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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② 종묘 - ( 2024.03.17 )

by the road of Wind. 2024. 3. 18.

 종묘 - ( 2024.03.17 ) 

 

종로3가 탑골공원을 돌아본 후 청계천 방향으로 가다가, 종묘를 먼저 둘러보았습니다. 조선 왕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봉행하던 이곳 종묘는 어딘가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질 것 같지만, 실제 종묘를 산책해 보면 거대한 기와 건축물에서 건축미가 돋보이며, 주변의 부속 건물과 정원에서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나는 오늘 청계천 봄 나들이로 '청계천매화거리'를 가보려고 길을 가다 종묘를 먼저 들어가 보았습니다. 혹시 마감 시간이 다가오나 빠르게 종묘 일대를 빙 한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산책 코스:  전도 - 외대문 - 공민왕신당 - 향대청 - 세자재실 - 재궁 - 동문 - 남문 - 정전 - 정전악공청 - 서문 - 남신문 - 영년전 - 서문 -  북신문 - 전사청 - 왜대문.

 

 

 종묘(宗廟):  조선 왕조 역대 국왕들과 왕후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봉행하는 유교 사당 (사적 제125호)이다. 서울 종로구 훈정동 1번지에 위치해 있다. 종묘의 건물은 1394.10월 태조가 한양로 수도를 옮긴 해 12월에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즉위년(1608년)에 다시 지어졌다. 종묘 정전(正殿) 영녕전(永寧殿)으로 나누어 정전에는 정식으로 왕위에 오른 선왕과 그 왕비의 신주를 순위에 따라 모시고, 영녕전에는 추존(追尊)된 선왕의 부모나 복위된 왕들을 모셨다. 그리고 정실의 출생이 아닌 왕이 그 사친(私親)을 봉안하는 사당으로서 따로 궁묘(宮廟)를 두었다. 종묘의 제사일은 4계절의 첫달 상순, 정초·단오·한식·추석, 동지의 납일과 매월 삭망(朔望)일로 정하여 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지냈다. 종묘의 건축물과 600여 년간 제례행사의 가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인정 되었다. 종묘제례(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와 제사를 지낼 때에 음악인 종묘제례악(중요 무형문화재 제1호, 세종대왕 작곡)은 2001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록되었다. 종묘제례는 매년 5월 첫째주 일요일에 어가행렬과 함께 전주 이씨 종친에 의한 제사로 거행된다. 종묘 사직단과 함께 국가의 중요한 요소로서 조선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종로의 상징 같은 국일관

 

종로3가 우리귀금속도매상가...

자녀 결혼식을 앞두고는 보통은 예물 때문에 누구나 종로귀금속 가게는 한번 정도 들러보게된다.

 

↖ 170m 종묘외대문, ↖  40m 종묘광장관리사무소, -> 80m 어도(전교)

 

봄의 전령같은 노란 산수유가 아름답다.  

 

종묘전교

 

종묘로 들어가는 입구의 하천인 회동 제생동천(灰洞 濟生洞川)에 축조된 다리로,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 이 다리를 "종묘전교(宗廟前橋)"라고 하였다. 종묘전교는 처음에 나무다리였던 것을 세종 3년(1421) 돌다리로 개축하였고, 이후 현종4년(1663)에 개수한 바 있다. 역대 왕들이 종묘에서 행하는 종묘대제(宗廟大祭)를 비롯한 각종 주요 행사 때 이용 하였던 다리였다. 이 다리는 널다리(平橋) 형식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폭 9.6m, 길이 6.9m) 규모인데, 다리의 바닥 한가운데가 좌우보다 한단 높은 어도(御道)형식이고 다리가 설치된 가장 자리 네모서리에는  해태 상을 새긴 화표주(華表柱)가 마련되어 있다.

 

종묘 외대문

 

종묘 관람 안내

 

시간제 관람 - 평일 (월.수.목.금):
    09:20, 10:20, 11:20, 12:20, 13:20, 14:20, 15:20, 16:20, (16:40 3월~9월)

* 시간제 관람이란?  정해진 시간에 입장 후 문화해설사와 동행하여 단체로 관람하고 함께 퇴장하는 제도입니다.

