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안산, 봉원사 ① - ( 2018.02.21 )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오늘은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역 근처에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안산( 296m), 그리고 이화여대 방향으로 하산하다 봉원사 절을 둘러보고 왔다. 보통은 안산 등산시 독립문공원을 통과해서 곧 바로 안산으로 등산을 하곤해서 이곳의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둘러보지 못 했다. 그러다. 오늘은 작심하고 무시무시한 서대문형무소역사문화관을 둘러보았다. 우리나라 일제시대의 독립투사들의 모진 고문 현장과 방법 등을 볼 때는 잔인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사형장도 보고, 형무소 감옥도 보았다. 나 같으면 이런 형을 취조하기 전에 까무라칠 것 같다. 일본제국주의가 얼마나 무자비 했었나를 생생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나와 안산으로 등산하였다. 안산은 해발 296m의 낮은 산이나 정상에는 봉수대가 설치되어있었고, 서울 외곽의 북한산을 비롯하여 인왕산, 남산, 낙산 등 등 그리고 한강 너머 관악산 등이 잘 조망되었다. 안산 은 바위 봉우리여서 등산시 가파른 바위를 측면애서 바라보는 것도 좋았으며, 특히 서울성곽이 하얗게 빛나는 인왕산 능선을 바라보는 것이 아주 좋았다. 안산 정상 등산후에는 평소에 가보지 않았던 오른쪽 능선길로 하산하려고 연희동 방향으로 내려가다 왼쪽으로 내려가다보니 멀리 봉원사가 보였다. 나중에 7024번 (봉원사-서대문역(5호선)-서울역-신촌역(2호선) 봉원사 버스종점으로 내려왔으며, 여기서 다시 조금 위에 있는 봉원사로 올라가 경내를 둘러보았다. 봉원사는 태고종 본사로서 커다란 사찰이었다. 오늘도 일단의 사람들이 여기를 방문하고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봉원사 구경을 마치고 왼쪽 능선을 타보려고 하였으나 산길을 못찾아 다시 내려오다, 조그만 슈퍼가 나타나 목이 말라 캔맥주를 한잔하고, 그리고 바로 아래에 있는 버스 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2호선 신촌역에 도착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높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은 안산을 등산하고 서대문 형무소와 봉원사를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당초에는 임진각평화누리공원을 가보려다 왕십리역에서 경의선을 기다리다 시간이 늦겠다 싶어 방향을 안산으로 틀었는데 참 잘한 것 같다.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많은 애국지사들이 갖은 옥고를 치르고 마침내 목숨까지 빼앗겼던 서대문형무소는 우리민족 독립의 현장이며 살아있는 역사의 터이다. 불행한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난날을 확실하게 되돌아보고 교훈을 삼아야 할 것이다. 서대문구에서는 이곳의 옥사와 사형장, 망루등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고 악명 높았던 구 보안과 건물을 보수하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새롭게 개관하였다. 특별히 서대문독립공원에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비롯하여 사적 제32호 독립문과 사적 제33호 영은문주초, 독립관, 순국선열추념탑, 3.1독립선언기념탑 등이 있는 우리민족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온 국민과 해외동포 특히 청소년들이 이곳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통해서 조국에 대한 올바른 역사관과 선열들의 희생으로 굽히지 않았던 자주독립 정신을 깨닫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었으면 한다. - < 서대문구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건물 배치도: 1) 담장과 망루 2) 전시관 3) 중앙사 4) 12옥사 5) 공작사 6) 한센병사 7) 추모비
8) 사형장 9) 시구문 11) 9옥사 12) 10옥사 13) 11옥사
관람시간
• 여름철(3월~10월):09:30~18:00
• 겨울철(11월~2월):09:30~17:00
• 정기휴관 : 1월1일, 설날, 추석날, 매주 월요일(공휴일에는 다음날)
관람료
• 어른 : 3,000원(개인), 2,400원(단체)(19세이상~64세이하)
• 군인 : 1,500원(개인), 1,200원(단체)(제복을 입은 하사 이하의 군인)
• 청소년 : 1,500원(개인), 1,200원(단체)(13세이상~18세이하) (학생증을 소지한 고등학생 포함)
• 어린이 : 1,000원(개인), 800원(단체)(7세이상~12세이하)
• 경로우대자 : 무료(65세이상)
• 유아 : 무료(6세이하)
• 장애인.군경원호대상자 : 무료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독입문역5번출구...<- 서대문독립문공원. -> 인왕산, ↑무악제, 한성과학고등학교.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대형 태극기...한성과학고 방향...
