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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나의 산행

① 수락산 계곡- ( 2024.05.16 )

by the road of Wind. 2024. 5. 16.

수락산 계곡

- ( 2024.05.16 )

 

《  장암역- 석림사- 수락산 계곡길 - 깔따고개 》:

 

 

어제 비 온 후 청명 날씨인데, 수락산 계곡을 걸어보았습니다. 7호선 전철 장암역에서 내려 석림사가 있는 수락산 계곡을 올라 깔딱고개에 이르렀습니다. 깔딱고개 가는 길에서는 깜빡 길을 잘 못들어 산비탈길에서 로프 바위 앞에서 이 바위를 올라설 수 없어서 더는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평지같이 길이 완만하고 좋았는데 왜 이러지 의아하게 생각하다 길을 돌아서기로 하였습니다. 아무튼 알바를 조금하고 내려오던 중 계곡방향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에게 길을 물으니 계곡방향의 길을 가르쳐 주어 다시 깔딱고개로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정상-깔딱고개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 아니라 바로 그 아래 있는 계곡 방향으로 내려 서는 길이 맞는 길이었습니다. 이렇게 산에서는 잠깐만 길을 잘 못 들어서거나 장애물을 만나면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깔딱고개에서는 고개 지나 계곡 방향으로 내려서지 않고, 우측의 능선길로 진행해 보았습니다. 이 능선 봉우리에는 김시습 선생의 호를 딴 매월정이 있습니다. 이곳에사 바라보는 수락산 일원의 경치가 압권입니다. 이곳에서 능선을 따라 수락산 역까지 걸었습니다. 이 능선은 꽤 긴 거리였습니다. 매월정 오르는 길에서는 바위에 로프도 만나고 긴장하여 그런지 갈증을 많이 느꼈습니다. 어서 빨리 하산하여  시원한 캔맥주 하나 먹고 싶은 생각이 눈에 어른거렸습니다.  

 

수락산(水落山)이라는 이름은 거대한 화강암 암벽에서 물이 굴러떨어지는 모습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이름처럼 계곡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주말이면 도심에서 몰려온 산악인들로 항상 붐비는 산이며 북한산(北漢山), 도봉산(道峰山), 관악산(冠岳山)과 함께 서울 근교 4대 명산입니다.

 

나의 경우는 수락산 등산의 경우 항상 힘들었습니다. 기차바위 코스는 아득한 암벽에 밧줄을 잡고 유격훈련하 듯 오르는 코스인데 아주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깔딱고개에서 암봉을 정면으로 치고 오르는 코스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나의 경우 등산에서 가장 쉬운 코스는 석림사를 거쳐 전망바위를 경유해 오르는 코스가 거리 상으로나 힘이 그렇게 많이 들지 않고 긴장감이 낮은 코스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정상에서 하산은 암벽이 없는 남양주 별내면 청학동  방향의 계곡길을 따라 내려서곤 하였습니다. 

 

 

A) 등산 (장암역-  수락계곡 - 깔딱고개):

▶산책 : 걸음수 6,005 steps, 거리 3.54 km, 소모열량 181 kcal, 소요시간 01:04 hrs, 속도 3.2 km/h, 기온 18℃. 

코스 : (7호선)  장암역 - 노강서원 - 석림사 - 수락계곡 - 깔딱고개.

 

B) 하산 (깔딱고개 - 능선길 - 수락산역):

▶산책 : 걸음수 7,597 steps, 거리 4.19 km, 소모열량 250 kcal, 소요시간 01:07 hrs, 속도 3,7 km/h, 기온 19℃. 

코스 : 깔딱고개 - 매월정 - 능선길 - 수락산역.

 

(A+B) 합계

▶산책 : 걸음수 13,602 steps, 거리 7.73 km, 소모열량 431 kcal, 소요시간 02:11 hrs, 속도 3,4 km/h, 기온 18-19℃. 

 

 

등산 ( -> 깔딱고개):

 

전철에서 바라보는 도봉산

 

전철에서 바라보는 수락산

 

장암공용주차장

 

↑ 노강서원, 석림사 가는 방향

 

수락산 숯불닭갈비, 막국수

 

GS 편의점....