- 관람시간은 약 1시간 입니다.
- 외국어 해설시간은 외국인을 대상으로만 운영합니다.
- 종묘내 전지역은 금연구역입니다.
- 주류 맟 음식물, 야영용품 소지, 반려동물 동반시 입장 하실 수 없습니다.

  일반관람 - 토.일.공휴일. 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 수요일):
- 2월~5월, 9월~10월: 매표시간 09:00 - 17:00, 관람시간 09:00 - 18:00.   

- 6월~8월: 매표시간 09:00 - 17:30, 관람시간 09:00 - 18:30.  

- 11월~1월: 매표시간 09:00 - 16:30, 관람시간 09:00 - 17:30,   

- 입장 마감 시간은 폐장 1시간 전입니다. 
- 해설시간:

  일요일, 문화가 있는 날 - 평일 해설 시간과 동일.

  토요일,공휴일: 10:00, 11:00, 13:00, 14:00, 15:00

관람요금성인(만25세~만64세) 1,000원문화가 있는 날 : 무료
* 통합관람권: 성인(만25세~만64세) 10,000원 (구입일로 부터 3개월 내 종묘와 4대궁 관람가능합니다.)

- 정기휴관일: 매주 화요일

  무료관람자:
- 만 24세 이하 및 만 65세 이상 국민
- 만 6세 이하 및 만 65세 이상 외국인
- 병무청 벌금 병역명문가증, 현역군인
- 국가유공자 및 배우자, 선순위 유족 
-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 장애인 및 동행 보호자 1인
- 초.중,고 교원(학생 인솔 등 교육활동시)
- 임산부와 보호자 1인
- 다자녀 가정 부모  

감면대상: 종로구 주민 50% 할인

 

종묘 정전 관람 제한 안내...정전 보수 공사, 2020년 9월 ~ 2024년 하반기.

 

신로(神路)....종묘의 길....

삼도(三道)....중간의  신의 길 (신로(神路), 오른쪽 길 왕의 길 (어로(御路), 왼쪽은 세자의 길 (세자로(世子路) 이다... 그 밖은 흙길로 다녀야 한다. 

신로(神路)... 신로는 종묘제례등 위식을 위해 만든 길이다. 가운데가 약간 높고 양옆이 약간 낮은 세 길중, 가운데 길은 신주와 향.축이 들어가는 신로(神路), 동측의 길은 왕이 다니는 어로(御路), 서측의 길은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世子路)이다. 신로는 외대문 안에서 정전과 영년전의 남신문 밖까지는 거칠고 널찍한 박석으로 남신문 안에서 상월대 아래까지는 전석으로 설치되었다. 어로와 세자로는 재궁으로 이어진 다음 정전과 영녕전 동문 안 상월대 아래까지 설치되었다.

 

 

종묘 안내판.....

1 외대문, 2 정전 남신문, 3 정전, 4 영녕전, 5 향대청 일원, 6 재궁 일원, 7 전사청 일원, 8 정전 악공청, 9 영녕전 악공청,

종묘(宗廟):

 

종묘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국가 최고의 사당이다. 조선의 태조가 한양을 새 나라의 도읍으로 정하고 나서 바로 짓기 시작하여 1395년에 경복궁과 함께 완공했다. '궁궐의 왼쪽인 동쪽에 종묘를, 오른쪽인 서쪽에 사직단을 두어야 한다'는 고대 중국의 도성 계획 원칙을 따라 경복궁의 왼쪽인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 후 왕조가 이어져 봉안해야 할 신위가 늘어남에 따라 몇 차례 건물의 규모가 커져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왕이나 왕비가 승하하면 궁궐에서 삼년상을 치른 후에 그 신주를 종묘로 옮겨 모신다. 정전에는 공덕이 뛰어난 임금들을 모셨고, 영년전에는 태조와 4대조와 죽은 뒤에 왕으로 추존되었거나 정전에서 신주를 옮겨온 임금들을 모셨다. 정전의 신실 19칸에는 태조를 비롯한 왕과 왕비의 신위 49위를, 영년전의 신실 16칸에는 신위34위를 모셔 두었다. 왕위에서 쫒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위는 종묘에 모시지 않았다. 종묘제례는 국가이 가장 큰 제사로서 정전에서 1년에 5번, 영년정에서  1년에 2번 열렸으며, 왕이 친히 주관했다. 현재 종묘제례는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행하고 있다. 제사 외에도 종묘에서는 국가의 중요한 일을 알리거나 기원하는 의식을 행하기도 했다. 종묘의 모든 건물은 장식과 기교를 배제하여 단순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단순함 속에서 삶과 죽음의 깊은 의미를, 엄숙함 속에서 왕조의 신성한 권위를 읽을 수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과 달리 한국의 종묘는 건축물과 더불어 제레와 제례악의 본 모습을 그대로 ㅗ존하여 실현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종묘는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2001년 '인류 구전 및 무현유산 걸작'으로 등재되었다.       

