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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나의 산행

정족산(223),길상산(336) - 강화도 전등사를 품은 산 (2011-02-28)

by the road of Wind. 2011. 3. 1.

정족산(223),길상산(336)     -

 

강화도 전등사를 품은 산 (2011-02-28)

 

정족산 (223m) : 인천시 강화읍 길상면 온수리 소재의 산으로 강화도에서 가장 유명한 고려시대의 사찰 전등사를 품고 있는 산이다. 산의 생김새가 마치 세 발 달린 가마솥과 같다 해서 이름이 붙여진 정족산이다. 정족산 기슭에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람성도 있다. 그 성안에 아늑하게 전등사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정족산은 마니산의 한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길상면 온수리에 이르러 다시 세 봉우리를 형성하여 정족산(鼎足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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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코스

: 전등사 북문 - 전등사 북문 (총연장 : 약 2.3km,소요시간 약 46분) , 전등사 북문 우측 산성 코스로 시작하여 한바퀴 완주.

 

길상산 (336m): 인천시 강화읍 길상면 선두리에 잇는 산으로 정족산과 이웃 친구산이다. 정족산에서 내려와 찻길 하나만 건너면 길상산으로 이어진다. 길상산에 올라서면 서해 바다가 바로 발밑에 펼쳐지면서 아름다운 섬들의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길상산은 강화지맥의 마지막에 솟구쳤다 떨어지는 산이다. 강화지맥은 별악봉-> 봉천산-> 고려산 -> 혈구산 -> 퇴모산 -> 덕정산 -> 정족산 -> 길상산으로 이어진다. 길상상에 서면 북쪽으로 강화 최고봉 마니산과 마주 서게 된다. 산세가 아름다운 산이다. 

등산코스

:  로얄호텔-정상-장흥저수지 ( 총연장 : 약4.7km, 소요시간 : 약1시간34분)

 

전등사: 전등사가 창건된 것은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이 서기 372년이므로 지금은 그 소재를 알 수 없는 성문사, 이불란사(375년 창건)에 이어 전등사는 한국 불교 전래 초기에 세워진 이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도량임을 알 수 있다. 처음 전등사를 창건한 분은 진나라에서 건너온 아도 화상이었다. 당시 아도 화상은 강화도를 거쳐 신라 땅에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도 화상이 강화도에 머물고 있을 때 지금의 전등사 자리에 절을 지었으니 그때의 이름은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진종사가 다시 역사의 기록에 등장한 것은 고려 고종 46년 때인 1259년이었다. 이때 고종은 삼랑성 안에 가궐(假闕)을 지었다. 이보다 앞선 1232년, 고려 왕실에서는 몽골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강화도로 임시 도읍을 정하고 궁궐을 지은 바 있다. 고려의 강화도 도읍은 1232년부터 1270년까지 이어진다. 그 기간 중 전등사 경내에 가궐을 지은 것은 풍수지리설과 더불어 임금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종 46년(1259년), 임금이 삼랑성 안에 가궐을 짓도록 명했다.”는 사실과 함께 5년 뒤인 원종 5년(1264년), “임금이 대불정오성도량을 열어 4개월 동안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대불정오성도량이라 함은 부처님의 가피로 나라의 온갖 재난을 물리치게 하는, 불교 행사를 일컫는다. 원종 임금이 진종사에서 이런 행사를 갖게 한 것은 당시 진종사의 사세(寺勢)가 크게 중흥되었음을 반증하고 있다.  고려 왕실에서는 삼랑성 안에 가궐을 지은 후 진종사를 크게 중창시켰으며(1266년), 16년이 지난 1282년(충렬왕 8년)에는 왕비인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경전과 옥등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라 사찰 명칭을 바꾸었다. 이때는 고려 왕실이 개경으로 환도한 뒤였고, 39년 동안 쓰였던 강화 궁궐터는 몽골군에 의해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삼랑성 안의 전등사는 꾸준하게 사세를 유지해나갔다. 전등사는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에도 불구하고 향화(香華)가 그치지 않았던 가람이다. 현종 원년(1660년)에 경내에 선원각과 장사각이 세워졌으며 숙종 4년(1678)에 왕조실록을

장사각

에, 왕실족보와 관계 문적들을 선원각에 보관하게 된다. 이로 인해 전등사는 정족산 사고를 지키는 사찰이기도 하였다.


