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구릅/길 (trekking)

아차산 둘레길, 대성암 - (2015-03-02)

by the road of Wind. 2015. 3. 3.

아차산 둘레길, 대성암  - (2015-03-02)

 

오랜만에 산길을 조금 걸었다. 아차산 둘레길이나 대성암은 집에서 가까워 자주 다니던 길인데도 오랜만에 산책을 하니 처음처럼 새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산이라 할 지라도,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할 지라도 너무 자주 만나면 감흥이 사라지게 된다. 적당한 시기에 만나고픈 때에, 내 마음이 움직일 때 만나면 반갑고 그동안의 보고싶었던 감정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날씨까지 화창하였다. 산길을 걸으니 진달래 움이 가지 끝에 매달려 돋아나오고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다. 바람을 덜 타고 양지바른 곳이라 그런 것 같다. 조용한 산길을 나 혼자 사색에 잠기며 음악을 들으며 걷는 다는 것은 어떤 일상의 기쁨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나는 산행에 나 홀로가 좋다. 곁에 아무도 없어야  산길 주변의 수목이 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산책코스: 구리대장간 마을 주차장 - 큰바위얼굴 전망대- 구리 둘레길- 대성암 - 중간 능선길 - 약수터- 큰바위얼굴 전망대- 구리대장간 마을 주차장 .

 

집에서 한 20분 거리인 이 곳은 사실 주차하기가 무척 좋은 곳이다. 광진구 워커힐호텔을 지나서 구리와 서울의 경게에 있기 때문에 출입이 수월하고 주차하기가 아주 용이하다. 그래서 이곳을 산행 기점으로 많이 이용한다. 고구려 대장간 마을이 생기기 전에는 이곳에 음식점이 있어서 주말에 단체 회식도 더러 하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정리되고 없다. 음식점들은 도로변 초입에 있다.   

 

 

 

<고구리대장간 마을>은 드라마세트장이다. 한류열풍의 배용준이 출연한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 를 촬영했던 장소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일본인 관광객들의 방문도 더러있다고 한다. 고구려대장간 마을 주변에는 구리시 둘레길 탐방로가 있으며, 자연적으로 사람의 얼굴이 만들어져 있는 <아차산 큰바위얼굴>과 <삼층석탑>이 위치해 있다. 고구려대장간 마을이라는 테마는 좋은데 관광객은 그리 많지않은 것 같다. 대장간 마을 내부로 들어가 보면 어린이나 학생들에게는 크나큰 흥미와 남한 지방에서는 보기드문 역사적 사실과 웅대한 고구려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성공 여부를 떠나 역사의 숨결을 오늘에 되살려 느낄 수 있는 테마 관광지는 많을 수록 좋지않겠는가?   

 

 

<큰 바위 얼굴>은 어린 시절부터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동경한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미국의 소설가 호손의 단편 소설을 연상 시키며, 또한 조각가 거츠 보그럼의 러쉬모어산 <큰바위얼굴> 조각상으로, 미국의 역사를 상징하는 워싱턴, 제퍼슨, 링컨 및 루즈벨트 대통령의 거대한 얼굴상을 연상하게도 된다. 그런데, 경기도 구리 아차산에는 자연적인 모양의 <큰바위 얼굴>이 있다. 마치 고구려인의 모양을 닮은 듯이...  

 

아차산 큰바위얼굴  -   한도훈


아차산에 큰바위얼굴이 있네
고구려 장수왕인가

하늘에서 벼락 떨어져
그 큰눈 만들어지고
계곡물 소쿠라져 비뚤어진 입,
바람 한소끔씩 끓어올라
우뚝 선 콧등을 세웠나니
겨울 눈꽃 하염없이 쏟아지고
봄이면 신갈나무 꽃가루 날려
붉은 뺨 어루만지길
그 얼마이던가

여름 어느날
아차산성 고구려 병사가
깨벗고 물장구치고 놀다
큰얼굴과 눈마주친 뒤
싸리꽃처럼 슬몃 웃던
그 모습 그대로

오늘, 이십일세기
칼바람 맞으며 서 있네
날선 칼 한자루 건네주려고...


아직 녹지 않고 있는 바위의 폭포얼음...우측 계단으로 둘레길이 있다.  

 

 

 

고구려 대장간 마을 전망대...그리고 전망데에서 바라 본 대장산 마을 전경.

 

이제 우측 능선길을 따라 대성암을 목표로 오른다.

 

 

 

중간에 바위도 만나고, 시원히 조망되는 한강 상류의 경치가 조용하기만 하다. 건편은 강동구 암사동, 고덕 일대가 보인다.

 

워커힐 송파, 광진구 방향의 경치...

 

따뜻한 봄 날 이런 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1-2시간 앉아 있고 싶다...그늘에서 독서도 하며, 풀 향내를 맡으며...

 

 

 

 

이 곳에 있는 소나무들은 모습이 단아하다. 소나무는 언제 보아도 정감이 가는 나무이다. 최근 제선충 때문에 전국적으로 수난을 당하고 있어 안타깝다.

 

아차산 기슭의 대성암을 올려다 본다. 조그만 암자가 운치가 있으며 전망이 우수하다. 한강 상류를 아주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차산 대성암 은 1300 여년전 670년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신라 중기 무학대사가 중창하였다고 하나 그 근거는 찾을 수 없다고 한다. 1921년 안보광 화상이 이 곳에 석굴을 발견하고 폐사지를 인수하여 범굴사 암각문을 확인하고 법당과 사채를 건립하였으나 1950년 6.25동란 때 폭파로 소실 되었다 1978~1981년에 걸쳐 대웅전과 전각, 요사채등을 다시 건립하였다고 한다.   

 

 

 

 

 

 

 

 

 

 

 

 

하산길...

 

 

 

 

 
 아차산 을 등산하게 되면 이곳이 한강 유역을 아주 잘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군사적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1994년부터 실시해 온 지표조사를 통해 남한 최대의 고구려 유적인 아차산 보루군이 발굴되었는데 획기적인 성과였으며 일대 사건이었다. 이 시기에 일어난 산불로 성곽의 일부가 노출된 것이 발견의 단초가 되었다. 고구려의 유적이 대부분 북한 지역에 있는데 남한지역에서 고구려의 유적을 직접 발굴할 수 있다는데 큰 의의가 있었다. 아차산 보루군에서 발굴된 고구려유물은 그 숫자와 규모가 매우 커서 남한 최대의 고구려 유적군이 되었다. 토기와 무기류 등 약 1000여 점에 달하는 고구려유물이 발굴되었다. 아차산에는 총 150여개의 보루가 발견되었으며, 400~500미터 간격을 두고 설치되어 있었다. 보루들 마다 많게는 100여명 적게는 10여 명의 군사들이 주둔하면서 언제든지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만들진 형태다. 이것은 고구려군이 한강유역을 바라보며 송파, 하남 일대의 백제를 압박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이처럼 아차산은 역사의 살아있는 현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