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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길 (trekking)

아차산 고구려대장간마을, 대성암 -- (2014-08-19)

by the road of Wind. 2014. 8. 20.

아차산 고구려대장간마을, 대성암 -- (2014-08-19)

 

서울의 동부의 광진구 광장동에 있는 워커힐호텔 부근을 지나서 서울을 벗어나면 구리시 아천동이 나온다. 아천동대성암 아래 계곡 끝자락에 있는 자그만 마을인데 지금은 조용하기는 하지만 옛 정취는 느낄 수 없다. 아천동의 유래는 예로부터 양주군 구지면(龜旨,九旨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아차동(峨嵯洞) 우미천리(牛尾川里) 전부, 토막리(土幕里)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아차동의 '아'자와 우미천리의 '천'자를 따서 아천리 라 하였다고 한다. 정다운 느낌의 마을 이름이다. 구리시의 '구리(九里)'란 지명도 양주군 망우리면(忘憂里面)지면(九旨面) 그리고 노해면의 일부지역을 병합하여 구지면의 '구'자와 망우리면의 '리'자를 합하여 구리면(九里面)이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아천동 윗자락에 구리시가 야심차게 고구려 시대 주거시설을 테마로 고구려대장간마을 (031-550-8351~3/ 경기 구리시 아천동 316-47) 을 만들어 놓았다. 오늘은 아천동 고구려대장간마을에서 부터 능선길로 등산을 하여 아차산 대성암을 지나서 너럭바위, 아차산2보루, 아차산5보루, 아차산1보루를 지나 새천년 "꿈과 희망" 기념비석, 너럭바위전망대, 용천약수터,강신 약수터, 그리고 고구려대장간마을로 회귀하였다. 비는 그치고 뿌연 날씨였지만 시원하게 등산 겸 트레킹을 하였다.  아차산은 곳곳에 삼국시대의 보루가 설치되어 있어 한강 상류를 훤히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그 시대 각국의 중요한 군사적요충지 였다. 구리시가 웅장한 기상의 고구려를 테마로 고구려대장간마을을 조성한 것은 참 잘 하였다는 생각이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역사의 웅장한 숨결을 각인 시키고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활성화 되지는 않은 것 같다. 여기에 올 때 마다 조용하기만 하다.

 

나는 이곳의 등산 코스을 좋아하는데, 이 곳은 서울에 붙어있는 지근의 거리이면서도 조금만 들어오면 조용하고 한강 상류의 유장한 강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어서 이다. 서울의 암사동, 고덕동, 둔촌동 일원과 구리시 토평, 남영주시 덕소 일원을 조망하면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가을철 같이 공기가 시원하고 주변이 단풍으로 물들 때 이곳 산등이를 거닐다 보면 세월의 한갖 허무함과 동시에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곤 하였다. 이 일대는 산의 분위기가 맑고 꺠긋하다. 적당히 암반이 산재하여 있어 앉아 쉬기도 좋다. 오늘도 저 멀리 한강 상류의 흐릿한 풍경을 보니 흐르는 물과 같은 인생임을 절감하며 왠지 모를 허무를 느끼기도 한다. 다음은 소동파(소식)가 동생의 편지에 화답하여 쓴 편지인데, 지난 날을 회고하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한 시이다. 인생은 모두 덧없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값지게 살아가야 한다. 한번 뿐인 인생인데 헛되이 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和子由沔池懷舊 (화자유면지회구)        -蘇軾(소식)

 

人生到處知何似 (인생도처지하사):    인생의 방황은 무엇과 같은고?

應似飛鴻踏雪泥 (응사비홍답설니):    그것은 바로 눈 내린 진흙을 밟고 지나간 기러기와 같은 것.  

泥上偶然留指爪 (이상우연유지조):    진흙 위에 우연히 발자욱을 남기고 날아갔으니

鴻飛那復計東西 (홍비나부계동서):    동서 어디론지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老僧已死成新塔 (노승이사성신탑):    노승은 이미 죽어 새로운 돌탑이 되었고 

壞壁無由見舊題 (괴벽무유견구제):    무너진 벽에는 우리가 썼던 시 찾아볼 수 없네

往日崎嶇還記否 (왕일기구환기부):    지난 날의 괴로운 여로를 그대 아직 기억하고 있는가?

路長人困蹇擄嘶 (노장인곤건로시):    길은 멀고 사람은 피곤하여 발을 절던 노새의 울부짖음을.

 

소식(蘇軾)(1037~1101):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 흔히 소동파(蘇東坡)라고 부른다/  현 쓰촨 성 미산(眉山)현에서 태어났다. 시(詩),사(詞),부(賦),산문(散文) 등 모두에 능해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다. 소동파는 송시의 성격을 확립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대시인이었으며, 중국문예사상 가장 걸출한 인물이었다 고 평가된다. 그의 아버지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소순(蘇洵)이었고, 그 아우도 소철(蘇轍)로 유명한 문인이다. 이 세 부자를 사람들은 삼소(三蘇)라고 불렀는데, 모두 당송팔대가로 손꼽혔다.

