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남문 주변
- ( 2023.01.30 )
오후 늦은 시간, 남한산성을 가보았습니다. 8호선 산성역에 내려서 2번 출구 앞 버스정류소에서 9번 버스를 타고 남한산성을 올랐습니다. 남문터널 앞 정류소에 내려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남문터널 주변에는 하얀 눈이 녹지 않고 일부 미끄러운 길이 있었습니다. 먼저 지화문(남문)으로 가서 외곽의 산성을 구경하고, 청량산(497.1m) 정상에 있는 수어장대를 보고 내려오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남문에서 수어장대에 오르는 길은 눈이 얼어 붙어 미끄러운 구간이 있고, 수어장대 하산길에서 미끄럼의 위험이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산길과 달리 흙이 없는 반질한 산책로의 미끄러운 길은 더욱 위험합니다. 그래서, 수어장대로 가는 길은 포기를 하고, 대신 남문을 지나는 성곽을 따라 제7암문 방향으로 조금 걸으며 검단산 등 주변 경치를 감상하고 내려오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남문을 지나 제7암문으로 가는 성곽길도 가파르고 매우 미끄러운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비탈을 오르는 돌계단 길이었기 때문에 조심하며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내려 올 때는 아이젠을 착용하고 내려와야 겠다고 생각하고 올랐습니다. 나는 겨울산 산행시는 항상 아이젠을 챙겨갑니다. 만약의 눈길이나 빙판에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은 아이젠입니다. 겨울 산행에서는 필수입니다.
제7암문 근처의 봉우리에 올라서니 아, 주변의 경치가 너무 좋습니다. 평소에는 수어장대로만 향했지 이 곳은 잘 오지 않던 길입니다. 이곳 봉우리에서는 동쪽으로 남한산성 제1옹성과 남쪽으로 검단산(536.4m)이 보이고, 남동으로는 경기 광주시 검복리, 불당리 방향으로 아스라히 보이는 경치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봄, 가을, 여름철 날씨 좋을 때는 이곳을 거쳐 통신탑이 있는 검단산을 정상 아래를 지나, 버스 종점이 있는 성남시 사기막골로 하산하거나, 검단산 측면 길을 돌아 사기막골로 하산하여 버스를 타곤 하였습니다. 옛날 등산하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서 봄이 왔으면 하고 기다려 집니다.
제7암문으로 내려가서 암문을 지나 성곽 외부를 감상하고, 암문을 거쳐 산성마을로 내려가는 차도를 따라 하산하였습니다. 이 차도는 음지였지만 검단산 정상에 통신시설이 있어 염화칼슘 처리를 하였는지 말끔히 눈이 녹아 걷기 좋았습니다. 아주 쉽게 하산하였습니다. 종로로터리 부근에는 침괘정을 잠깐 올라보고는 다시 9번 버스를 타고 하산하였습니다.
▶남한산성(南漢山城): 조선시대(1392~1910)에 유사시를 대비하여 임시 수도로서 역할을 담당하도록 경기도(京畿道) 광주시(廣州市)·성남시(城南市)·하남시(河南市) 일원의 해발 480m가 넘는 험준한 지형을 따라 건설된 산성이다. 남한산성의 초기 유적에는 7세기의 것들도 있지만 이후 수차례 축성되었다. 후금(後金)의 위협을 받고 이괄(李适)의 난을 겪은 인조는 1624년 총융사 이서(李曙, 1580∼1637)에게 산성의 축성을 명령하여, 2년 뒤에 둘레 6,297보, 여장(女墻) 1,897개, 옹성(甕城) 3개, 성랑(城廊) 115개, 문 4곳, 암문(暗門) 16곳, 우물 80곳, 샘 45곳 등을 설치하고서 광주읍의 치소(治所)를 산성 안으로 옮겼다. 축성 공사에는 각성(覺性)을 도총섭(都摠攝)으로 삼아 전국 8도의 승군을 동원하였는데, 승군의 사역과 보호를 위하여 현재 남아 있는 장경사(長慶寺)를 비롯한 7곳의 사찰을 새로 건립하기도 하였다. 남한산성은 건립된 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성관 안에는 많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둘레 길이는 약 8㎞ 정도이며, 면적도 약 528,460㎡ 에 달한다. 2014.6.22 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남한산성 문화재: 남한산성, 남한산성 행궁, 수어장대, 숭렬전, 청량당, 현절사, 침괘정, 연무관, 지수당, 남한산성 사찰 ( 망월사터, 장경사, 개원사터, 장경사 동종)
