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리 양푼이매운탕, 능내리 다산유적지 - (2015-03-08)
북한강변에 있는 경기도 화도읍 금남리는 경치가 참 수려하다. 북한강이 유장히 흘러내리고 강 위에는 젊음의 모터보트들이 푸른 물결을 만들며 질주하는 그런 곳이다. 강 건너에는 수입나루터가 있으며 손에 잡힐 듯 화야산, 고동산의 산 줄기가 수려하게 빛을 발하는 듯 하다. 강변 바로 곁에는 양주 골프장도 있다. 이곳은 교통이 편리하여 출입이 용이하다. 나는 이곳을 잊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이곳에 양푼이 매운탕이 유명하다고 하여 인터넷을 검색하여 찾아온 것이 2014년 5월경이었다. 그때 나는 이곳의 매운탕 맛과 경치에 반하여 마음 속에는 '금남리, 경치 좋은 곳, 시원 얼큰한 매운탕' 하는 이미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하여 오늘 이처럼 화창한 날씨에 다시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아침에 불현듯 교회간 집사람과 연락하여 근처에서 픽업을 하여 금남리로 향하였다. 인터넷에서 식당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금남리 매운탕'으로 체크하여 나오는 블로그 포스팅을 보고 직방으로 달려갔다. 아직 야외 평상에서는 바람이 차서 음식 먹기가 이르다. 그래서 식당 실내에서 옛날 처럼 양푼이 잡어매운탕 (2인분)을 시켰다. 푸짐한 매운탕이 나온다. 수제비와 같이 나오는 매운탕은 양도 많다. 나는 예전처럼 아주 잘 먹었다. 내가 워낙 민물 매운탕을 좋아한다. 우리 집사람은 그렇게 잘 먹지를 못 한다. 이번에는 매운탕이 좀 맵게 느껴졌다. 매우니 음식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항상 "덜 맵게"를 부탁 했어야 하는데 늘 까먹는다. 그리하여 내 혼자 많은 독식을 하였다.
매운탕을 먹은 후, 능내리 다산유적지를 아주 잠깐 스쳐서 집에 돌아왔다. 언제 보아도 다산 정약용 선생은 훌륭한 분임을 느낀다. 다산 유적지에 차량이 만원이다. 오늘은 정말 차량이 많다. 날씨가 화창하니 집에만 있을 수야 없을 것이다. 사람 마음이 모두 똑 같은 것이다.
금남리 매운탕집 에서:
잔잔한 강을 바라보고, 강 건너 산을 바라보니 봄이 오고있음을 확실히 알 것 같다. 아니 봄은 이미 내 발끝에 와있다. 머잖아 무수한 꽃들이 만발하리라. 개나리, 동백꽃, 매화, 모란, 목련, 벚꽃, 영산홍, 유채꽃, 철쭉, 진달래, 목련..등등... 피고 피어나리라. 봄은 생명인데, 절정에 곷이 있다. 생명은 환희이다. 기쁨이다. 새여, 마음 껏 노래하라.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여 생명의 환희를 노래할지어다. 우리는 거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알기 때문에 감사를 모르고 산다. 그러나 진실로 우리가 감사해야 될 것들은 이런 무상의 것들이다. 오늘 북한강변에 서서 나도 한없는 기쁨과 생의 충만을 느껴본다.
능내리 다산유적지 에서:
回婚 (회혼) - 정약용
六十風輪轉眼翩 (육십풍륜전안번) 육십 년 세월, 눈 깜빡할 사이 날아갔는데도
穠桃春色似新婚 ( 농도춘색사신혼 ) 짙은 복사꽃, 봄 정취는 신혼 때 같구려
生離死別催人老 (생리 사별 최인로) 나고 죽는 것과 헤어지는 것이 사람 늙기를 재촉하지만
戚短歡長感主恩 (척단환장 감주은) 슬픔은 짧았고 기쁨은 길었으니 성은에 감사하오
此夜 蘭詞聲 更好 (차야 란사성 갱호) 이 밤 목란사 소리 더욱 좋고
舊時 霞帔 墨猶痕 (구시 하피 묵유흔) 그 옛날 치마에 먹 자국은 아직도 남아 있소.
剖而復合眞吾象 (부이복합진오상) 나뉘었다 다시 합하는 것이 참으로 우리의 모습이니
留取 雙瓢 付子孫 (유취쌍표부자손) 한 쌍의 표주박을 자손에게 남겨 줍시다.
* 목란사(木蘭辭): 중국 장편 서사시로, 작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북위에서 지어졌으며, 목란이란 어린아이가 늙어버린 아버지를 대신해 남장차림으로 전쟁터에 나간 지 10년 만에 공을 세우고 금의환향 한다. 그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은 목란이 여자임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을 시화한 것이다.
다산 선생은 15세 때인 1976년 부인 홍씨와 결혼해 만 60년을 회로하였으며, 결혼후 20여년을 유배생활로 떨어져 살았다. 이 시는 회혼일 3일 전에 이를 기념하기 위하는 마음으로 지었으나, 뜻밖에 회혼일 아침에 세상을 떠났으며, 이 시가 그의 생애 마지막 글이자 시가 되었다. 부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느껴지는 시이다. 자식 사랑 또한 가없이 느껴진다. 다산이 강진에서 10년째 귀양 살이를 할때 병석에 누운 아내가 시집올 때 입었던 치마를 보내왔다. 아내의 마음을 헤아린 다산은 치마를 잘라 첩(帖) 몇 권을 만들고 두 아들에 대한 당부를 적어 보냈다. 노을처럼 빛 바랜 붉은 치마에 썼다 해서 ‘하피첩(霞 帖)’이라고 했다고 한다. 다산은 문집에 하피첩을 만든 사연을 ‘형제가 이 글을 보면 감회가 일 것이고 두 어버이의 은혜를 뭉클하게 느낄 것이다.’ 라고 썼다. 가슴 뭉클하다. 부부의 따뜻하고 깊은 사랑과 자식애는 후세에 언제나 귀감이 될 것이다. 인생의 아름다운 마침이고 결말이다. 다산 선생을 마음으로 우러러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다산 유적지에서 참으로 많은 감회를 느끼고 인생에 대하여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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