으로 달려가곤 합니다. 아, 민물매운탕에 내 온몸이 반응하며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음식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는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집에서 먼저 북한강변 '양평 문호리나루터'  ( 경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752-2 ) 로 갔습니다. 이 나루터는 유서깊은 나루터입니다. 주변에 북한강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나루터를 중심으로 북한강변 상,하 부분으로 산책로가 아주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집사람과 나는 문호리성당 입구 아래에 차를 주차시켜 놓고 이곳의 북한강변을 조금 걸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어 서종면 '숲속에 어부의 집' ( 031-771-0255 / 경기 양평군 서종면 북한강로 941 (문호리 655-2)으로 갔습니다. 이집의 매운탕 맛은 일품입니다. 나는 늘 시키는대로 매기매운탕 (2인분 35,000원) 을 시켜 폭풍 흡입(?)을 하였습니다. 아주 잘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음식점 앞의 북한강변에도 조금 나가보았습니다. 이 집앞에는 북한강변  다목적광장이 있어 운치가 있고 산책하기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나서 서종면 수능리에 있는 황순원 소나기 마을로 가보았습니다. 이곳에는 황순원문학관이 있어 볼만하며, 주변의 시골 경치가 아주 서정적입니다. 황순원문학관은 오늘이 월요일로 휴관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잠시 바람을 쏘인 후에 산넘어 수능1리 마을회관 옆으로 가보았습니다. 이곳에서도 넓은 주차장이 있으며, 산길을 통하여 황순원문학관으로 넘어갈 수 있고 주변의 경치가 좋습니다. 나는 이곳 마을 구경만 조금 하다가 청계산 자락의 전원 마을이 계속 나오는 시골길을 따라 벗고개를 지나고 목왕리를 거쳐 양수리로 내려와서 신양수대교로 올라서서 서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주마간산격(走馬看山格)으로  시골 길을 달리며 바라보는 드라이브 였지만 보람은 있었습니다. 오랫만에 깊은 산골에라도 내려간 듯한 기분을 느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습니다. 가을 산은 낙엽이 떨어져 나가며 헐거워진 나무들이 겨울을 준비하는 것 같았습니다. 월동준비입니다. 이런 때는 스산한 바람 한줄기에도 마음이 외로워집니다. 집에 돌아오니 마음도 몸도 지쳐 조금은 피곤합니다. "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 하고 노래하던 옛 어머님들의 한숨 어린 가락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산   책 : 걸음수 5,134 steps, 거리 3.2 km, 소모열량 182 kcal, 소요시간 00:52 hrs, 속도 3.6 km/h, 기온 9℃.

 코   스 : 서종면 문호리나루터 - (북한강변 산책) - 문호습지(연밭)  - 소나무농장 - 남한강마트 - 문호리성당 -  '숲속에 어부의집'  (점심식사) - (북한강변 산책) - 서종면 황순원문학관 (소나기마을) - 서울.  

 

 

문호리 나루터:

 

문호리나루 곁의 새로 생겨난 커피숍

-> cafe 라온드뷰 (Raon De View) 전용주차장

 

 

넓은 땅, 잎이 떨어져 앙상한 나무들

 

 

앗, 문호리나루터

 

 

문호리나루터

 


문호리 (汶湖里 : 무너미, 무네미) : 본래 양근군 서종면(陽根郡 西宗面) 의 지역으로 무너미 고개 근처를 이른다. 문호리의 문은 더러울 문(汶)자로 쓴다. 작은 서울이라 불리울 만큼 선비들이 많이 모여들었으며 글 공부를 하느라 먹을 많이 갈고 그 벼루와 붓을 씻느라 물이 더렵혀졌다해 더러울 문자의 문호리라 이름지었다 한다. 1908년 양평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지방행정구역 통·폐합 조치에 따라 갈호, 수호, 영암, 갈맬, 길곡, 꽃대울, 율평, 내·외문호를 합쳐 문호리로 명명(命名), 오늘에 이른다. 문호1리 세부지명: 하문호 (아래 무너미) -> 면사무소 남쪽 마을 / 바깥마을 (골무케) -> 무너미나루터로 나가는 길가 마을. 