남한산성 탐방안내도
▶ 1코스 (거리 3.8Km / 소요시간 1시간 20분):
산성로터리 – 북문(0.4km) – 서문(1.1km) – 수어장대(0.6km) – 영춘정(0.3km) – 남문(0.7km) – 산성로터리(0.7km)
▶ 2코스 (거리 : 2.9km / 소요시간 : 60분):
산성로터리 – 영월정(0.4km) – 숭렬전(0.2km) – 서문(0.7km) – 수어장대(0.6km) – 산성로터리(0.9km)
▶ 3코스 (거리 : 5.7km / 소요시간 : 2시간):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현절사(0.1km) – 벌봉(1.8km) – 장경사(1.5km) – 망월사(1.1km) – 동문(1.0km) –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4코스 (거리 : 3.8km / 소요시간 : 1시간 20분):
산성로터리 – 남문(0.7km) – 남장대터(0.6km) – 동문(1.1km) – 지수당(0.5km) – 개원사(0.3km) – 산성로터리(0.6km)
▶ 5코스 (거리 : 7.7km / 소요시간 : 3시간 20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동문(0.6km) – 동장대터(1.1km) – 북문(1.6km) – 서문(1.1km) – 수어장대(0.6km) – 영춘정(0.3km) – 남문(0.7km) – 동문(1.7km) –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산 책 : 걸음수 4,433 steps, 거리 2.74 km, 소모열량 149 kcal, 소요시간 00:45 hrs, 속도 4.0 km/h, 기온 4℃.
▶ 코 스 : 남한산성 남문터널 정류소 - 남문(지화문) - 성곽길 - 제7암문 (제1남옹성암문) - 한양삼십리누리길 (차도) - 남문 주차장 - 침괘정 - 종로 로터리 버스정류소.
남한산성입구 근처 성남시...
산성역에서 탄 9번 버스는 남한산성 입구를 거쳐 돌아나와 남한산성 도로를 타고 오른다.
을지대학교
남문 터널 앞 정류소에서 하차
남문 가는 길
남한산성비석군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114-1번지 소재 )
성 내에는 18~20세기 무렵에 설치된 39여기의 비석이 있다. 이 중 본 부지(남문진입로)내로 남한산성 행궁 복원 사업에 따라 이전된 11기와 현 위치에 보존되어 있던 19기를 포함한 총30기의 비석을 한곳으로 모아 남한산성을 방문하는 탐방객들에게 옛 선현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후대에 소중히 전승될 수 있도록 비석을 한 곳으로 옮겨 정비해 놓았다. 이곳에 있는 비석은 역대 광주유수(廣州留守) 및 수어사(守禦使), 부윤(府尹), 군수(郡守)의 비로서 재직시 백성들을 정성스레 돌봐 치정을 잘 했거나 사랑을 베풀어 선정을 한 분들에게 백성들이 그들을 추념하여 새운 비로서 광주유수.영의정을 지낸 심상규(沈象奎)의 비를 포함 30기의 비석이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남문 가는 길에서 바라보는 오른쪽 봉우리, 청량산
개인 소유 기와집과 지화문(남문)
세계유산 남한산성 종합안내판
1코스: 산성로터리- 북문- 서문- 수어장대- 영춘정- 남문- 산성로타리 ( 3.8km, 1시간 20분 )
2코스: 산성로터리- 영월정- 숭렬전- 수어장대- 서문- 국청사- 산성로타리 ( 2.9km, 1시간 )
3코스: 남한산성 역사관주차장- 현절사- 벌봉- 장경사- 망월사- 지수당- 남한산성 역사관주차장 ( 5.7km, 2시간 )
4코스: 산성로터리- 남문- 남장대터- 동문- 지수당- 개원사- 산성로타리 ( 3.8km, 1시간 20분 )
5코스: 남한산성 역사관주차장- 동문- 동장대터- 북문- 서문- 수어장대- 영춘정- 남문- 동문 ( 7.7km, 3시간 20분 )
앗, 지화문 (남문)...