삼랑성: 삼랑성은 사적 제130호의 돌성이다. 성의 시설물로는 남문루와 동문, 서문, 북문지가 있고 성 안에는 13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전하며 고구려시대에 창건된 전등사가 있다. 1739년과 1764년 및 조선 말기에 여러 차례 보수공사를 하고, 1976년에는 남문인 종해루를 원형 그대로 복귀했다. 성의 동문 안에는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를 대파하는데 공헌한 양헌수 장군 승첩비가 있다.

 

등산기:

강화도 길상면 문수리 - 전등사- 정족산- 보리고개 - 선두리 - 우측 능선 - 길상산 - 동남쪽 능선 - 장흥리 - 장흥저수지 - 초지대교 북단. 이렇게 산행을 하였다. 강화도의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되어 행복한 산행이 되었다. 강화도는 마치 큰 소반에 평야인 평지를 만들고 그 위에 아기자기 수석들을 세워놓은 것같은 아름다운 경치를 가지고 있다. 산과 평야와 바다가 아름답게 조화되어 있는 섬이다.이런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여생을 지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랴? 총 5시간 소요.

 

< 강화도 개념도 >

 

 

서울 송정역에서 송정~온수간 60-2번을 버스를 타고 강화 온수리에 도착하고 보니 오후 1:00경이다. 이 버스는 평일엔 30분 배차, 주말엔 40분정도의 배차라고 한다. 아무튼 11:10분경에 한참을 기다리다 겨우 이 버스를 만나서 여기까지 오게된 것이다. 처음엔 김포 약암리에서 온천을 좀 하고 초지대교 인근을 트레킹할 계획이었는데 이 버스를 타고 보니 전등사로 목적지가 확 바뀌게 되었다. 아무튼 아주 옛날 한 번 가본 기억이 전부인 나에게 이 길은 생경하여 약간은 설래임을 동반하기도 하다. 전등사 길을 물으니 종로학원 근처에서 올라가라고 한다. 사진은 전형적인 시골 읍내 풍경의 온수리이다. 빛 바랜 스레이트집이 나에겐 정겹다. 내 고향에서 흔히 보는 광경이니 마음 또한 흐믓하다.

 

 

 

종로학원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개신교와 성당의 모습이 바로 지척인데 이채롭다. 어렸을 때 크리마스에 떡과 과자 얻어먹으려 고개 고개를 넘어 이웃마을에 있는 교회 까지 추운 밤에 놀려 갔던 생각이난다. 그땐 저 십자가가 있는 첨탑이 참 아름답게 보였으며 조그마한 교회도 시골 풍경을 배경삼아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눈에 선하다.

 

 

온수리의 온수성당.

 

 

이 슈퍼를 지나 종로학원 지나 우측으로 오른다. 천년고찰 전등사 가는 길이다.

 

 

 

 

등불을 전한 사찰. 부처님 법의 광명의 등불을 동방의 나라에 전한 절이란  듯일게다.

 

 

나그네 길 오르다 뒤돌아 보다.

 

 

이것이 삼랑성의 동문이다. 

삼랑성(정족산성)에는 본래 동서남북 네 군데에 출입문이 있었다. 그 중 지금까지 이용되는 것은 동문과 남문이며 전등사 사거리에서 전등사로 진입할 때 가장 먼저 보이는 문이다. 전등사에는 여느 사찰과는 달리 일주문이나 불이문이 없다. 그 대신 호국의 상징이었던 삼랑성 동문과 남문이 일주문 구실을 하고 있다. 동문 안쪽에는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가 세워져 있다. 입장료 2,500원, 주차료 2,000원.

 

입구엔 음식점들이 다소 잇다. 파전과 막걸리와... 이런것들이 주객들의 마음을 사로 잡겠구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는가? 먹어야 산다.

 

 

낙엽 쌓인 비탈 길과 고사목. 생로병사는 인간의 숙명이다. 부처님의 화두 였으리라.

