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앗, 소요산 단풍
- ( 2023.11.01 )
- 《 자재암 일주문 ~ 자재암 》:
● 소요산(587m): 소요산은 경기도 동두천시 동북방 소요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백운대(440m), 중백운대(510m), 상백운대(559m), 나한대(571m), 의상대(587m,정상), 공주봉(526m)의 여섯 봉우리가 부채꼴을 이루고 있으며 주봉은 상백운대(559m)이다. 서화담 양봉래와 매월당이 자주 소요하였다 하여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경관이 뛰어나서 "경기의 소금강"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기암괴석의 암봉과 바위능선, 협곡을 이루는 계곡이 아름답다. 원효폭포 옥류폭포 청량폭포 선녀탕, 자연석굴 나한전과 금송굴이 있어 매력적이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자재암이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중 하나이다. 소요산은 수도권 최고의 단풍 명산이다.
▶ 등산코스:
- 1코스 ( 5.71㎞,1시간30분 ) : 일주문 - 자재암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선녀탕 - 자재암 - 일주문 – 관광지원센터
- 2코스 ( 6.53㎞, 2시간 ) : 일주문 - 자재암-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상백운대 - 칼바위 - 선녀탕 - 자재암 - 일주문 - 관광지원센터
- 3코스 ( 7.04㎞, 3시간30분 ): 일주문-자재암-하백운대-중백운대-상백운대-칼바위-나한대-의상대- 샘터갈림길-구절터- 일주문-관광지원센터
- 4코스 ( 8.19㎞, 4시간 ): 일주문-자재암-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칼바위-나한대-의상대 -공주봉- 구절터- 일주문 - 관광지원센터
● 자재암(自在庵): 654년(신라 무열왕 1년) 원효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의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974년(광종 25년) 각규대사(覺圭大師)가 태조의 명으로 중창하고 소요사라 했다. 그리고 1153년(의종 7년)에는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각령(覺玲)이 대웅전과 요사만을 복구하여 명맥만 이어왔다. 조선 초까지만 해도 자재암은 태조의 원당으로 왕실의 비호를 받아오다가 어느 시기엔가 폐허가 되다시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후기 들어서는 1872년(고종 9년) 원공(元空)과 제암(濟庵) 스님이 퇴락한 자재암을 중창하고 영원사(靈源寺)라 하였다. 근세에 들어 한국전쟁 당시 다시 소실된 것을 1961년 진정(眞精) 스님이 대웅전을, 1968년 성각(性覺) 스님이 요사채를, 1977년에는 삼성각을, 1982년에는 일주문을 각각 지었다. 이어 1984년에는 동두천 시내에 부설 연화유치원(현)이 개원하였고, 1983~1985년에 오래된 건물을 헐고 새로운 중창을 하여 지금의 사격을 갖추었다. 자재암에는 원효 스님이 관음보살을 만나 자신의 수행력을 인증 받았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원효 스님이 요석공주와의 세속의 인연을 맺은 뒤 오로지 수행일념으로 이곳을 찾아 초막을 짓고 용맹정진 하던 때였다. - < 소요산 자재암 연혁 요약 >
●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년): 신라시대의 고승으로, 속성은 설씨(薛氏), 원효는 법명이며, 아명은 서당(誓幢)이다. 648년 황룡사에서 출가한 뒤 각종 불전을 섭렵하며 수행에 정진하였다. 일정한 스승을 모시고 경전을 공부하지 않고 타고난 총명으로 널리 전적(典籍)을 섭렵하여 한국불교사에 길이 남는 최대의 학자이자 사상가가 되었다. 34세에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로 가던 중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진리는 결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터득하고 의상과 헤어져서 돌아왔다. 이후 태종무열왕의 둘째딸인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았는데 이후 스스로 복성거사(卜性居士) 소성거사(小性居士)라고 칭하고 속인행세를 하였다. 현존하는 그의 저술은 20부 22권이 있으며 특히 그의<대승기신론>은 중국 고승들이 해동소(海東疏)라 하여 즐겨 인용하였고, <금강삼매경론>은 인도의 마명(馬鳴) 용수 등과 같은 고승이 아니고는 얻기 힘든 논(論)이라는 명칭을 받은 저작으로서 그의 세계관을 알 수 있는 큰 저술이다. 그는 학승으로서 높이 평가될 뿐만 아니라 민중 교화승으로서 당시 왕실 중심의 귀족화된 불교를 민중불교로 바꾸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종파주위적인 방향으로 달리던 불교이론을 고차원적인 입장에서 회통시키려하였는데 그것을 오늘날 원효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이라 부르며, 이것은 그의 일심사상(一心思想) 또는 무애사상(無埃思想)과 함께 원효사상을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 소요산 자재암 연혁 >
소요산 자재암......일주문
야생동물 보호구역...꽃마리/ 작살나무/ 삵/ 담비 - 동두천시장
속리교
< 원효폭포, < 원효굴, 공주봉 >, 자재암 >, 원효대 >
소요산 등산 코스:
== 1 코스 (초보자 코스): 일주문 - 자재암 - 하백운대 - 선녀탕 - 자재암 - 일주문
== 2 코스 (중급자 코스): 일주문 - 자재암- 하백운대- 중백운대 - 상백운대- 칼바위 - 선녀탕- 자재암- 일주문
== 3 코스 (상급자 코스): 일주문 - 자재암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상백운대 - 칼바위 - 나한대 - 의상대 - 공주봉 - 구절터 - 일주문.