지화문 (남문)
미끄러운 도로 상태
남문 앞 이정표...
<- 1.5km 수어장대, <- 2.1km 우익문(서문), -> 종로 0.7km
오늘 남한산성 올 때는 수어장대를 거쳐 돌아가는 산책로는 제설 작업이 되거나 녹아서 깨끗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산길이기 때문에 제설작업은 하지 않고 눈 길이 반빌반질하여 이 방향의 산책은 포기하게 되었다.
남문을 나가 본다
아, 시원한 성곽의 흐름을 볼 수 있어 좋다. 눈길이 아니면 성곽길을 따라 수어장대로 산행하면 봉우리에서의 주변 경치도 좋고 산행이 재미있다.
지화문...화평에 이르는 문이란 뜻일 것 같다.
지화문 (남문)
정조3년 성곽을 보수 할 때 '지하문'이라 칭하였고 남한산성 4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한 중심문이다.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있다. 또한 현재는 성남으로 통하는 관문역할을 하고 있으며, 성문앞에 식재된 (350년 수령, 성남시 보호수) 느티나무와 함께 문화와 역사가 살아숨쉬는 시민의 역사터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 성남시.
보호수 느티나무
수종: 느티나무 (약 360년), 지정일자: 2006.6.20
수고: 14~16m, 나무둘레 0.9~1.37m
소재지: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 산 132-2
연혁 및 전설: 남한산성 성곽은 인조 4년 (1626년)에 준공되었으며 느티나무(보호수)는 당시 성곽사면 토양유실 방지 및 차폐의 목적으로 식재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산성 순환도로 터널이 개통 된 후 폐도 부지가 된 남문 앞 느티나무 주변을 2006년 재정비 및 느티나무 생육환경 개선 후 4주를 보호수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 성남시.
누비길 검단산길 구간...."여기부터 제2구간입니다. "
호국정신과 선비정신이 깃든
남문 앞 역사터 안내
- 남한산성은 한성 백제시대의 성산이요 진산의 개념으로 백제의 시조 온조대왕의 사당 숭렬전(경기도유형문화재 제2호)이 있는 곳이다.
- 남한산성은 통일신라시대에는 주장성(晝長城) (일장(日長)산성)으로 불렀으며 한강유역의 중요 산성으로 발전하였다.
- 고려시대에는 몽고군의 침입을 물리친 국방의 요새지 이었다.
- 조선왕조 제16대 인조임금 원년(1623)에 성의 축성을 시작하여 1826년에 완성 (본성의 둘레가 9.05km)하니 남한산성은 경도보장지(京都保障地)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 남한산성은 주봉인 청량산(497.8m) 을 중심으로 4대문과 18암문을 완성하고 성내에는 행궁을 비롯하여 수어장대 등 각종 문화유적이 남아있고, 현재는 경기도 도립공원(국가사적 제57호)으로 성남시, 하남시, 송파구, 광주시 등 4개 지방자치 단체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 특히 남문은 성의 서남쪽 곡저부의 해발 370M 지점에 위치하여 있으며 정조 3년 성곽을 개보수할 때 개축하여 지화눈(至和門)으로 칭하였고, 4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한 중심 문이며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있으며 성남으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문이다.
- 인조 14년에 청태종의 침공(병자호란)으로 인조 임금이 이곳으로 피신하여 45일간 항전한 유서 깊은 곳이다.
