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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나의 산행

소요산 (559m) - 경기의 소금강 (2012-01-24)

by the road of Wind. 2012. 1. 24.

 

소요산 (559m)  - 경기의 소금강  (2012-01-24)

 

 

소요산(逍遙山)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에 소재하는 산으로 규모는 아담하지만 산세가 기운차고 아름다워 경기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산이다. 하백운대(440m), 중백운대(510m), 상백운대(559m), 나한대(571m), 의상대(587m), 공주봉(526m)의 여섯 봉우리가 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주봉은 상백운대(559m)이다. 사시사철 그 자태가 음미할 만 하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 여름에는 녹음과 폭포, 계곡, 가을 단풍에는 절묘한 단풍으로 짙게 물드는 경기의 소금강이다. 겨울은 고즈넉한  정취에 낭만이 그윽한 산이다. 자재암이 있는 백운대를 오르는 계곡은 암봉과 바위능선 사이로 골짜기가 협곡을 이루고 있으며 청량폭포, 원효폭포 등의 명소가 산재하여 있다.


등산코스:

1코스 (5.7km/ 1시간 30분): 일주문 - 백운암 - 자재암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선녀탕 - 자재암 - 일주문- 관리사무소

2코스(6.53km/ 2시간): 일주문 - 백운암 - 자재암 - 하백운대 - 상백운대 - 칼바위 - 선녀탕 - 자재암 - 일주문- 관리사무소

3코스(7.04km/ 3시간30분): 일주문 - 백운암 - 자재암 - 하백운대 - 상백운대 - 칼바위- 나한대 - 의상대 - 샘터갈림길- 구절터 - 일주 문- 관리사무소 

4코스((8.19km/ 4시간); 일주문 - 백운암 - 자재암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상백운대 - 칼바위 - 나한대 - 의상대 - 공주봉 - 구절터 - 일주문 - 관리사무소 

 

원효 (元曉) (617-686):  신라시대 승려이며, 신라의 귀족으로 본명은 설사(薛思)이다. 신라의 개국공신이자 박혁거세를 추대한 사로 6촌의 촌장 중의 한사람인 설거백 또는 설호진의 후손으로, 설곡(薛嚳)의 4대손이다./ 어머니 조씨가 그를 수태했을 때, 꿈에 유성(流星)이 품속으로 드는 것을 보고 원효를 임신하였으며 만삭(滿朔)이 된 몸으로 압량군(押梁郡)의 남불지촌(南佛地村) 율곡(栗谷) 마을을 지나다가 사라수(沙羅樹) 아래 이르러 갑자기 낳았는데,《삼국유사》에 이르기를 그때 오색구름이 땅을 덮었다 한다./  원효는 15세 때 또는 28세 때 어머니 조씨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삶과 죽음을 오래 고민하다가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황룡사(黃龍寺)에 들어갈 때 집을 희사하여 초개사(初開寺)를 세우게 했으며, 자신이 태어난 사라수 옆에도 절을 세워 사라사(沙羅寺)라 하였다./ 출가 이후영취산(靈鷲山)의 낭지(郎智), 흥륜사(興輪寺)의 연기(緣起)와 고구려 반룡산(盤龍山)의 보덕(普德) 등을 찾아다니며 불도를 닦으니 뛰어난 자질과 총명이 드러났다. 34세 때인 650년(진덕여왕 4년) 의상과 함께 당나라 고승 현장에게 불법을 배우러 가다가 요동 근처에서 고구려 순라군(국경경비대)에게 잡혀 첩자로 오인받았다가 풀려났다. 661년(문무왕 1년) 다시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길에 당항성 근처의 한 무덤에서 잠이 들었다. 잠결에 목이 말라 달게 마신 물이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 다시 보니 해골바가지에 담긴 더러운 물이었음을 알고 급히 토하다가 “ 마음이 나야 모든 사물과 법이 나는 것이요, 마음이 죽으면 곧 해골이나 다름이 없도다(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龕墳不二). 부처님 말씀에 삼계(三戒)가 오직 마음뿐이라 한 것을 어찌 잊었더냐? ” 라는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깨달아 유학을 포기한다. 그 뒤 분황사에 있으면서 독자적으로 통불교(通佛敎)를 제창하며 민중 속에 불교를 보급하기에 노력했다. 원효는 한국불교의 불멸의 성사(聖師)이며, 그는 대승불교의 건설자인 인도의 나가르주나(Nagarjuna, 용수龍樹)나 중국불교를 새롭게 열어간 천태지자(天台智者)대사에 비견되기도 한다. 한국불교에서만이 아니라 세계불교사에 있어서 원효의 위치는 그만큼 찬연하게 빛나고 있다. 원효는 실로 불교 사상의 종합과 실천에 노력한 정토교(淨土敎)의 선구이며 또한 으뜸가는 저술가이기도 하였다./  저서:《열반종요》,《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론》,《 발심수행장 》등.