 

 

동문을 따라 좌측으로 성길을 올라서니 소나숲과 전망이 약간 트인다. 강화의 소나무는 고찰과 어울리게 품위가 있어 보인다.

 

 

성곽 위에서

길상산

쪽을 보고 조용하고 아늑한 경치를 감상하다. 저기 보이는 삼거리가 보리고개이다. 왼쪽은

장흥리

로 오른쪽은

선수리로

가는 방향이다. 강화도엔 길가에 모텔같은 잠자는 곳이 유난히 많은 것 같다.

 

 

 

삼랑성은 이어지고 있다. 청정한 소나무가 굳건하다. 돌 하나 돌 하나 이 성을 쌓은 자들은 누구일까? 불쌍한 민초들일 게다. 사실 정족산 산행은 이 성길을 한번 빙 도는 거나 마찬가지다.

 

 

남문이다. 사실 이 남문이 전등사의 정문이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건축양식은 거의 똑같다. 이 성문은 마치 서울의 남한산성의 성문과 크기나 모양이 거의 일치한다.

 

 

전등사 경내로 들어서며..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목도

늙어 병들어 죽어가는 것 같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운명이리라

. 수령 600년, 수고 약 25m. 보호수다.

 

 

 

전등사 윤장대

(輪藏臺). 윤장대란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을 바퀴를 달아 돌리게 만든 것으로,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다고 한다. 보물 684호를 똑같이 재현한 것이다.

 

 

 

 

산중 찻집이다.

 

 

대웅보전 올라 가는 계단과 법등.....

 

 

전등사 대웅전이다. 고색이 창연하다. 보물 제178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규모는 작지만 단정한 결구에 정교한 조각 장식으로 꾸며져서 조선중기 건축물로서는 으뜸으로 손꼽힌다. 특히, 건물 내부 불단위에 꾸며진 닫집의 화려하고 정치한 아름다움은 건축공예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보마다 용틀임으로 장식되면서 용두가 네 귀퉁이에서 돌출해 나오며 천장 주변으로는 연, 모란, 당초가 화려하게 양각되고 중앙 우물 반자 안에는 보상화문이 가득 채워져 있다. 더욱 희귀한 것은 물고기를 천장에 양각해 놓아 마치 용궁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닫집 왼쪽 천장에는 양쪽에 용두장식을 하고 몸체에 용틀임을 한 작은 용가(龍架)의 배 부분에 아홉 개의 방울을 달아 놓고 끈을 달아 불단까지 늘여놓아 이를 잡아 흔들면 아홉 개의 방울이 동시에 울어 구룡토음의 장관을 이루게 했던 적도 있었다.

 

 

 

月印千江一切同 (월인천강일체동).

달은 온 강에 비추이는데 모두 한결 같구나. 물속에 비추인 달은 실체는 아니다. 모든 게 그렇다. 허상과 같다. 그러니 집착할게 무어 있겠는가?

 

 

 

전등사 대조루. 전등사의 남동쪽으로는 멀찌감치 강화해협이 내려다보인다. 강화해협은 일명 ‘염하’라고도 부르는데 이 염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전등사 대조루이다. 전등사의 남문이나 동문으로 올라와 두 길이 합치는 지점에 이르면 2층 건물이 보이고 1층 이마에는 ‘전등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이 건물이 바로 전등사의 불이문 구실을 하는 대조루이다. 지금의 대조루는 1932년에 중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건물 자체가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며 전등사의 여러 건물 중에서도 아주 소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조루에서 대웅전을 바라볼 때의 시선은 25도쯤 위쪽으로 향하게 된다. 대웅전의 석가모니불을 가장 존경하는 시선으로 보게 하는 각도로, 이런 부분까지 섬세하게 고려해 지어진 건물이 대조루이다

 

 

느티나무 한번 멋있다. 전등사 경내에서...