- <남문 앞 역사 터>는 성남시가 문화재청과 협의를 거쳐 2007. 5.15부터 약 6개월간의 공사로 2007.11.19 준공하였으며, 성문 앞에 식재된 380여년 된 느티나무와 원형이 가장 잘 보전된 것으로 평가받는 남문은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역사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 성남시 보호수인 느티나무(4주)는 성곽방어의 특성을 고려하여 남문을 시각적으로 차폐하기 위하여 식재하였을 가능성과 성문 주변이 평상시 왕래가 많고 지형상 경사가 심하여 우수 시에 토양유실을 막기 위해 식재하였을 것으로 추론되는 역사터다. - 성남시
남문(지화문) - 백련사 - 주 등산로 - 산성유원지 입구 - 검단산 - 시계 등산로 - 남문 (지화문)
성남시 남한산성 입구 방향으로 가는 측면 길
성남 누비길 노선 안내
검단산 길
성남 누비길을 일주합시다.
울창한 숲에서의 등산은 신체리듬을 회복시키고 산소공급을 원할히 하여 운동시경을 단련시키는 등 인체건강에 유익합니다. 시민 여러분의 건강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성남누비길을 일주해 봅시다.
누비길 코스:
1구간: 남한산성길 7.5km ( 4시간 )
2구간: 검단산 길 7.4km ( 3시간 30분 )
3구간: 영장산 길 9.7km ( 4시간 30분 )
4구간: 불곡산 길 8.8km ( 4시간 )
5구간: 태봉산 길 10.7km ( 4시간 30분 )
6구간: 청계산 길 8.5km ( 4시간 30분 )
7구간: 인능산 길 9.5km ( 4시간 )
> 검단산 길:
검단산은 태백산맥의 철령(鐵嶺) 부근에서 분기하여 서울 부근에 이르는 광주산맥의 지맥으로서 남한산성과 연결되는 산줄기를 이루며, 높이는 534.7m이다. 경기도 성남시 동쪽으로 광주시와 경계를 이루며, 전체적으로 '凹(요)'자 모양의 산지를 형성한다. 이 산을 중심으로 하는 성남시의 동쪽 산지는 남쪽으로 갈 수록 해발고도가 낮아지며 완만한 산이라 하여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 산성역 - 불망비 - 남문(지화문): 3,7km
검단산길 2코스:
남문(지화문) - 1.0km- 산림초소 - 1.4km - 검단산 정상 (536.4m) - 1.4km - 만수천 약수터 - 0.7km - 망덕산 정상 ( 500.3m ) - 0.5km - 형제봉 정상 ( 435m ) - 0.8km - 이배재고개 - 1.8km - 갈마치고개.
* 참고: 8호선 산성역 2번 출구 앞 정류소에서 9번 ( 토.일요일, 공휴일의 경우 남한산성 직행의 9-1번) 버스를 타고 남문터널 지나서 하차한 후, 검단산길 출발점 남문(지화문) 에서 부터 이배재고개까지 5.8km 능선길을 따라 부담없이 산행하는 검단산길은 능선 산행에 조망이 탁월하다. 이배재고개에서는 이배재고개 등산육교 직전에서 왼쪽 (광주시 목현동 방향)으로 약 1.1km, 4분 정도 내려가면 이배재로의 양편에 버스 정류장 ( '목현2통.GS주유소' 정류장 )이 있다. 여기에서 31-2 번( 경기광주역), 31-3번(경기광주터미널), 3-3번 (성남 모란역, 태평역) 버스를 탈 수 있다. 이 코스의 능선 길 산행은 중간 중간에 높낮이가 심하지 않은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광주시, 성남시, 검단산 방향 등의 경치를 조망하며 평지길 가 듯 하며 걷는 재미가 탁월한 아주 좋은 능선 산행길이 된다. 또한 능선길 가는 도중 중간 중간에서 성남시 사기막골이나 광주시 목현동 방향으로 내려 서는 하산길이 있다.
남문은 참으로 아름다운 성문이다.