 

향대청 일원

 

제례에 바칠 향.축문.폐백(香祝幣)을 보관하고 졔례를 주관하는 제관들이 대기하던 곳이다. 또한 제례에 종사하는 집사들의 집사청(執事廳) 도 딸려잇다. 정면 9.5칸의 긴 건물이며 앞에는 행각이 놓여있어 남북으로 긴 뜰이 만들어져 있다. 남쪽의 망묘루(望廟樓)는 제례를 지낼 때 임금이 잠시 머물며 앞선 임금들의 공덕을 기리던 곳이다. 망묘루 옆쪽에 연못을 만들었고 뒤쪽에 공민왕 신당을 두었다.    

향대청  /  망묘루  / 공민왕 신당  / 현위치
중연지

 

중연지(中蓮池),  아주 오래된 향나무....종묘의 연못은 풍수와 음양사상을 배경으로 조성되었다. 못 가운데 둥근 섬에는 향나무를 심어 종묘가 제례의 공간임을 나타냈다. 종묘는 즐기는 공간이 아니었기에 연꽃을 심지 않았고 물고기도 기르지 않았다.

 

 

향대청

 

 

↑ 정전,  ↗ 전사청

 

세자제실

 

재궁

정전 ..... 보수 공사 중

 

동문

 

정전 신위 봉안도

제1 실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  신의고황후(神懿高皇后) 한씨,  신덕고황후(神德高皇后) 강씨 
제2 실   태종대왕(太宗大王)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
제3 실   세종대왕(世宗大王)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
제4 실   세조대왕(世祖大王)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
제5 실   성종대왕(成宗大王)  공혜왕후(恭惠王后) 한씨,  정현왕후(貞顯王后) 윤씨 
제6 실   중종대왕(中宗大王)  단경왕후(端敬王后) 신씨,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 문정왕후(文定王后)  윤씨
제7 실   선조대왕(宣祖大王)  의인왕후(懿仁王后) 박씨, 인목왕후(仁穆王后) 김씨 
제8 실   인조대왕(仁祖大王)  인렬왕후(仁烈王后) 한씨,  장렬왕후(莊烈王后)  조씨
제9 실   효종대왕(孝宗大王)  인선왕후(仁宣王后)  장씨
제10실  현종대왕(顯宗大王)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
제11실  숙종대왕(肅宗大王)  인경왕후(仁敬王后) 김씨,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 인원왕후(仁元王后) 김씨
제12실  영조대왕(英祖大王)  정성왕후(貞聖王后) 서씨,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 
제13실  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  효의선황후(孝懿宣皇后)  김씨
제14실  순조숙황제(純祖肅皇帝)  순원숙황후(純元肅皇后) 김씨
제15실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  신정익황후(神貞翼皇后) 조씨
제16실  헌종성황제(憲宗成皇帝)  효현성황후(孝顯成皇后) 김씨, 효정성황후(孝定成皇后) 홍씨
제17실  철종장황제(哲宗章皇帝)  철인장황후(哲仁章皇后) 김씨 
제18실  고종태황제(高宗太皇帝)  명성태황후(明成太皇后) 민씨
제19실  순종효황제(純宗孝皇帝)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민씨,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윤씨