 

 양평군 서종면 행정구역: ->  (문호리, 도장리, 수입리, 노문리, 명달리, 정배리, 서후리, 수능리)

 

무너미나루터 (문호리나루터): 무너미 앞의 북한강 나루를 말한다. 문호리에서 양수리로 이어지는 도로가 개설되기 전에, 북한강을 건너 남양주시 조안면 고노골에서 서울이나, 양수리로 이어지는 도로를 이용하기 위하여 나룻배를 타던 곳이다. 뗏목으로 서울 뚝섬을 왕래하며 번창하였으나 육로 발전으로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나루터에는 공덕비(功德碑)가 둘 있는데 1876년(병자년)에 가난에서 백성을 살린 홍재철(洪在喆) 류종섭(柳宗燮)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140여 년 전인 서기(西記) 1880년에 주민들이 세운 비라고 한다.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세계 최초 ‘맹인박사’1호 강영우 박사 (1944 ~ 2012)가 태어난 곳이다. 서종면 문호리 806번지, 무너미나루터로 나가는 곳에서 태어났다. 서종초등학교 1학년 때, 6.25 사변으로 인해 강영우 부친이 소유한 배들이 모두 파손되었다. 그에 상심해 1957년 봄, 부친이 병환으로 타계하였다. 어린이 강영우는 13세에 어머니와 누이, 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호주가 되었다. 서종초등학교를 졸업(32회)하고 중학교에 진학한 강영우는 2학년 5월 어느 날 방과 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골키퍼를 맡아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즐기다가 상대편 친구가 찬 공에 눈을 맞았다. 후천성 소아녹내장을 앓았던 그는 이 사고로 실명하게 되고 이 시기 어머니와 누나도 잃은 강영우는 문호교회 도움으로 맹아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고 싶었던 강영우는 점자를 배우며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했다.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원서 접수도 거부당하기도 하는 등 곤란을 겪었으나 결국 연세대학교 물리대를 차석으로 졸업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해 2월, 10년전 맹아학교 시절에 함께 공부와 생활을 도와주던 석은옥과 결혼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 세계 첫 시각장애인 박사라는 타이틀을 얻은 강영우는 일리노이 주립대학 교수, 미국 부시행정부의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로 활동하였으며 국제로터리에서 해마다 한 명씩 선정해 시상하는 지구촌인권봉사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미국 인명사전 세계 인명사전에 수록되어 있는 강영우는 《어둠을 비추는 한 쌍의 촛불》, 《빛은 내 가슴에》,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등 많은 책을 내었으며, 《빛은 내 가슴에》영화 (감독 이기원)로도 만들어져 상영되었다. 강영우 박사는 2012년 69세로 별세하였고 평생 그를 돌봐온 석은영 여사는 강박사의 유훈대로 유품 용문산 친환경농업박물관에 기증하였다. 강영우 박사의 생가 표지석 문호교회 옆에 세워져 있다.

 

※ 강영우 박사의 성공한 삶을 위한 10가지 교육원리:

1. 역경을 도전의 기회로 삼아라.
2. 인생의 장기적인 목적을 설정하라.
3. 자신의 존재가치를 발견하라.
4. 분명한 비젼을 품어라.
5. 역활모델을 가져라.
6. 세계화 시대에 알맞은 가치관을 정립하라.
7. 동일한 가치관을 추구하는 집단에 소속하라.
8. 결코, 결코, 결코 포기하지 말라.
9. 타고난 능력을 개발하라.
10. 최선의 것을 주어라. 

- <강영우 박사,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 중 > 

 

 

강 건너 오른쪽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뒷쪽의 산, 문안산 (533.3m)

 

 

강 건너, 남양주시 조안면 삼봉리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화도-양평)

( 2023.12월 개통 예정) 다리 건설 중.

