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① 운길산 수종사- ( 2024.11.06 )

by the road of Wind. 2024. 11. 9.

① 운길산 수종사

- ( 2024.11.06 )

 

- 《  수종사  》

 

운길산 수종사를 다녀왔습니다. 운길산 수종사는 운길산 8부 능선 절상봉 아래 있는 절로서, 예부터 시인묵객들이 동양의  제일 가람이라고 격찬하던 곳입니다. 그만큼 수종사에서의 조망은 탁월합니다. 북한강남한강, 두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팔당호수의 경치는 너무 아름답습니다. 오늘따라 수종사 가는 차량들이 많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수능일자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불교 신자들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자식.손자들의 대학입학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수종사를 많이 찾는 것 아닌가 추측해보기도 했습니다. 운길산역에서 수종사까지 왕복하면 소요시간 2시간 이내 멀지 않은 거리이므로 나는 가끔 수종사를 찾곤 한답니다. 

 

▶ 산 책:  걸음수 11,408 steps, 거리 6.69 km, 소모열량 386 kcal, 소요시간  02:00 hrs, 속도 3.1-3.5 km/h, 기온 13℃. 
▶ 코 스:  (경의중앙선) 운길산역 - 진중리 -  시멘트 임도 -  운길산 수종사 (왕복

 

( 8호선 -> 경의중앙선 ) 환숭역인 구리역에서....구리역에서 바라보는 가로수 단풍이 좋구나!!

 

양정역 지나 덕소역 가는 전철에서 바라보는 중간 멀리 백봉산(590m) 방향, 그 왼쪽 아스라히 보이는 마석의 천마산(810m)이다. 이 사진에서 백봉산 능선의 윤곽을 잘 볼 수 있다. 중간의 백봉산에서 왼쪽 능선은 천마산과 백봉산 사이의  마치고개 내려 가는 능선이고, 오른쪽은 마석 창현리 또는 남양주 와부읍 묘적사 하산하는 길의 능선이다. 

 

운길산역 직전의 진중리 마을 모습

 

운길산역 플렛홈에서 .....운길산(610m)과 그 오른쪽 뾰족한 절상봉(522m) 아래에 수종사가 있다. 오늘 산행하려는 목적지이다. 

 

예봉산.운길산 등산 안내도


1) 팔당역- 등산로입구- 예봉산: ( 거리 2.88 km/ 소요시간 1:50분 ) 
2) 팔당역- 등산로입구- 벗나무쉼터- 예봉산: ( 거리 3.56 km/ 소요시간 2:10분 ) 
3) 천주교묘지- 승원봉- 견우봉-직녀봉-율리고개-율리봉-  벗나무쉼터- 예봉산: ( 거리 5.15 km/ 소요시간 2:40분 ) 
4) 도곡리마을버스종점- 새재고개- 적갑산- 철문봉- 예봉산: ( 거리 6.15 km/ 소요시간 3:05분 ) 
5) 도곡리마을버스종점- 새재고개- 운길산: ( 거리 6.50 km/ 소요시간 3:20분 ) 
6) 운길산역- 율리봉- 벗나무쉼터- 예봉산: ( 거리 5.25 km/ 소요시간 2:50분 ) 
7) 운길산역- 운길산: ( 거리 3.10 km/ 소요시간 1:40분 ) 
8) 조안보건지소 - 운길산: ( 거리 2.97 km/ 소요시간 1:30분 ) 
9) 한음이덕형별서터- 운길산: ( 거리 2.28 km/ 소요시간 1:15분 ) 

 

↑ 운갈산 정상 3.1km,   주필거미박물관 3.0km, ↖  예봉산 정상 5.28km 

 

수종사 가는 길

정무네 장어집

 

운길산 모습...

 

<- 조곡수산...숯불장어, 민물매운탕, 숯불돼지갈비  예약 031) 576-3051

왕장어한마리(1인분) 37,000, 돼지갈비(1인분) 15,000, 매운탕 (대) 60,000, 중 50,000, 소 40,000,
오리백숙 70,000, 토종닭백숙 70,000, 토종닭볶음 70,000

 

진중리 계곡 방향

 

<- 운길산역 0.33km, -> 운길산 정상 2.72km

 

샛노란 은행나무

 

가을 배추...반갑다. 고향의 어릴 적 생각이 난다. 