불천위-  유교에서는 사대봉사(四代奉祀)라고 하여 4대조(부, 조부, 증조부, 고조부)까지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 기본이었으나, 4대를 넘어가면 신위(神位)를 사당에서 옮겨 땅에 묻고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러나 고인이 특별한 위인이고 덕망이 있는 경우, 신위를(位) 옮기지 않고((遷)不_불천), 후손들이 대대로 계속 제사를 지내 기리는 것을 허용했는데, 이것이 바로 불천위이다. 불천위 제도 때문에 집안이 큰 경우 제사가 많아 종가집 등의 며느리들이 고생하기도 하였다. 불천위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나라에서 정한 국불천위(國不遷位), 유림들에 의한 향불천위, 문중에서 자체적으로 유명한 조상을 기리는 사불천위 등이 있는데, 종묘에 배향된 배향공신의 경우 해당 인물의 가문에서도 불천위로 제사를 지냈다. 예를 들어 태조 이성계나 세종대왕은 당연히 불천위로 모시는 등 이다. 불천위가 결정되면 종묘 정전에 신위를 그대로 모시고 제사를 드리며 그렇지 않은 경우 영녕전으로 천위된다. 왕들은 사후 처음은 정전에, 천위시 영녕전에 신위가 옮겨가게 된다.  그러나 정전에는 이유를 알 수 없이 불천위된 왕들이 더러 있다. 임진왜란,정묘호란 등으로 성과가 없고 백성을 위태롭게 한 왕들이다.   

* 조선 왕들의 불천위 ( 영녕전에 불천위는 없고, 전부 정전에만 있다 ):  1실 태조(太祖) 초대 군주/ 2실 태종(太宗) 국가 기틀 마련/ 3실 세종(世宗) 제도 정비, 영토 확장/ 4실 세조(世祖) 여진족 토벌, 왕권 강화/ 5실 성종(成宗) 조선 전성기/ 6실 중종(中宗) 폭군 축출, 사림 중용/ 7실 선조(宣祖) 국가 보전, 족보 오류 수정/ 8실 인조(仁祖) 국가 보전/ 9실 효종(孝宗) 북벌, 서인 등용/ 10실 현종(顯宗) 국가 안정, 숙종의 요구/ 11실 숙종(肅宗) 대동법 시행, 정국 안정/ 12실 영조(英祖) 탕평책, 조선 중흥기/ 13실 정조(正租) 조선 중흥기, 문체반정

이상 13명의 왕이 불천위로 지정되었고, 나머지 정전에 있는 순조, 문조(효명세자, 추존), 헌종, 철종은 조선 멸망 당시 4대가 아직 안지나서 영녕전에 옮기지 않았고, 고종황제와 순종황제는 조선이 멸망한 뒤까지 살았지만 정전에 자리가 남아있어서 옮긴 경우다. 공신이 아닌 경우, 특히  여성이 그 개인의 공적으로 인해 서훈을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는데, 음식디미방(국내 최초 음식 조리서)을 쓴 정부인(貞夫人) 안동 장씨 장계향(張桂香)이 여성으로서 국불천위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종묘대제는 조선왕조의 사당인 종묘에서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의례로, 봄.여름.가을.겨울. 납일 등 1년에 5번 지냈으나 현재는 매년 5월 첫번째 일요일에 국제문화행사로 봉행되고 있다. 제향의식 뿐 아니라 제례악과 일무 등 유형과 무형의 세계유산을 함게 감상할 수 있는 종묘대제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종합적인 의례이다

 

종묘제례,  아래 사진 (왼쪽부터) -  취위, 신관례, 천조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음복례, 송신례, 망료례, 망료.

 

전사청

 

전사청 일원

 

제례를 치를 때 음식을 마련하는 곳으로 평소에는 이곳에 제사용 집기들을 보관하였다. 'ㅁ' 모양의 건물로 마당에는 음식을 준비하던 돌절구들이 남아있다. 정전 동문 옆의 수복방(守僕房)은 종묘를 지키는 관원들이 사용하던 곳이며, 그 앞에 찬막단과 성생위가 있다. 찬막단은 제사에 바칠 음식을 상에 올리;고 검사하는 곳이며, 성생위는 제물인 소.양.돼지를 검사하는 곳이다. 전사청 동쪽에는 제사용 우물인 제정(祭井)이 있다.

