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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양화진 절두산 순교성지 - (2014-12-07)

by the road of Wind. 2014. 12. 9.

양화진 절두산 순교성지 - (2014-12-07)

 

바람을 좀 쐬보겠다고 강서구 개화산 둘레길을 걸어보겠다고 전철을 탔다. 그런데 한강을 넘기 전  합정역에서 하차 해버렸다. 오후 시간에 늦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합정역은 내가 '나의 청마(靑馬)' 라고 부르는 싸이클을 사러 가본적이 있는데 오늘 전철역을 빠져나와 보니 많이 변했다. 높은 건물들이 많이 올라가 있었고 사거리 분위기가 다르게 보였다. 7번 출구를 빠져나와 한강 방향으로 걸어갔다. 이 곳에서는 한강이 가깝고 양화진 천주교 절두산 성지가 있으며 강변의 경치가 참 좋다. 철로가 있는 고가도로 곁을 따라 걸어가니 곧 '한국기독교100주년 기념교회' 나오고 바로 옆에 개신교 '양화진 외국인 션교사묘원'이 나온다. 처음 보는 곳인데 영화같은데서 본 서양의 어느 도심지 공원묘원 같았다. 이곳에는 이 땅에서 기독교 복음의 씨앗으로 헌신한 선교사들이 안장되어 있는데, J.W. 헤론 을 비롯하여 145명 (가족포함)의 묘지가 있다고 한다.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에서 관리하고 있다는데, 그러고 보니 이 곳 양화진 일대는 신구교의 의미깊은 성지처럼 느껴진다. 초기 우리나라에 온 개신교 선교사들은 주로 교육선교, 의료선교사업에 힘을 쏟았으며 우리나라 근대화에 실로 대단한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한가지 생각. 공동묘지가 이러한 도심에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겠다. 이 묘역 경계에는 단독 주택가가 붙어있었는데 을씨년스러웠다. 이왕이면 도심에는 아무리 그들의 공로가 크다해도 공동묘지 설치는 하지 않아야 되는 것 아닌가 한다. 시외에 설치하면 되는 것을 왜? 이런 곳에 설치하는가? 개신교 입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접근하기 좋은 곳에 조성하여 종교적 선교와 업적을 현창하려 했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국민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조금 더 한강가로 나가니 바위산 위에 마치 우리나라 옛날 양반들이 쓰고 다니던 갓 모양의 지붕을 한 '병인박해100주년 기념성당'과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이 보이는데 평소에는 산아래 자전거 도로를 지나치기만 하였는데 오늘은 도보로 조금 둘러보았다. 입구에 들어서니 '切頭山(절두산)'이란 표시석이 보이는데 아주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머리가 잘려나갔다고 한다. 기념성당은 일요일이어서 미사 중이라 보지 못 했고 순교자박물관만 들어가 보았는데 지난번 교황 방문시 시복된 순교성인들의 순교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액자로 벽에 걸어놓았는데 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지나치듯이 밖으로 나왔다. 나는 평소에도 천주교 성당에 있는 십자가상을 보면 보기가 힘드는데 목이 날아가고 허리등이 잘린 순교자들의 그림은 아주 볼 수 없었다. 인간의 잔인성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게된다. 절대권력을 가진자들은 의심이 많고 피해망상에 시달리게 마련이므로 권력 침탈이 조금이라도 의심되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자비하게 처단하게 된다. 그게 인간의 속성이다.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자들은 실로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교의 씨앗이다." - 테르툴리아노. 순교의 3요소1) 실제 죽음을 당하여야 하고 2) 그 죽음이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증오하는 자에 의하여 초래되어야 하며 3)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고 한다. 사실 기독교의 최초의 순교자는 스테파노 (사도행전 7:54~60) 이다. 스테파노의 순교를 목도한 기독교의 위대한 사도 바울은 박해자의 위치에서 내려와 결정적인 회심(回心)을 하게 되고 기독교의 교리를 완성하게 된다. 만일 스테파노의 순교가 없었다면 그리고 바울이 회심하지 않았다면 기독교가 성립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마져 든다. 이처럼 순교는 위대한 역할을 하기도 하며, 인류의 정신 문화사를 다시 쓰게 되는 역사적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의문은 어찌 인간의 나약한 힘으로 순교에 이르게 되는 것일까? 이다. 평범하고 무지한 민초(民草)가 풀이 쓰러지듯 목숨까지 내어 놓는 이 신앙은 무엇인가? 기독교에서는 '성령론' 이라는 것을 말하는데, 이 성령(Holly Spirit)이 인간의 마음에 내재하여 그 마음을 주장하므로 어쩔 수 없이 순교의 길에 들어선다고 한다. 그러므로 순교는 영광이며 신의 선택받은 자에게만 허락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개인이란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과연 순교만이 최선인가? 꼭 순교를 해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다산 정약의 사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정약용이 배교를 하지 않고 순교를 택하였다면 그의 위대한 사상은 영원히 빛을 보지 못 하고 그의 가르침을 후세에 전할 길이 없다. 나는 정약용의 결단을 크게 생각한다. 죽음을 생각하기 보다 살아서 민중을 위하여 무엇인가 하여야 하겠다는 점을 높이산다. 그는 살아서 우리 민족의 영원한 빛이 되었다. 종교와는 무관하지만  중국 전한(前漢)시대의 역사가 사마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흉노와의 전쟁에서 중과부적으로 진 사건에서 이릉(李陵) 장군을 변호하다 무제(武帝)의 노여움을 사서 궁형(宮刑)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초상화에는 수염이 없다. 아주 치욕적인 형벌이다. 그러나 그는 치욕을 느껴 죽기보다는 궁형이라도 받아 살면서 자기의 목표를 관철하였다. 그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저 유명한 '사기(史記)' 라는 역사서이다.

 

 

< 사마천 >   - 박경리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긴 낯 긴 밤을
멀미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
천형 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던 사람
육체를 거세당하고
인생을 거세당하고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
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

 

 

아무튼 이 끔찍한 역사의 현장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한다. 이 곳을 내려와서 한강변에 서니 마음이 시원하다. 저기 여의도의 국회의사당이 보이고 한강의 다리들과 강가의 배들과 흐르는 강물과 물위에 노는 물새들과 ....이런 풍경들을 보니 마음이 시원해 진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을 꿈꾸는 것이 종교라는 생각이다.  모든 종교는 밖에서 바라보면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제 그 조직체계에 들어서면 긴장감이 조성되는 것이 사실이다. 믿음에서 멀어질 수록 죄의식과 갈등과 내적 공포감을 느끼게 되며, 믿음에 더욱 매진 할 수록 위안과 평화와 안도감을 얻게된다. 그러므로 맹신자, 광신자들이 생겨나고 인류사에 큰 해악을 저지르게 되는 역사적 사실들을 보게되는 것이다. 종교는 개인적인 것이기 대문에 누구나 행복을 찾기위하여 종교인이 되는 것은 가하지만 자기 종교만을 옹호하여 갈등을 일으키게 되면 큰 일인 것이다. 인류사의 큰 전쟁과 테러는 종교와 관련된 것들이 많고 거의 어떤 형태로든 간접적으로 나마 종교와 연관성이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유태인 철학자 에리히 프롬모든 사회 조직체에는 히틀러와 같은 소수의 폭력성을 가진 자가 존재하고 있으며 폭력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만 하면 언제나 수면 위로 올라와서 여지없이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회에서는 폭력을 저주하며 증오하는 분위기가 강력하게 형성되는 게 필요하다 하겠다. 예부터 한강에서도 경치 좋기로 이름난 양화나루가 왜 하필 처단의 형장이 되었는지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