 

마루...2022년 5월 KBS TV 방영 생생정보

 

진중리 마을은 곳곳이 아름다운 농촌 풍경이다.

 

진중2리 경노당

 

올해는 감이 풍년이다고 한다. 탐스럽다.

 

가을 코스모스

 

물의 정원 장어마당

 

북한강 물의 정원 방향

 

앗,배추다!!

 

cafe & bakery River illy

 

수종사 명승 안내....명승 제109호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

 

운길산까지 시멘트 임도를 따라 오른다

 

여기에서 계곡방향으로 잠깐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산길이 훼파되어 정비가 필요하다.  

 

가파르고 좁은 임도에서 더 이상 오르지 않고 갓길 공터에 파킹한 차량이 기끔 보인다

 

북한강이 엿보인다. 

 

 

↖ 팔각정, <- 운길산 정상 1.77km, -> 운길산역 1.80km

 

앗, 북한강,  강 건너 멀리 청계산(656.1m), 그 오른쪽 능선에 형제봉(507.6m), 중간 조금 오른쪽에 부용산(362.9m).

 

운길산, 수종사 가는 산 비탈은 숲이 우거져 있어 아름답다. 

 

운길산 수종사 일주문

 

1. 대웅보전, 2. 경학원,  4. 웅진전, 5. 산령각, 6. 삼정헌, 7. 후원채, 8. 다도실, 9. 범종각, 10. 보광전, 11 팔각오층탑 (보물 제1808호), 12. 부도 (경기도유형문화재 제 157호), 13. 불이문, 14. 미륵불, 15. 일주문, 16 화장실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 일원:  (명승 제109호):

조선시대 문인인 정약용이 지은 <유수종사기(遊水鐘寺記)>에 수종사는 신라시대 때 지은지 오래된 사찰이라고 전하고 있니만, 근거 자료가 없어 자세하지 않다. 전하는 설화에 따르면, 고려 태조 왕건이 산 위에서 솟아나는 이상한 구름기운을 보고 가보았더니 우물 속에 동종이 있어서 그곳에 절을 짓고 수종사라고 이름 붙였다고도 하며, 1458년(세조4년)에 금강산을 다녀오던 길에 이두수(二頭水: 兩水里_양수리)  에서 유숙하던 세조가 운길산에서 종소리를 듣고 깨어나 주변을 찾아보니 18나한상이 모셔져 있는 바위굴에서 물소리가 종소리처럼 울려 퍼지고 있어 수종사라 하고 중창하였다고도 한다"  "수종사에는 1439(세종21)에 조성한 태종의 딸 정혜옹주(? ~1424)의 부도와 1494년(성종24)에 태종의 후궁인 명빈 김씨(?~1476) 성종의 후궁들이 발원하여 조성한 팔각오층석탑이 있다. 팔각오층석탑에서는 1682년(인조6)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1584~1632)가 발원하여 조성한 불보살상도 발견되었다" " 1890년(고종27)에는 주지로 있던 풍계 혜일(枫溪慧一)이 고종에게 8천냥을 하사받아 수종사를 중창하였다. 이듬해에 다시 4천냥과  비단을 하사받아 불상 4존(尊)을 개금하고 탱화 3축(軸)을 새로 봉안하였다." 

 

수종사 불이문

 

운길산 정상, 수종사 가는 갈림길 이정표:

<- 운길산역 2.8km, ↑ 운길산 정상 0.8km, -> 수종사(보호수)

 

해탈문

 

두물머리 방향

2025학년도 대입수능 학업성취 백일기도 

 

앗, 가을 수종사

 

삼정헌

 

삼정헌 안에서 다도를 즐기는 사람들...

 

선불장


寺下淸江江上烟(사하청강강상연): 절 아래로는 맑은 강물, 강 위로는 자욱한 물안개
峰巒如畵揷蒼天(봉만여화삽창천): 그림같은 산봉우리는 하늘 높이 솟았네
有力雷公藏不得(유력뇌공장부득): 뇌공의 큰 업적을 감출 수 없어
玄冥榻在殿中間(현명탑재전중간): 아득한 탑 하나가 불사(佛舍) 속에 있구나
百花香動鷓鴣啼(백화향동자고제): 꽃들이 향기 풍기고 자고새 우는 것을 생각함이로다

-  < 초의선사 시(詩) >  

* 선불장 기둥에 붙여있는 주련(柱聯)의 시귀이다.  