  

 

또한, 이곳 아차산을 거닐거나 등반할 때는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의 전설을 생각해 본다. 평강공주는 고구려 평원왕의 따님이며, 바보 온달은 온달장군을 말하며 공주의 남편이다. <삼국사기> 온달전에는 공주는 어릴 때에 잘 울어서 왕이 희롱하여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말하곤 하였는데, 커서 시집갈 나이가 되어 왕이 명문귀족 집안에 시집보내려했지만 공주가 이를 거부하고 궁궐에서 쫓겨낫으나, 공주는 온달을 찾아가 혼인하였으며 그녀는 눈먼 시어머니를 잘 봉양하고, 바보스러운 남편 온달에게 무예와 학식을 가르쳐서 종국에는 온달은 고구려군의 장수가 되었다. 그 뒤 북주의 군대가 침공해왔을 때, 온달이 고구려군의 선봉이 되어 적을 격파하고 대공을 세웠으며, 평원왕을 이은 영양왕 때, 온달은 한강유역을 회복하기 위해 신라를 공격하다가 이곳 아차산에서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온달의 시체를 넣은 관을 운반하려했지만 움직이지 않았으나 평강공주가 달려와 관을 어루만지며 돌아가자고 말하니, 비로소 관이 움직여 이를 매장하였다고 한다. 상류층에 들지 못한 온달이 장군이 되는 이면에는 왕족인 평강공주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과 용기, 남편에 대한 애정, 시어머니에 대한 헌신등 미덕을 가지고 잇었다는 생각이다. 한 여인이 현명하면 어떻게 가정과 남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하는 점을 보여 주는 귀한 설화라고 생각된다. 아차산은 조상들의 역사의 숨결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산교육장이나 마찬가지이다.  

 

○ 아차산(峨嵯山): 높이 285m의 아차산서울 중랑구 면목동, 광진구,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있는 산이다. 1973년 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아차산은 중곡동 긴고랑계곡을 사이에 두고 용마산과 마주보고 있기도 하다. 아차산에는 백제시대에 건축된 아차산성이 있으며, 이 성은 현재 백제의 도성으로 많은 학자들이 추정하는 풍납토성과 마주보고 있다. 아차산은 야트막한 산이지만, 삼국시대의 전략요충지로 특히 온달장군의 전설이 전해져 오기도 한다. 온달장군이 아차산에서 전사했다고 믿고 있다. 아차산에는 ‘온달샘’이라 불리는 약수터와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지름 3m의 거대한 공기돌이 있다. 대성암 뒤에는 의상대사가 수련을 했던 곳으로 알려진 천연 암굴이 있다. 이밖에 석곽분, 다비터, 봉수대 이 있다. 아차산은 1950년대까지 한강변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소로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 이곳에 있었다고 하며, 쉐라톤 워커힐이 이곳에 지어진 이유도 한강의 아름다운 경치 때문이었다 고 한다.


 ○고구려대장간마을: 경기 구리시 아천동 316-47 에 소재하고 있다. 찬란한 문화와 광활한 대륙을 경영했던 대제국 고구려의 역사는 탁월하고 강력한 철기 문화가 있어 가능했다. 한민족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한 고구려의 국가발전과 성장의 동력이었던 철기문화가 아차산자락에 들어선‘고구려대장간마을’에서 부활했다. 웅장한 기상으로 천하를 호령하며 동북아 최강국가로 우뚝 섰던 고구려. 어린이들이 매우 좋아하는 우리역사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남한에는 고구려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흔치 않아 아쉽기만 하다. MBC드라마 <태왕사신기>를 촬영하면서 자리잡게 된 2,990㎡의 대장간마을은 서울과 경기도에서 고구려문화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체험장소다. 또 대장간마을을 감싸고 있는 아차산에는 아차산성80여 개 보루가 있습니다. 보루는 고구려가 한강을 차지하고 설치했던 작은 초소다. 한강은 삼국시대가 모두 차지하기 위해 온힘을 기울였던 장소이다. 아차산 보루가 있는 아차산에 오르면 한쪽으로는 한강 남쪽을, 또 한쪽으로는 중랑천에서 도봉산, 삼각산에 이르는 한강 북쪽까지 한눈에 감시할 수 있어, 남쪽에 있는 백제와 신라를 감시하던 고구려에게 얼마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대장간마을 안에는 고구려유적전시관, 고구려대장간, 마굿간, 거물촌의 여러 집들이 들어서 있고 고구려문화체험할 수 있는 코너도 있다.  - <경기관광공사>

 


고구려대장간마을:                              < photos by sony NEX-C3 >

 

 

 

 

 

 

 

 

 

 

능선길 등산: 

 

 

 

 

 

 

 

 

 

 

 

 

 

 

 

 

 

 

 

 

 

 

 

 

 

 

 

 

대성암: 

 

 

 

 

 

 

 

 

 

 

 

 

 

 

 

 

 

 

 

 

 

 

 

 

 

 

 

 

대성암 뒤 너럭바위 방향 등산: 

 

 

 

 

 

 

 

 

 

 

 

아차산 5보루:

 

 

 

 

 

 

 

아차산 1보루:

 

 

 

 

 

 

 

 

 

 

하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