 

 

 

 

 

 

약사전. 보물 제179호로 지정된 약사전은 대웅보전 서쪽에 위치하는 건물로 대웅보전과 거의 같은 양식의 건물이다. 조선 중기 다포계열의 정면 3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약한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설치하였으며, 정면 각 기둥 위에는 공포를 배열하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공간포(기둥과 기둥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공포)를 설치하였다. 내부 천장은 중앙 부분에 우물천장을 두고 주위에는 빗천장을 만들었으며, 거기에 돌아가면서 화려한 연화당초문을 그려 놓았다. 대웅보전과 함께 지붕을 수리했다는 기록 말고는 다른 기록이 없어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건물의 겉모습이나 내부 장식도 대웅보전과 비슷하다. 고려 말기나 조선 초기에 석조로 조성한 약사여래상을 모시고 있다. 이 약사여래불은 최근 금박으로 개금되어 있다.

 

 

보물 제393호로 지정된 전등사 범종이 보관된 전각이다. 본래 이 범종은 대조루 옆 종루에 보관된 것이었으나 2004년에 적묵당 옆 종각으로 옮겼다.

 

 

 

 

 

 

 

 

 

 

 

 

 

물맛 좋고 좋고....참 좋고.....

 

 

 

 

 

 

 

 

 

전등사를 나와 북문으로 오르다 뒤돌아 본다...

 

 

나무중 제일은 소나무 아닐까 하노라. 저 철갑을 두른 듯한 기상을 보아라.

 

 

북문이다. 전등사 일대를 에워싸고 있는 삼랑성은 국가사적 제13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성은 고대 토성의 흔적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단군의 세 아들인 부여·부우·부소가 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토성 자리에 표면이 거친 할석(割石)으로 성을 쌓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랑성은 성 안팎을 할석으로 겹축했으며 할석 사이마다 할석 부스러기로 쐐기를 많이 사용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해발 222m인 정족산의 정상에서 동향한 계곡을 포용하고, 동남향한 계곡에 수구와 남문이 있다. 북문은 북벽의 서쪽에 치우쳐 산봉우리 사이의 안부에 있고, 서문도 서남쪽 안부에 있으며, 동문은 남문의 북쪽으로 해발 107m의 봉우리 북쪽 안부에 있다.

 

 

 

 

강화도 화도면 사기리 벌판. 뒤의 산은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마니산이다.

 

 

 

 

 

길상산과 그 산줄기 아래의 강화로얄호텔. 왼쪽 저수지는 장흥저수지이다.

 

 

 

 

 

 

전등사의 전경. 정족산에서 내려다 본 모습.

 

 

 

 

얼음꽃. 아직 녹지 않고 하얓게 빤짝인다.

 

 

 

 

멀리 초지대교가 보인다.

 

 

 

 

 

 

 

 

 

 

 

 

삼랑성 서문의 안쪽에서.....

 

 

 

 

 

 

 

 

전등사 입구.

 

 

길상산 가는 길에서....

 

 

보릿고개에서 좌측으로 간다. 장흥리 방향으로...

 

 

 

 

 

 

 

 

익숙한 모습의 시골집.

 

 

진돗개와 불독 2마리가 마구 짖어댄다. 좀 무섭기까지 하다.

 

 

묘한 분위기에 심취하다. 쓸쓸하다 할까?

 

 

 

 

 

 

 

 

 

 

 

 

 

 

 

강화도 화도읍 사기리 벌판...

 

 

마니산의 모습. 정상 부위는 허였다. 설빙이 녹지 않고 남아서 이다. 오른 쪽 봉우리는 첨상단있는 곳이고 왼쪽 봉우리가 마니산 정상이다.

 

 

 

 

 

바람이 많은 이곳 사정이 짐작된다, 나무들의 외양에서 느껴진다.

 

 

정상부위의 설빙화......

 

 

길상산 (374m)의 정상비.

 

 

 

길상산 정상의 전망대. 서해 바다의 조그마한 섬들이 나를 매료시킨다. 아! 등산의 보람이 있다.

 

 

 

 

 

 

 

 

 

 

 

 

 

 

 

 

 

 

초지대교....

 

 

 

 

 

 

 

 

 

 

 

 

 

 

 

 

 

 

 

철새들의 군무...

 

 

 

 

 

 

 

 

 

 

 

 

 

 

 

초지대교 북단. 해수피아 목욕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