 

응진전, 오른쪽 위쪽의 산령각

 

대웅전

 

默言 (묵언)....잠잠해라, 조용히 해라, 입 닫고 구경이나 하여라 등의 뜻일 것이다. 

영국의 비평가, 토머스 칼라일 “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 (Speech is silver, silence is gold)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 유형문화재(제157호), 팔각오층석탑(보물 제1808호), 수종사 부도

유형문화재(제157호) 수종사 부도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은 조선 태종 이방원의 딸 정혜옹주를 추모하고자 제작한 승탑이다. 사리탑은 부처나 고승의 사리를 모셔 두는 조형물로 승탑 또는 부도라고도 한다. 이 탑의 몸돌은 공같이 둥근 모양이며, 겉면에는 구름과 용이 조각되어 있다. 이 탑은 몸돌의 윗ㄱ부분을 튀어나오게 하여 지붕돌의 밑부분에 조립한 것이 특징이다. 지붕돌의 빗물이  흘러내리는 면에 " 태종 태후 太宗 太后/  정혜옹주 貞惠 翁主/  사리 조탑 舍利 造塔/ 시주 문화 류씨/ 금성대군 정통/ 사년 기미 십월일 "이라는 문구가 기록되어 있어 이 사리탑이 조선 세종27년(439)에 정혜옹주를 추모하고자 제작된 것임을 정확히 알수 있다.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은 건립시기가 분명하고 탑의 각 부분에 새겨진 문양이 우수하여 조선 전기의 사리탑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승탑을 만들어 옹주를 추모한 것은 당시 조선 왕실의 불교 신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어서 그 가치가 높다.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보물 제1808호)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경기도 남양주 운길산 중턱에 위치한 수종사에 전해오는 조선시대 석탑이다.수종사는 조선 세조5년 (1459)에 창건되엇다고 전해지며 석탑은 원래 사찰의 동쪽 능선에 잇엇으나 후대에 대웅전 옆으로 옮겼다. 1957년 해체 수리 중에 1층 탑신과 옥개석 등에서 19구의 불상과 1970년 이전 도중에 2층,3층 옥개석에서 12구의 불상이 각각 발견되었는데 함께 발견된 묵서명을 통해 성종 23년(1493)에 건립되었고 인조 6년(1628)에 중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석탑의 형태는 고려시대 팔각석탑의 전통을 이으면서 규모가 작아지고 장식적으로 변모한 조선 초기 석탑의 형태로 지대석 위에 팔강의 대석을 올리고 그 위에 팔각형 기단석을 올렸다. 기단부는 아래로 향한 연꽃과 위로 향한 16엽의 연꽃문양을 각각 새겼고 5층으로 된 탑신 역시 팔각형으로 옥개석(지붕돌) 처마의 부드러운 곡선과 원형기둥, 옥개석 받침 등이 특징적이다. 정상부에는 합가지붕 형태의 삼각형 모양 문양을 2단으로 조성하였고 그 위에 연봉우리 모양의 보주를 올렸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현재까지 확인된 조선시대 석탑 중 유일한 팔각오층석탑으로 건립연대가 확실하고 비교적 작은 규모임에도 안정적인 비율과 지대석에서 상륜부까지 섬세한 조각으로 인해 역사적, 학술적 가치는 물론 높은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대웅전 & 경학원

 

경학원

경학원

 

맑은 물은 하늘이 준 물처럼 흘러내리고 
환한 꽃 저녁 비에 윤기가 난다 
아련히 먼 곳까지 둘러보다가  
눈길 돌려 향그런 초목 대하네 

비탈 골짝 저물녘 서로 합하고 
구름 노을 저 멀리 살짝 나누나 
즐거움에 오히려 나 홀로 서서 
한 밤 더 자며 아니 돌아가고파  

淨水流天液 (정수유천야) 

濃花潤夕霏 (농화윤석비)  

遊神連漭杳(유신연망요)  

回矚注芳菲 (회촉주방비)
厓谷昏相合 (애곡혼상합) 

雲霞遠稍飛 (운하원초비)  

怡怡猶獨立(이이유독립)  