남한산성 (사적 제57호):
1 남한산성 행궁, 2 수어장대, 3 숭렬전, 4 청량당, 5 현절사, 6 침괘정, 7 연무관, 8 지수당, 9 장경사, 10 망월사, 11 개원사, 12 제1남옹성, 13 제2남옹성, 14 남문(지회문), 15 서문 (우익문), 16 연주봉옹성, 17 북문(전승문), 18 동문(좌익문), 19 장경사신지옹성, 20 동장대터, 21 봉암성, 22 벌봉
남한산성은 청량산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연주봉, 동쪽으로 벌봉과 한봉을 연결한다. 해발 500m 내외의 자연지형을 따라 둘레가 12km가 넘는 성벽을 구축하여 많은 병력으로도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지리적 여건을 구비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성곽 건축술의 원형과 시대별 발달을 잘 보여주는 남한산성은 672년 신라 주장성으로 부터 시작하여 1624년 본격적인 축성이 이루어졌으며, 19세기에 이르기 까지 지속적으로 개수축이 이루어졌다. 특히, 남한산성은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당시 청 태종의 10만이 넘는 대군에 맞서 인조가 47일간 항전하였던 전쟁터였으며, 동아시아 명청 교체기에 힘의 각축장이었다. 17세기 남한산성 축성과 광주유수부 설치는 국토 방어와 주민 거주의 개념을 통합한 '산성거주론'을 실천한 처음이자 마지막 사례이다. 남한산성은 인조 2년(1624)에 축성한 이후 왕실의 보장처로서 역할을 하며, 300여년 넘게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경영한 세계사적으로 보기 힘든 초대형 산성의 사례가 되었다. 하지만, 1896년 을미의병의 거점이 된 남한산성은 1907년 일제에 의해 많은 건물이 파괴되었으며, 1917년 성내에 있던 광부군청이 산성 밖으로 이전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5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 197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으로. 남한산성은 정부에 의해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하였다. 유원지로 알려졌던 남한산성은 1999년 부터 시작된 경기도의 남한산성 복원 사업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고, 2014년 6월에 1439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수어장대 가는 길...반질반질 ...포기
남문 위에 오른다
성남 산성역 방향으로 내려가는 능선 방향
제7암문 가는 길
앗, 능선 봉우리에 오르다...여기에서는 아이젠을 착용하였다.
성의 흐름이 아름답다.
경기 광주시 검복리, 불당리 방향
통신탑이 있는 검단산 (536.4m)
남한산성 제7암문 부근 동영상
성남 시가지 방향
제7암문 앞 이정표
↑ 2.km 검단산, <- 2km 산성공원, -> 좌익문(동문) 1.3km, -> 남장대(터) 0.7km
제7암문
제7암문 밖 이정표
↙ 0.85km 종로, -> 목현1동 마을회관 12km, -> 불당리 버스정류장 6.31km, -> 검복리 버스정류장 4.01km.
남한산성 제7암문 앞 동영상
아름다운 남한산성
역사.문화의 고장 경기 광주
한양 삼십리 누리길 종합안내
<한양 삼십리 누리길>은?
경기도 광주시 목현동 ~ 남한산성 까지 총 12km (삼십리)로 조선시대 관원들의 군사 정보 전달과 지방 선비들의 과거길로 병자호란 인조임금의 고뇌 재현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한산성의 역사와 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조성된 숲길입니다.
탐방구간 안내 (숲길 구간) - 총 12km
1코스 -- 문화산책길 ( 목현동 ~ 오전리) -- 2코스 -- 테마 숲길 (오전리 ~ 불당리) -- 3코스-- 호국숲길 ( 불당리~검복리) -- 4코스 -- 역사숲길 ( 검복리~산성리)
남한산성
볼수록 정겹고 볼수록 아름다운
사적 제 오십칠호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위치 중부면 산성리 축성
천육백이십사년 선조들의 얼이 깃든
고귀한 유산 모두가 함께 가꿔 모두가
함께 지켜 그 이름은 누리에 높이 떨치자
볼수록 정겹고 볼수록 자랑스러운
사적 제 오십칠호 민족자존의 터
남한산성 둘레 십일점 칠육킬로 면적이
이백이십만평방 선조들이 물려주신
찬란한 유산 모두가 함께 가꿔 모두가
함께 지켜 그 이름 역사 위에
길이 빛내자 길이 빛내자
남한산성 가요로 가수 (강선실) 부름
- 광주시
경기 광주시 검복리, 불당리 가는 길
제7암문 (제1남옹성암문): 暗門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비밀통로이기 때문에 크기도 작고 적에게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시설도 설치하지 않았다. 이 암문은 동-서 방향으로 가던 성벽이 남-북 방향으로 바뀌는 지점에 위치하며, 개구부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 이처럼 성벽의 방향을 바꾸어 암문을 설치한 것은 이 지점의 지형에 굴곡이 없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성벽이 석대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외부에서 암문이 관측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나, 이 암문은 제1남옹성과 신남성으로 연결되는 통로로서 남쪽 성벽에 설치된 암문 중에서는 가장 이용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산성마을 내려 가는 도로....눈이 없어 아주 쉽게 내려갈 수 있었다. 이곳은 검단산 정상에 통신시설이 있어 차량이 출입할 수 있도록 눈을 깨끗히 치웠다. 따라서, 남문주차장에서 한양삼십리 누리길을 올라, 제7암문을 지나고, 검단산 정상 아래 부분까지는 눈 없는 차도로 산행할 수 있다.