석림사계곡 입구 이정표:  <- 3.0km 동막골, -> 석림사 1.0km

 

장암동 마을길

 

수락식당

 

산마루

 

느티나무집

 

밤나무집

 

장암골

 

 

 

수락산장

청풍정 유지

서계 박세당 선생 /  궤산정, 노강서원, 청풍정...여기는 청풍정 유지 (淸風停 遺址)이다...주추돌만 남아있다.

서계 박서당은 조선 후기 학자이자 문신으로 1668년에 10여년 동안의 관료생활을 접고 양주 석천동으로 물러나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는데, 저서로는 '색경', '사변론' 등이 있다. 서계 박세당의 사랑채를 지나 계곡을 따라 오르다보면, 선생이 제자들과 학문을 논하였던 정자 터와  바위에 새겨진 석천동 서계유거, 취승대라는 선생의 친필을 확인할 수 있다. 노강서원은 정재 박태보를 기리고자 노량진에 세워진 사당이었는데, 한국전쟁 때 훼철되어 1968년 이곳에 재건립 되었다. 본래 이곳은 박세당이 김시습을 기리고 그의 영정을 모시고자 세운 청절사 터 였으나 후에 김시습이 생을 마친 부여에 새로운 영당을 짓게 되므로서 이름만 남아있던 것이 계기가 되어 현재의 노강서원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노강서원

 

노강서원

 

노강서원은 1689년(숙종 15)에 인현왕후의 폐위가 부당하다고 진언하다 죽음을 당한 정제 박태보(朴泰輔,1654~1689)의 뜻을 기리고 지방 교육의 장으로 삼기 위하여 1695년(숙종21)에 서울 노량진에 건립하였다. 조윤벽 등의 간청으로 1697년(숙종27) 에 숙종이 "노강" 이라고 이름을 지어 새긴 현판을 내렸다. 이후 1754년 (영조 30)에 다시 지었으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 조치 이후에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박태보는 박세당의 둘째 아들로 1677년(숙종 3)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고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1689년(숙종 15)에 인현왕후 민씨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진도로 유배 가던 중, 노량진에서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694년(숙종 20)에 모든 죄를 사면 받고 그의 충절과 학문이 높이 평가되어 영의정의 벼슬과 문열(文烈)의 시호가 내려졌으며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이 서원을 건립하였다. 노량진 노량서원은 6.25전란으로 소실되어 1969년에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옮기면서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을 봉안했던 청절사의 터에 다시 지은 것이다.  

 

노강서원

 

서계 문화유적과 무형문화유산


수락산 석천동(石泉洞)은 서계(西溪) 박세당 선생이 1668년 관직을 그만 두고 수락산 자락인 이곳에 정착하면서 명명한 이름이다. 오늘날 석촌동 공간은 조선시대 문화의 복합적인 매력을 잘 보여주고있다. 서계 종택(宗宅)을 중심으로 수락산 자락에 있는 서계 및 조상 묘역은 전통 친족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노량진에서 장암동으로 이전된 노강서원은 지역사회 유림전통을 대변하고 있으며, 관린정, 궤신정, 계당터는 과거 석촌동 강학공간을 대표하고 있다. 청풍정, 취승대 등은 수양의 공간이자 교류및 풍류의 공간으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석림사는 서계 선생 생존했을 당시 석림암(石林庵)으로 부터 출발한 절로 과거 유교문화와 불교문화의 공존 방식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석촌동은 과거 역사로 부터 전해진 서원, 선염, 그리고 다양한 유적과 함께 현재의 무형문화가 종가를 통해 전승되는 총체적인 역사문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석천동은 역사문화 공간에서 과거의 문화유적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무형문화유산을 함께 만날 수 있다. 특히 서계 선생의 정신을 받들어 설립된 서계문화재단은 석천동 역사문화를 학술적으로 발전 시키고 지역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개와 절의의 상징 정재 박태보