 

 

문호리나루터 영세불망비가 있던 곳,

이 비석들이 치워지고 없다. 어디로 옮겨간 것인지 궁금하다. 아름다운 선행에 대한 만세토록 기억하여야 할 기념비인데도,

내용을 읽어보기 전에는 마치 묘지 비석같은 느낌이 들어 조금 어색하기는했다. 이곳에 젊은이들이 좋아할 아름다운 조형물이 들어서길 기대해 본다. 강 건너 멀리에서도 문호리나루터라고 인식할 수 있는 조명장치와 함께 멋진 작품을 기대해 본다.  시대가 변하니 분위기도 바뀌는 것 같다.

 

< 2021.09.11 사진: 관찰사 홍공재철 영세불망비 >  

오른쪽 큰 비는 '관찰사홍공재철영세불망비'로 1863년에 세웠고, 왼쪽 작은 비는 '오위장유공종섭불망비'이다. 홍재철(1799-1870) 관찰사는 재임시 흉년이 들자 서종면 주변 들의 세금을 3년간 면재하여 주었고, 유종섭(1816-1892) 오위장은 3년간 주민들이 기근에 허덕이자 나루터에 큰 가마솥 10개를 걸고 죽을 쑤어 한 해 동안 구휼하였다. 이에 서종면민들이 그 은덕을 기리고자 덕고개에 두 분의 비를 세워 전해오던 것을 2007년 1월 12일 보다 안전한 관리를 위하여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2007년 8월 1일 서종면장. 

 

 

cafe 라온드뷰(Raon De View)

 

 

이 방향으로 걸어본다.

어제 하남 당정뜰단풍의 바다이더니, 이곳은 쓸쓸함 뿐이구나!

 

 

앵무새 조형물

 

   

 

" 저를 훼손하거나 데려가 주지 말아주세요. " 

 

 

문호리 북한강변 동영상

 

 

화도읍 차산리에서 옛날 남양주종합촬영소(지금은 부산으로 이전) 뒷 산 능선 (북한강 건너 보이는 뒤 산 능선 )을 타고 문안산 정상으로 걸어갔던 옜 기억이 떠오른다. 그 때는 힘든 일 하면서도 버스, 전철 타고 다니며, 열심히 산을 찾아다녔다. 이 때 다닌 수도권 산들이 더니지 않은 산이 없을 정도로 많은데, 지금은 나에게 옛 기억의 자산이 되고 있다. 그 당시 산행 코스: < 화도읍 차산리 출발 - 고래산(528.5m) 아래 고개 -  옛 남양주종합촬영소 뒷 산 능선 -  백월리 금선사 뒷 산 능선 - 문안산(533.3m) - 화도읍 금남리 하산>. 지금 생각하면 아련한 생각이 든다. 사진 뒷 편 외쪽 뾰족한 봉우리 넘어 고개에서 오른쪽 제일 높은 문안산 정상에 오른 후 사면으로 금남리로 하산한 후 버스 타고 화도읍으로 가서 집에 돌아갔다.    

 

 

키 큰 느티나무가 아름답다.

 

운동쉼터, 여기에서 집사람과 같이 커피 한잔 마시고 길을 간다.

 

 

양수리 방향

 

 

이곳은 강 건너 또는 이쪽에 수상레져업소가 많아 항상 강물을 가르며 달리는 모터보트들이 않았는데 수온과 관계가 있는지, 오늘은 찾아보기 힘든다.

 

 

문호지구 종합안내

 

한강8경:  

1경 두물머리, 2경 억새림, 3경 이포보, 4경 물억새군락지 자연형어도

5경 황포돛배6경 단양쑥부쟁이, 7경 능암리섬, 8경 탄금대.

 

 

 

시원한 강가의 운동쉼터가 너무 좋다.

벤치에 앉아 쉬엇다가 가게된다.