중간의 봉우리 청량산 (수어장대)
↗ 한양 삼십리 누리길
참도토리 묵사발...
남한산성 남문 주차장...후불주차료 평일 3,000원, 주말.공휴일 4,000원.
멀리 남한산성 행궁이보인다.
'먹어야 산다'
<- 만해기념관
남문 주차장 곁 이정표
<- 0.6km 지화문(남문) , ↖ 2.1km 수어장대, ↖ 0.3km 만해기념관,
-> 남한산성 행궁 0.2km, -> 경기도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 0.9km
남한산성 행궁 방향
행궁(行宮): 왕이 도성을 떠나 행행(行幸)할 때 임시로 머무는 곳으로, 전란시·능행시·휴양 등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조선시대에는 수원행궁, 강화행궁, 전주행궁, 의주행궁, 양주행궁, 온양행궁 등 10여개 이상의 행궁이 있는데, 그 중 남한산성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인조 3년(1625) 남한산성 수축과 함께 건립되었다. 실제로 약 10년 후인 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47일간(1636.12.14~1637.01.30) 항전하게 된다. 이후 숙종·영조·정조·철종·고종이 여주에 있던 효종릉(寧陵) 등의 능행길에 머물러 이용하였다. 남한산성행궁은 종묘(좌전)와 사직(우실)을 두고 있는 유일한 행궁으로 일반적인 행궁에 머물지 않고 유사시 임시수도의 중요한 역할을 하던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국가사적480호이다. - < 남한산성 도립공원 >
인화관(人和館): 남한산성 행궁 동쪽에 위치한 인화관은 사신 등 손님들이 머무는 객관(客館)이었다. 한양에 계신 왕을 위해 매월 2차례 예를 올리기도 하고, 중앙에서 관리가 오면 묵을수 있는 용도라고 한다. 인화관은 인조 2년(1624)에 세운 것을 순조 29년(1829)에 수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뒤 빈터만 남은 것을 새롭게 복원을 추진하여 2015년에 완공되었다.
남한산성 종각의 천흥사 동종
남한산성의 천흥사 동종은 높이 170cm, 지름 100cm로 몸체에 세겨진 명문 ‘聖居山天興寺銅鐘總和二十八年庚戌二月日' (성거산 천흥사 동종 총화 이십팔년 경술이월일)’ 에 따르면 고려 현종1년(1010)에 주조된 것으로 원래는 태조4년(921)에 태조가 창건한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천흥사에 있었다고 한다. 남한산성으로 언제 옮겼는지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산성 내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으며 이후 일제강점기 이왕가박물관에 옮겨지고, 해방이후 덕수궁 미술관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엇다. 현재 종은 원래의 모양 및 형태 그대로 재현 한 것으로 타종시 울림을 좋게하기 위하여 약 3배 정도 더 크게 제작하였다.