정재(定齊) 박태보(朴泰輔) 선생은 서계의 둘째 아들로 1677년 알성문과시에서 아버지에 이어 장원을 하였다., 중앙 정치무대에서 교리, 홍문관 등 관직을 지냈으나 당시 잦은 환국과 봉당 간 갈등으로 인하여 혼란한 상황을 겪었다. 특히, 정재 선생은 숙동 1689년 기사환국 때 인현왕후 폐위를 강력 반대하였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피와 살이 벗겨지고 문드러질 정도의 모진 고문을 받았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진도 유배를 명 받았으나 유배를 떠나던 중 에 노량진에서 숨을 거두었다.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었지만, 비리를 보면 참지 못하고 의리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다. 인현왕후가 복위된 이후에 숙종은 충신(忠臣)에 대한 예우로 정려를 세우고 영의정 벼슬을 추증한 후, 노량진에 풍계사(豊溪祠)를 세워 고인을 애향하였다. 숙종 27년(1701년) '노강(鷺江)'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또한 경종 3년(1723년)에는 '문열(文烈)' 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그 후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서 1968년 노강서원을 노량진이 아닌 종가가 있는 의정부 장암동에 다시 복원하였다. 

숙종 대 정재 선생의 기개와 절의는 한말까지 왕실 뿐 만 아니라 민간에 까지 널리 칭송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재 선생생의 일화를 담은 여러 이본(異本) 한글 소설이 유유행하였다.  현재까지 <박태보전>, <박한림전(朴翰林傳)>, <박태보실기> 등의 한글 소설이 고서로 주요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러한 측면은 정재 선생이 조선 후기 절의의 상징으로 대중들에게 얼마나 확산되었는지 잘 보여 주고 있다.  

 

시대의 지성 서계 박세당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선생은 현종 1년(1660년) 증광문과시험에 장원급제 한 이후 중앙에서 관직생활을 하였다. 관직에 있으면서 사대부의 무위도식에 대한 비판, 실리주의 외교 정책 주장, 백성을 위한 제도 개혁 등에 앞장 섰다. 하지만 10년 정도의 관직생활을 접고 40세가 되던 해인 1669년도에 수락산 석천동으로 물러났다. 석천동에서 서계 선생은 자신의 이상을 지역사회에서 실천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당시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었던 매월당(梅月堂) 김시습 선생의 영당을 조성할 수 있었고 향후 청절사로 지역 유림들의 지지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또한 일반백성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수 있는 농서인 <색경(穡經)>을 저술하였다. 뿐만 아니라 당대 주요사상이었던 주자학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사변록 思辯錄> 등과 같은 저술로 남겼다. 한편 그는 가장 불행한 삶을 살았다. 석천동에 오기전에 의령남씨 부인과 사별하였고, 재혼 이후 광주정씨 부인도 석천동에서 일찍 사별하게 되었다. 이후 첫째 아들 박태유와 둘째 아들 박태보 마저 저세상으로 보내야 했다. 서계 선생 본인이 돌아가실 때 후손에게 " 장례를 지낸 후 아침 저녁으로 오리는 상식(上食)을 그치라고 유계(遺戒)를 내렸다. 왕실에서 3년간 예법으로 상식을 올리도록 한 것과는 상충되어 논쟁이 벌어졌고 급기야 서계선생의 유계를 따른 후손들이 관직을 잃고 유배가게 되었다. 서계선생이 돌아가신 후 '문정(文貞)' 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그 후 서계 사후 양주 수락산을 지나가는 많은 문인들이 속천동 서계 영당에 들러 고인을 기렸다. 서계 이후 직계 자손들도 현달하여 중앙관직 등을 역임한 여러 인물이 배출되었다. 

서계 연보:

1629년     1세-   8월 19일 아버지 박정(朴炡)의 임지인 남원부 관아에서 출생   
1645년  17세-   의령 남씨 남일성의 딸과 혼인.
1652년  24세-   유생 정시에 제3등 입격
1660년  32세-   가을 생원 출시 장원, 회시 2등 합격, 겨울 증광시에서 장원함.
1661년  33세-   예조.병조좌랑 역임. 
1666년  38세-   양덕방에 신거를 마련함. 6월 부인 의령 남씨 사망. 8월 북평사로 임명됨 (북정록 北征錄)저술.
1667년  39세-  수찬, 부교리, 교리 역임. 광주 정씨와 혼인.
1668년  40세-  정월 벼슬을 버리고 양주 수락산 석천동에 입거. 교리, 이조좌랑 등의 벼슬에 임명되었지만 출사하지 않음. 10월 정절사 서장관으로 사행(使行). <사행록>,<연행록> 저술.
1673년  45세-  삼자(三子) 태한 출셍.
1678년  50세- 부인 광주 정씨 사망.
1679년  51세- 시냇가에 관란정(觀爛停), 궤산정(簣山停) 짓고 강학.
1680년  52세- 통정원 동부승지에 임명되었으나  사직소를 올림. 11월 <대학사변록(大學思辨錄> 저술.
1681년  53세- 충청도관찰사와 사간원 대사간에 임명되었지만 출사하지 않음. < 신주도덕경> 저술.
1686년  58세-  3월 장자 태유 사망(향년 39세). 석림사 옆에 동봉사우 건립하고 무량사 김시습 영정 모시고 봉안.
1689년  61세- 차자 태보 사망(향년 36세). <맹자사변록> 저술.
1698년  70세- 기로소에 들어감. 
1703년  75세- 4월 이경석<신도비명>과 <사변록>으로 삭탈관직 유배에 처해짐. 5월 판운 이인화의 상소로 풀려나 석천동에 들어옴. 8월 21일 임종. 석천동 북편에 장사지냄.    
 
  

석림사 일주문

 

수락산 등산 안내도

 

코스 안내도

1. 석림사코스: 약 2시간 소요
1-1코스: 2.6km
석림사 - 제1쉼터 - 제2쉼터- 제3쉼터 - 깔딱고개 - 정상
1-2코스: 2.2km
석림사 - 제1쉼터 - 제2쉼터- 제3쉼터 - 제4쉼터- 사진촬영소(전망대) - 능선길 - 정상
1-3코스: 2.3km
석림사 - 제1쉼터 - 제2쉼터- 도정봉능선 - 기차바위 - 헬기장 - 정상

2. 동막골 코스: 4.2km / 약2시간40분 소요
산림정화초소 - 산불감시탑 - 동막봉 - 도정봉 - 도정봉능선 -   기차바위 - 헬기장 - 정상

3. 만가대 코스: 3.6km / 약2시간20분 소요
산림정화초소 - 수락사 -  동막봉 - 도정봉 - 도정봉능선 -   기차바위 - 헬기장 - 정상

4. 흑석 코스: 2.9km / 약1시간50분 소요
산림정화초소 - 흑석능선 -   기차바위 - 헬기장 - 정상

** 참고:  수락산 등산코스는 많으며, 이 경우는 석림사 주변을 기준한 등산코스이다.

 

수락산 석림사

 

수락산 등산 안내도

 

코스 안내도

1. 석림사코스: 약 2시간 소요
1-1코스: 2.6km
석림사 - 제1쉼터 - 제2쉼터- 제3쉼터 - 깔딱고개 - 정상
1-2코스: 2.2km
석림사 - 제1쉼터 - 제2쉼터- 제3쉼터 - 제4쉼터- 사진촬영소(전망대) - 능선길 - 정상
1-3코스: 2.3km
석림사 - 제1쉼터 - 제2쉼터- 도정봉능선 - 기차바위 - 헬기장 - 정상

2. 동막골 코스: 4.2km / 약2시간40분 소요
산림정화초소 - 산불감시탑 - 동막봉 - 도정봉 - 도정봉능선 -   기차바위 - 헬기장 - 정상

 

3. 신곡능선: 4.3km / 약2시간50분 소요
3-1. 코스:
사방댐 - 신곡능선 - 동막봉 - 도정봉 - 도정봉능선 -   기차바위 - 헬기장 - 정상
3-2. 코스:
둔배미- 신곡능선 - 동막봉 - 도정봉 - 도정봉능선 -   기차바위 - 헬기장 - 정상

4. 만가대 코스: 3.6km / 약2시간20분 소요
산림정화초소 - 수락사 -  동막봉 - 도정봉 - 도정봉능선 -   기차바위 - 헬기장 - 정상

5. 흑석 코스: 2.9km / 약1시간50분 소요
산림정화초소 - 흑석능선 -   기차바위 - 헬기장 - 정상

** 참고:  수락산 등산코스는 많으며, 이 경우는 석림사 주변을 기준한 등산코스이다.

 