소요산 개념도
일주문, 원효폭포, 사리탑, 전망대, 백운암, 자재암, 청량폭포, 금송굴, 구 절터,
하백운대(440m), 중백운대(510m), 상백운대(559m), 칼바위, 나한대,(571m), 의상대(587m), 공주봉(526m)
백팔계단....
108계단 앞 자재암, 공주봉, 일주문 방향 갈림길 중요 이정표:
<- 중백운대 1.4km, 칼바위 2.0km, <- 자재암 0.35km, 하백운대 1.0km,
↑ 공주봉 1.3km, 의상대 2.5km, ↓ 일주문 0.1km, 소요산역 2.4km.
↑ 공주봉, 의상대 (소요산 정상) 가는 길
↑ 자재암,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가는 길
백팔계단 동영상
금강문
금강문(金剛門):
신광불매 만고휘유 입차문내 막존지해
神光不昧 萬古輝猷 入此門內 莫存知解
신비한 광명이 어둠을 깨치고 만고 오랫동안
그 빛을 발하니 불법의 문안으로 들어오려면
아는체하는 분별심을 버려라.
김시습이 자주 거닐던 산인 소요산은 경관이 빼어나고 휴양하기 좋은 장소이다.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를 비롯해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의 여섯 개의 봉우리가 말발굽 모양으로 능선을 이루고 있다. 자재암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길이 가파르지만 능선으로 접어들면 경사가 완만해 무리한 산행은 아니다. 진달래 필 무렵인 4월 초부터 단풍이 지는 10월 말까지 특히 아름답다.
- 동두천시.
원효대
누가 그대들의 행복을 방해하는가?
누가 그대들의 편안함을 그늘지게 하는가?
세상살이 힘겠다 푸념할 줄 알아도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을 돌아보지 않네.
괴로움을 그치게 하는 길
찾아보지도 않네
- 슛타니파타 -
원효대
이곳은 원효대사가 정진 중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머물며 좌정하고 수도하던 장소로 원효대로 불리는 곳.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 아름다운 마무리 > - 법정 스님.
靑山見我 無言以生 (청산견아 무언이생)
蒼空見我 無塵以生 (창공견아 무진이생)
解脫嗔怒 解脫貪慾 (해탈진노 해탈탐욕)
如山如水 生涯以去 (여산여수 생애이거)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네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 나옹 선사 (1300~1376), 고려말 고승.
추담선사 부도탑
● 소요산 자재암:
수행 정진 중 ...출입금지
-> 자재암
모노레일...
아무리 비바람이 때린다 할지라도
반석은 흔들리지 않는 것 처럼
어진 사람은 뜻이 굳세어
비방과 칭찬에도 움직이지 않는다
자재암 공사 중 임시 도로
소요산 자재암 종무소...
봉향각 용품판매장 ->, 사찰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빵, 연꿀빵. 기도접수처
자재암...대웅전...요사채
자재암은 원효대사가 세운 절이다. 1907년 의병활동 하던 곳으로 일본군 공격으로 소실되고, 1950년 6.25전쟁으로 또 소실 되었다. 그 후 1971년 ~ 1977년 기간에 복원 되었다.
대웅전
대웅전 과 요사채
자재암의 유래
원효 성사께서 요석공주와의 인연이 있은 후 오로지 수행 일념으로 인적이 두절된 심산유곡을 찾아 산자수명한 아름다운 이 곳에 이르러 초막을 짓고 용맹정진하여 높은 수행을 쌓았다. 비가 내리던 어느날 심야에 약초를 캐다가 길을 잃은 아녀자로 화현한 관세음보살께서 원효 스님에게 하루 밤 쉬어가기를 원했고 중생구제의 구실을 붙여 수도 일념의 심지를 시험라였으니 원효대사 이르기를 < 心生則 種種法生(심생즉 종종법생)>이요 <心滅則 種種法滅(심멸즉 종종볍멸)>이라 마음이 생한 즉 옳고 그르고, 크고 작고, 깨끗하고 더럽고, 있고 없는 가지 가지 법이 없어지는 것이니, 마음이 멸한 즉 상대적 시비의 가지가지 법이 없어지는 것이니, 나 원효에게는 자재무애(自在無埃)의 참된 수행의 힘이 잇노라, 하는 법문에 그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사라졌다. 원효대사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임을 알았고 그후 지극한 정진으로 더욱 깊은 수행을 쌓았으며 후학을 교제할 생각으로 정사를 지었다.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는 뜻에서 정사를 이름하여 자재암(自在蓭)이라 했다고 한다.
나한전
자재암 동영상
소요산 자재암 나한전 불사 기념탑
↑ 하백운대 가는 길
원효샘
동양 삼국 불교계의 거인인 원효(元暁) 스님은 차(茶)의 달인으로도 차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고승이다. 스님은 전국 곳곳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절을 창건하였는데 원효스님이 지리를 잡은 절터에는 필연적으로 약수가 나오며 찻물로는 으뜸인 석간수(石間水) 가 솟아올랐다고 한다. 그 중 1천 3백여 년 전 수행하셨던 소요산 자재암의 원효샘 석간수는 찻물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수(名水)로 이름 나 있다. 신라 고려 때는 물론 조선중기 까지도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특히 고려시대 시인인 백운 이규보는 이 물맛을 "젖처럼 맛있는 차가운 물"이라고 감탄하는 등 원효샘은 전국에서 유명한 차 문화의 유적지가 되었다.
청량폭포
청량폭포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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