 

 

나는 이곳에 싸이클 타고 와보았지만 집사람은 처음이어서 직진하여 늪지대 좋은 경치를 보여주려고 한다.

 

 

앗, 지면에 떨어진 은행나무잎...

 

 

호수같은 연밭 

 

문호습지 (반환점

출발점으로 마을길을 통해 되돌아가려 한다.

 

 

오른쪽 마을길로 걸어가본다.

 

 

앗, 김장용 무우, 배추

길가에 콩도 익어있네.

 

 

대양수산 031-774-7054

 

 

오랜만에 마을길을 걸어보니 기분이 좋다.

 

 

 

오른쪽 산은 아래당미산

 

앗, 오른쪽 소나무밭

 

 

혹시 강가로 나가는 길이 있나 보았는데 없다.

 

 

소나무농장 입구

 

앗, 화려한 단풍!!!!

 

 

앗, 땅부자!  부럽다. 

 

 

이런데 집 하나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집사람 앞에서 나는 왜 작아지는가?

집사람은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나만 보고 미래를 생각하며 시집왔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편하고 걱정없이 잘 해 줄 수 없었다.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만약 나에게 저런 하얀 작은 집 하나라도 있다면...

중학교 영어시간에 가정법을 재미있게 배웠던 기억이 난다.

" if ...., then...."

 " if ~ " 하면서 머리 속으로 환상적인 상상의 나래를 펴면 너무나도 좋았었다.

 

 

무슨 큰 건물인가?

 

 

공터 주차장

 

 

남한강마트, 꽤 규모가 크다. 

문호리에서는 사람살기에 불편함이 없을 것 같다.

 

 

문호리삼거리, <- 문호리나루터.

 

 

쁘띠로사

 

 

서종우체국제2주차장

 

 

앗, 문호리성당

 

성당이나 교회를 보면 높이 걸려있는 십자가를 바라보게 된다.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인가?

고통이다. 값 없는 희생이다. 구원이다.

얼마나 많은 어머님들이 예배당에서 눈물로 기도할지 짐작이 간다. 

새벽마다 뜨거운 눈물흘리며 기도하는 어머님들이 이땅에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남편을 위해, 자식을 위해 기도하며 은총을 간구하는 것이다.   

지금 대학입학 수능이 10여일 남아있다. 이 땅의 얼마나 많은 어머님들이  눈물흘리며 자녀들을 위해

매년 이맘때면 뜨겁게 기도할 것인가? 자식을 위험한 군대에 보낼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어머님들의 애타는 마음을 우리들은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자녀들이여! 부모님에게 효도하자. 그렇지 않으면, 효도는 못할 망정 걱정시키는 일은 조금도 하지 말자. 학교 다닐 때는 공부만 열심히 하고 한눈 팔지 말자. 남자친구나 여자친구 사귀는 일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다 커서 책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성인이 되어서 하자. 행실이 나쁜 친구들을 멀리하고, 좋은 친구들과 함께하자. 절도있고 예의바른 생활을 하자. 위험한 곳에 가지말고 일찍 집에 들어가자. 게임방을 멀리하자.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학창시절에 공부만 하고 재미없게 보내는 사람은 나중에 성공하여 웃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자식들에게 이야기하면 싫어한다. 그러나 모든 부모님의 마음은 같을 것이다. 게는 옆으로 걸어도, 자식만은 바로 걷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벌교꼬막 정식....문호헤어...

 

문호리나루터에서 긴 타원형을 이루며 산책을 한후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문호리에 와보니 새로운 가게들이 많이 생겨나 있다. 전라도 벌교의 꼬막은 유명하다. 장뚱어도 유명하다. 눈이 번쩍 뜨인다. 언제 한번 먹어보고 싶다. 여기 문호리나루터가 보이는 곳 길가에 세워놓은 차를 회수하여, 나의 그리던  '숲속에 어부의집' 민물 매운탕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