 

요석공주와 원효요석공주(瑤石公主)는 김춘추의 둘째누이며, 첫남편을 백제전투에서 잃고 홀로 된 여인으로, 불심 깊고 인격이 고매하고 화랑시절 백제전투에도 참가했던 원효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무열왕은 요석궁에 머무는 과부가 된 둘째 딸을 원효와 결혼시키려 하였다. 왕이 궁리(宮吏)에게 명하여 금성시내에서 춤추며 노래부르는 원효를 찾아 데려오라 했으며, 궁리가 시내로 나가 원효를 찾자, 그는 이미 남산(南山)에서 내려와 문천교(蚊川橋)를 지나다가 관리를 만나게 되는데, 일부러 물에 빠져서 옷을 적셨다. 이후 무열왕은 옷을 말리고 쉬게 하도록 명을 내려 원효와 공주를 맺어주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원효는 과부공주인 요석과 만나 얼마후 설총을 낳았다고 한다. 이후 스스로 실계(失戒)한 원효는 소성거사(小性居士, 小姓居士)라 하며 무애의 보살행을 행하였다 한다. 요석공주는 당대 최고의 학승을 파계시키고 3 일간의 사랑으로 설총을 얻으며, 위대한 원효를 민중에게로 인도한 보살이었다고 평가할만 하다. 원효는 뒷날 설법에서 “고구려나 백제, 신라는 모두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했으며, 그는 진정한 미래를 내다본 선지자, 선각자이기도 하였다.  

 

소요산은 참으로 아름다운 산이다. 마치 부채를 펼쳐 놓은 듯한 산세를 구성하고 있으며, 기기묘묘한 바위와 기암괴석 그리고 아늑하고 깊숙한 계곡미는 한폭의 산수화를 연상하게 된다. 소요산은 당대를 풍미한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와의 러브스토리가 있어 더욱 유명하다. 오늘 소요산은 구정의 연휴기간이라 산행 인파가 뜸하여 조용하고 더욱 운취가 있었다. 눈이 많은 지역이라 아이젠과 스패치를 준비하고 하얀 설원을 연상하며 왔으나 눈은 구경도 못 하고 말끔하였다. 소요산을 오르면서 그윽한 게곡미에 매료 되었으며 요석공주와 원효대사의 사랑을 생각하며 여러가지 상념에 잠기었다. 인간은 사랑 없이는 못 사는 동물이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승려든 신부이던 수녀이든 그 누구이던 사랑없이는 못 사는 것이다. 사랑은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어떤 것이다. 사랑을 거역하거나 거부하면 인간은 정신적인 결함에 빠지게 된다. 오늘 따라 소요산 계곡은 고즈녁하기만 하였다. 의상대에 올라 인간 세상을 바라본다. 모든 것이 부질없는 것이다. 주위의 산줄기의 스카이 라인이 아늑하기만 하다.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 꿈처럼 아름다운 사랑이 소요산 공주봉 위에서 깃발처럼 나부끼고 있는 듯 하였다. 새소리도 없고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의상대 정상에서 오늘 나는 식지않을 사랑을 꾸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산행코스:  소요산역- 일주문- 구절터-샘터-샘터길능선 - 의상대- 샘터길능선 - 공주봉- 구절터- 자재암- 일주문 - 소요산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