전사청 / 수복방 / 천막단 / 제정 / 성생위  / 현위치

 

정전 가는 길

 

정전 남문

 

 

정전 일원:

 

정전은 종묘의 중심 부분으로, 긴 정전의 앞에는 넓은 월대(月臺: 중요한 건물 앞의 넓은 대)를 두었고 사방으로 담장을 둘렀다. 남쪽 신문으로는 혼령이, 동문으로는 임금을 비롯한 제관들이, 서문으로는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공과 춤을 추는 일무원(佾舞員: 종묘 제례 때 여러 줄로 서서 춤을 추는 사람)) 들이 출입했다. 1395년에 신실 7칸의 규모롤 처음 만들어 졌고, 여러 차례 널려지어 현재는 19칸에 이르는 매우 긴 목조 건물이 되엇다.  거친 월대 바닥과 그 위로 육중한 지분이 떠 잇는 모습은 숭고하고 고전적인 건축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남쪽 담장 안네는 공신당(功臣堂)과 칠사당(七祀堂) 을 각각 동쪽과 서쪽에 세웠으며, 서문 밖에는 제례악을 준비하는 악공청(樂工廳)을 두었다. 

* 신실: 신주를 모시는 방
* 신주: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은 나무 조각(패)      

 

 

" 어제를 담아 내일을 전합니다 " ...일본인 행객들이 일본어 해설사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공사중 인 그물 천막 사이로 정전의 윤곽이 보인다.

 

동문 방향

 

서문 방향

 

남문

 

진달래가?

 

종묘 정전

 

악공청

 

 

종묘제례악은 종묘 제례의식에 맞추어 연주하는 것으로, 기악.노래.춤이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이다. 악기 연주에 맞추어 선왕의 공덕을 기리는 노래를 부르며, 열을 맞추어 추는 일무를 춘다. 종묘제례악은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고, 2001년에 종묘제례와 더불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영녕전

 

영녕전 일원:

영녕전은 정전에 있던 신주를 옮겨 모시기 위해 1421년 지은 건물로, '영녕'은 '왕가의 조상과 자손이 길이 평안하라'는 뜻이다. 시설과 공간 형식은 정전과 유사하지만 정전보다 규모가 작고 좀 더 친밀하게 지었다. 정전과 유사하게 2층으로 된 월대(月臺: 중요한 건물 앞의 넓은 대) 주위에 담장을 두르고 동쪽.남쪽.서쪽 세곳에 문을 두었다. 원래 6칸 규모였으나, 어러 차례 좌우에 칸을 만들어 현재 시실은 모두 16칸이다. 가운데  4칸은 태조의 4대조를 모신 곳으로 좌우 협실보다 지붕이 높다. 동쪽에는 제사 도구를 보관하는 제기고를, 서남쪽 바깥에는 제례악을 준비하는 소악공청(小樂工廳)을 두었다. 

* 신실: 신주를 모시는 방
* 신주: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은 나무 조각(패)
         

영녕전 신위 봉안도

제 5실  정종대왕(定宗大王)  정안왕후(定安王后) 김씨  
제 6실  문종대왕(文宗大王)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
제 7실  단종대왕(端宗大王)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
제 8실  덕종대왕(德宗大王)  소혜왕후(昭惠王后)   한씨
제 9실  예종대왕(睿宗大王)  장순왕후(章順王后) 한씨 안순왕후(安順王后) 한씨
제10실 인종대왕(仁宗大王)  인성왕후(仁聖王后)  박씨
제 1실  목조대왕(穆祖大王)  효공왕후(孝恭王后) 이씨  
제 2실  익조대왕(翼祖大王)  정숙왕후(貞淑王后)  최씨
제 3실  도조대왕(度祖大王)  경순왕후(敬順王后) 박씨 
제 4실  환조대왕(桓祖大王)  의혜왕후(懿惠王后)  
제11실  명종대왕(明宗大王)  인순왕후(仁順王后) 심씨
제12실  원종대왕(元宗大王)  인헌왕후(仁獻王后) 구씨 
제13실  경종대왕(景宗大王)  단의왕후(端懿王后) 심씨 선의왕후(宣懿王后) 어씨
제14실  진종소황제(眞宗昭皇帝)  효순소황후(孝順昭皇后) 조씨 
제15실  장조의황제(莊祖懿皇帝)  헌경의황후(獻敬懿皇后) 홍씨
제16실  의민황태자 영왕(懿愍皇太子 永王)  의민황태자비(懿愍太子妃) 이씨 

 

종묘 뒤편 둘레길을 따라 산책을 하여 빙 돌아 종묘 외대문으로 나갔다. 

 

종묘, 세계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