信宿欲無歸 (신숙욕무귀)

- < 다산 정약용, '수종사에서 잠을 자며(宿水鐘寺_유수종사)' >

조선후기 문인 가운데 수종사와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다산 정약용(1762~1836)이다. 수종사에서 내려다 보이는 조안면 능내리에는 정약용의 묘 생가 여유당이 있다. 이곳에서 수종사까지는 약 7.6km거리이다. 다산은 14세에 수종사를 유람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의 여러 이름난 사찰을 방문하였다. 동림사・봉은사・천정암・천진암 등에서 다산은 청정한 삶을 견지하였고, 세속의 명리와 부귀공명을 멀리 하였으며, 고단한 심신을 위로 받았다. 정약용은 유난히 수종사를 좋아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아스라이 보이는 저 수종사에는 / 뜬 아지랑이에 기와 고랑이 분간되네 / 호남에는 사백 군데의 사찰이 있지만 / 끝내 이 높은 누각보다는 못하리"라는 시에는 수종사에 대한 그의 애정이 담겨있다. 정약용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수종사와 전라도 사찰을 비교했는데, 호남의 4백 곳 사찰이 수종사의 높은 누각만 못하다고 평하고 있는 것이다.

 

 

秋來雲物易悽悽_ 추래운물이처처

 宿雨連朝水拍堤_ 숙우련조수박제

 下界煙塵無地避_ 하계연진무지피

 上方樓閣與天齊_ 상방루각여천제

 白雲歷歷誰堪贈_ 백운력력수감증

 黃葉飛飛路欲迷_ 황엽비비로욕미

 我擬往參東院話_ 아의왕참동원화

 莫敎明月怪禽啼_ 막교명월괴금제

 

가을이라 오만 풍경이 처량해지기 쉬운데

밤새도록 비까지 와서 물이 못 둑을 쳐 대네.

속세의 연기 먼지는 피할 길이 없건만

상방의 누각은 하늘과 가지런하여라.

백운은 역력하건만 뉘에게 줄 수 있으랴

단풍잎은 흩날려 가는 길은 헷갈리겠지.

내가 가서 동원의 담화에 참여하려 하노니

밝은 달밤에 괴이한 새가 울지 못하게 하소.   

 

-  < 서거정,  ‘수종사’ >

 

 서거정(徐居正,1420~1488): 서거정은 수종사에 올라 “동방 사찰 가운데 제일의 경치”라 격찬 하였다. 수종사를 중창한 세조가 매우 아끼던 신하였던 당대 최고의 문장가요 시인이다. 그는 45년간의 공직생활 가운데 대제학을 23년간 지냈다. <동국통감>,<동국여지승람>,<동문선>,<경국대전>등 조선을 대표하는 저술들의 편찬을 주도했고, <동인시화>,<역대연표> 등의 개인 저술과 시문집 <사가집>을 남겼다. 그가 쓴 시문(詩文)은 무려 1만여 편에 이른다는데 전하는 것이 6,000여 편이다.

 

" 명상하는 곳 "

 

범종각

 

보호수 은행나무...수령 550년...
은행나무 2본이다. 높이 35m, 25m, 둘레 2,m, 1.2m.

 

'세조를 감동시킨 종소리 (은행나무)'

부스럼을 앓던 세조가 오대산 상원사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깨끗이 낫고 한강을 따라 환궁하는 길이었다. 양수리까지 오니 밤이 이슥해 쉬어 가는데 운길산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신하가 알아보니 천년고찰 터 암굴 속에 십팔나한상이 앉아있고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내는 것이라 했다. 세조는 이곳에 절을 복원해 수종사라 부르고 이 은행나무(500년)을 하사했다고 한다. 
 