침괘정 가는 길
침괘정
보호수
침괘정...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호
침괘정은 무기제작소라 알려져 왔으나 온돌과 마루방, 화랑처럼 된 툇마루 등 건물 구조로 보아 집무실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건립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주변에 있던 무기창고를 명나라 사신 정룡이 '총용무고'라 이름 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 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영조 27년(1751) 광주유수 이기진이 고쳐 짓고 '枕戈亭'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침과정'을 침괘정'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명확하지 않다. 무기 제작소와 무기창고는 침괘정 부근에 별도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왕의 길 | 2코스
2코스 국왕의 길:
2코스 국왕의 길은 조선시대 국왕의 공간이었던 행궁에서 시작되어, 침괘정을 지나 병자호란 시기 인조가 항복하러 성문을 나선 서문을 아우르는 탐방코스 입니다. 국왕이 행차하여 머물렀던 남한산성 행궁, 백제 시대 온조왕의 사당인 숭렬전 인조관련 이야기가 전해지는 침괘정과 우익문(서문)을 볼 수 있습니다. 국와의 길에서 잘 가꾸어진 소나무 숲길을 거닐며 세계유산 남한산성의 시원한 자연환경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제2코스: ( 2.9km, 60분 ):
산성로터리 - 국청사 - 서문 - 수어장대 - 숭렬전 - 영월정 - 산성로터리.
종로 로터리
남한산성 산성리 마을 내력:
남한산성내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아주 먼 과거로 올라가겠지만, 본격적으로 대규모의 취락이 형성된 것은 인조5년(1627)에 광주부의 읍치를 산성으로 옮기고 나서부터라고 하겠다. 현재남한산성 내 마을의 행정구역은 ‘산성리’이며, 1914년 일제가 조선의 지방행정구역을 대대적으로 개편할 때부터 이처럼 불리기 시작하였다. 산성리 마을은 조선후기 광주유수부 시기에 두 개의행정 단위로 나누어져 있었다. 광주 행궁에서 동문에 이르는 도로를 경계로 하여 남쪽은 남동, 북쪽은 북동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그러다가 1910년경 산성내 마을은 군내면 광주읍에 속하게 되고, 마을은 광주읍 동부, 광주읍 서부, 광주읍 남부, 광주읍 북부, 광주읍 중부 등 5개의 행정단위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1914년 광주읍 5개 마을이 중부면 산성리로 통합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1917년 광주군청이 산성 안에서 경안으로 이전하면서, 300여 년간 화려한 군사·행정 중심지였던 남한산성내 산성리 마을은 몰락하기 시작하였다. 산성리 마을은 풍부한 농경지가 있는 곳도 아니었고, 행정 중심지로서의 기능만을 수행한 곳이었다. 따라서 광주군청과 함께 치안·체신기관이떠난, 교통조차 불편한 산촌 마을인 산성리는 주민들이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려웠다. 1,000여호 4,000여 인구를 자랑하는 산성리 마을 인구는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주민들이서울과 광주, 여주, 이천, 양평 등지로 떠났고, 해방과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는 70∼80호로 줄어, 산성리는 한적한 산촌 벽지로 변하였다. 한편 산성리 마을에는 산성 내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금림조합이 결성되어 1945년까지 활동하였다. - 경기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버스 정류소
남한산성 옛길 종합안내
로터리, " 남한산성 내의 기준점 "
남한산성 안에는 핵심 간선 도로망이있던 봉화로가 남문과 동문을 통해 이어져 있으며, 남한산성 중심지에서 한양도성의 동쪽(현재 하남시)과 남쪽 (송파, 마천)으로 바로 이어지는 중요 노선들이 한 점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산성 로터리입니다. 남한산성에서 동으로 몇리, 남으로 몇리 이렇게 이렇게 거리를 측정하는 것도 바로 이 로터리를 기준으로 정하게 됩니다. 행궁의 바로 옆에 위치한 일종의 랜드마크와도 같아서 이곳을 왕래하는 주민들의 심리적 중심적 역할을 합니다. 남한산성 내에 위치한 마을이 산성리인데, 산성리 주민들은 로터리에서 우(북 또는 서)로 얼마를 가면 행궁이 있고 아래(동 또는 남)로 얼마를 가면 관아가 있고 방앗간이 있고 장터가 있다는 식으로 심리적 위치를 정하곤 합니다. 주민들 뿐만 아니라 남한산성을 찾는 많은 시민들은 지금도 남한산성 안에서 특정 지점을 말할 때 이 로터리를 기준으로 이여기를 하곤 합니다.
<- 지화문 700m, 전승문 400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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