 

" 마음의 평화  행복한 세상 "

 

석림사

범종각

적묵당

큰법당

 

석림사: 1671년 석현화상이 석림암이라는 조그만 암자를 창건한 것이 기원으로, 1698년과 1745년 2차례 대홍수로 유실된 것을 복원하고 석림사라고 절 이름을 변경했다고 한다. 그 이후 6.25전쟁으로 한차례 더 소실되었다가 1965년에 상인스님이 소실된 옛터에 현재의 석림사 전각들을 신축하였다.


비구들이여!  

1. 태어남도 고통이요,
2. 늙음도 고통이요,
3. 병듦도 고통이요,
4. 죽음도 고통이요,
5. 좋아하지 않는 이와 함께 하는 것도 고통이요.
6. 좋아하는 이와 함께 하지 못하는 것도 고통이요.
7.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것도 고통이요
8. 다섯 가지(五蘊)를 나라고 집착하는 것도 고통이다.  

이와 같은 8고(苦)를 고통의 진리라 한다.   - < 초전법륜 >

 

 

범종각

수락산 계곡

시원하고 맑은 계류...본격적인 수락산 계곡 산행이 시작되었다.

 

계곡 데크 쉼터 

이 다리를 지나 조금 가다 계류를 건너면 아래 이정표를 만난다.

-> 1.5km 주봉(정상), -> 1km 깔딱고개, -> 사진촬영소 900m, <- 석림사 500m.

* 이 이정표가 석림사 계곡을 올라와 계곡을 건너자마자 산비탈 초입에 있는 이정표이다. 여기에서 부터는 계곡 왼쪽 중턱을 지나가게 된다.

 

장암역, 도봉산 방향

 

암벽 중간 길을 가게된다. 수락산은 암봉의 산이며, 계곡도 양편에 앙벽이 많다.

삼거리 이정표 (갈림길):

↖ 주봉(정상) 1.3km, ↖ 전망대 760m, ↙ 석림사 850m, -> 깔딱고개 600m

 

나는 여기에서 깔딱고개 가는 길을 잘 못 돌어서게 되었다. 산비탈을 돌아 오르며 가는 길에 매듭 로프가 있는 바위 덩어리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나는 도저히 그 바위를 다리를 걸어 올라탈 수 없었다. 이길이 정상으로 가는 또 다른 길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모두 포기하고 석림사 방향으로 되돌아 가려고 길을 내려갔다. 그런데 조금전 갈림길 이정표 아래 계곡 부분에서 등산객들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물어보니 이정표 아래 계곡 방향으로 깔딱고개 가는 길이 있음을 알았다. 매우 착각하기 쉬운 길 찾기다.     

 

산악회 리본도 보이고 계속 진행...

그런데 산 비탈 방향으로 오르며 바위와 로프가 나오고...뭔가 옛날 산행시와 다른 느낌이 들긴든다.  

아, 여기에서 바위로 올라서지 못하여 되돌아나갔다. 지금 바위 전체를 촬영하지 못했다. 로프 끝을 잡고 여기만 올라서면 되는데, 다리를 걸어 나의 경우는 도저히 바위로 오를 수 없었다. 많은 부분을 힘들게 진행하다 이렇게 되면 참으로 곤란할 것이다. 

 

다시 주봉, 깔딱고개 갈림길 이정표

갈림길 이정표에서 조금 아래에 있는 깔딱고개 가는 길의 이정표. 

<- 750m 석림사, -> 깔딱고개 750m

 

119 깔딱고개 지점표시:  다사 6265 6635

 

깔딱고개 이정표: 

* 깔딱고개는 장암역 또는 수락산역에서 등산으로 올라와서 만나는 수락산 정상, 매월정 봉우리 가는 사거리 같은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이다. 나는 여기에서 매월정이 있는 봉우리에 오랐다, 능선을 타고 수락산계곡 입구, 수락산역으로 내려 가려한다.

<- 0.7km 수락산 정상, -> 매월정 0,3km, ↑ 수락산역 2.5km, ↓ 장암역 2.8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