수종사 사적기

고려 왕건이 상서로움을 좇아 이곳에 이르러 구리종을 얻음으로써 부처님의 혜광을 통해 고려를 건국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1439 (세종21년)에 이르러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의 옹주의 부도를 세우고 금제 9층 수정사리함 (사리14과)을 청자항아리에 담아 부도 안에 모셨다. 1458 (세조4년) 세조가 두물머리에서 머물다 새벽에 들려오는 종소리를 따라 올라와 보니 그 종소리는 다름아닌 바위굴 속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세조는 굴속에서 18나한을 발견하고 5층 돌계단을 쌓았으며 팔도방백에 중창을 명하였다. 도량은 이러한 연유에 의해 수종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때 은행나무 두 구르를 심고 다음 해인 1459년에 수종사 담을 건립하였다. 1493 (성종24년) 후궁 명빈 이씨가 목제불감과 설법도가 그려진 금동불감에 금동불보살상 등 14좌를 봉안하고 후궁들의 발원문도 함께 넣었다 고 탑안에 모셨다. 1628(인조6년) 정의대왕대비가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을 시주하였으나 6.25전쟁 때 불에 탔다. 1974년 혜광화상이 대웅보전을 1981년 규원당 대웅화상이 익사전과 종각을 지었다. 1999년부터 금해당동산은 응진전 선불장 심정헌 미륵불 일주문 등을 세워완성하며 서거정이 천하제일명당이라 찬탄했던 절의 풍광을 다시 복원하였다. 수종사는 조선후기 초의 다산 추사를 비롯한 다선묵객들이 당색과 신분을 따지지 않고 함게 모여 담론을 했던 사회변혁의 꿈이 깃든 곳이다. 후인을 위해 수종사와 함게 했던 선인의 발자취를 따라 사적기를 적는다.   불기 2551년 동산 짓고 선종석 쓰다.   

 

<- 수종사, -> 하산길(송촌리) 1.8km.  

'운길산 수종사한음 이덕형 선생'...   

한음 이덕형 (1561-1613) 선생은 산수가 빼어난 운길산을 사랑하시어 바쁜 중앙정치의 와중에도 여가를 내어 사제촌에서 수종사로 이어지는 돌길을 따라 자주 걸으셨다. 수종사의 주지가 되어 사제촌(莎堤村)의 한음선생을 인사차 찾아온 덕인(德人) 스님에게 준 시에서 선생과 스님과 사제촌을 겨울 풍광이 그대로 드러난다.  

운길산 스님이 사립문을 두드리네         (僧從西庵 拍柴關 _승종서암 박자관)
앞 개울 얼어 붙고 온 산은 백설인데      (凍合前溪 雪滿山_동합전계 설만산)
만첩청산에 쌍련대 매었네                    (萬疊靑螺 雙練帶_ 만첩청루 쌍동대)
늘그막의 한가로움 누려봄 즉 하련만    (不妨分占 蒼年閑_부방분점 창년한)  

선생은 7년여의 임진왜란을 수습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나 극심한 정쟁에서 오는 국정의 혼미에 몹시 상심하셨다. 봄날이 가는 어느 초여름 선생은 이곳 수종사를 찾아 주지 스님에게 우국충정에서 오는 자신의 괴로운 심경을 드러내는 시를 지어주셨다.  

산들바람 일고 옅은 구름비 개었건만    (風輕雲淡 雨晴時_풍경설담 우청시)
사립문 향하는 걸음걸이 다시금 더디네  (起向柴門 步更遲_기향자문 보경지)
구십일의 봄날을 시름 속에 보내며       (九十日春 愁裏過_구십일춘 추이과 )
운길산 꽃구경은 시기를 또 놓쳤구나    (又孤西庵 賞花期_우고서암 상화기)  

오른편 사제촌(송촌리) 한음마을에는 500년 조선역사상 최연소로 31세에 대제학에 오르고 42세에 영의정에 오르신 선생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후 삶을 마감하신 별서(別墅) 터 및 하마석(下馬石) 등의 유적이 그대로 있어 아련한 선생의 발자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2010년 6월 광주이씨한음상공파종회.

 

송촌리 하산로

 

수종사 보호수 은행나무

 

아름다운 두물머리, 팔당호 주변 경치

 

수종사까지 차량이 드나들 수 있는 임도...지금 축대 공사 중.

 

평소 이곳으로 걸어서 하산하면서 위를 올려다보면 수종사가 아슬하게 비탈에 걸려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 옛날 이 높은 곳을 찾아 가파른 비탈에 절을 지었다는 게 놀랍다. 만약 심한 장마 등으로 축대가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아찔한 생각이 든다. 이상 기온이 일상인 요즈음 미리 미리 축대를 방비하여 미연에 사고를 예방하여야 할 것이다. 수종사는 너무 아름다운 명승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