서울 구 서대문 형무소 (지정번호: 사적 제324호):
옛 서대문 형무소는 1907년 일제가 한국의 애국지사들을 투옥하기 위해 만든 감옥이다. 옛 서울 서대문형무소의 처음 이름은 경성감옥이었는데,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 경성형무소,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 등으로 바뀌다가 1967년에 서울구치소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를 비롯하여 애국시민, 학생들이 투옥되었고, 광복후에는 반민족행위자와 친일 세력들이 대거 수용되었다. 후 4.19, 5.16 군사정권 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다. 1987년에 옛 서울구치소를 경기도 의왕시로 옮길 때 옥사는 모두 15개 동이었다. 이 가운데 역사성과 보존가치를 고려하여 제9~12옥사, 나병사, 사형장등을 남겨두었다. 1968년 부터 공원을 만들기 시작하여 1992년 부터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부르고 있다.
자유와 평화를 향한, 80년 1908~1987,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억압과 공포의 상징, 서대문형무소:
서대문형무소는 대한제국 말기, 일제에 의하여 1908년 10월 21일 경성감옥으로 개소되었다. 개소 당시 전국 최대규모의 근대식 감옥으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맞서 싸운 한국인을 처치하고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에는 한국인에 대한 억압과 처벌의 장소로 이용되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 순국하였으며, 광복 이후에는 독재정권에 의해 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수감되어 고난을 치렀던 곳이다. 이곳 서대문 형무소는 1908년 부터 1987년까지 80여년의 운영 기간동안 식민권력과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자유와 평화를 위해 수많은 희생이 있었던 역사의 현장이다.
서대문형무소 모형...
창문 추, 용마루 기와...
전국 형무소 배치도 (1936)
재소자 고무신, 빨래방망이 ...
민족저항실Ⅰ...
민족의 저항, 독립운동:
대한제국 말기, 우리민족은 의병전쟁과 계몽운동을 전개하여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고, 1910년 강제합병으로 나라를 잃은 후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거세게 전 민족이 독립운동을 펼쳤다. 1910-1945년에 걸친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민은 의혈투쟁, 비밀결사 조직, 해외 독립군 지지 창건, 독립군 양성, 3.1 독립만세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6.10만세운동, 대일 무력 투쟁및 사회,문화,노동,농민,학생운동 등 다양한 방법의 독립운동으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웠다. 이곳 민족저항실에서는 이 과정 속에서서대문형무소에 수감 또는 순국 하였던 독립운동가들과 관련된 주요 사건 및 활동을 중심으로 전시하였다.
서울진격보고서 (1907.11)..
이강녕 의병장 옥중서한 (1908년)..
곽한일 의병장 칼...
이강년 의병장(1858-1908):
1896년 문경세ㅓ 유인석 의병부대 유격장으로 활약. 1907년 제천전투에서 적 500여명 토멸. 13도창의군 호서창의대장 추대. 1908년 충북 청풍 까치성 전투에서 피체. 그해 9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허위 의병장(1854-1908):
1896년 갑산(현 김천)에서 의병 거의. 1907년 13도 창의군 진동창의대장 추대, 1903년 13창의군 군사장 추대, 서울탈환작전 전개, 동대문 부근 12km 지점까지 진격, 5월 임진각 유역 활약중 피체. 9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이인영 의병장(1867-1909):
1895년 춘천.양구 지역에서 의병 거의. 1907년 원주 등지에서 의병규합, 관동창의대장 활약. 7월 전국의병을 모아 연합군 조직, 1908년 부친 부고로 문경 귀향. 1909년 6월 체. 9월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
1910년 강제합병..
1910~1945년, 독립운동....안중근의사도 보인다.
양기탁, 양전백, 편강렬/ 김구, 차이석, 윤치호/ 이승훈, 유동렬, 이명룡
족쇄 (일제강점기)
수갑
의열투쟁: 의열투쟁은 개인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쳐 일본제국주의 요인이나 친일파를 처단하고, 식민지 통치기관을 파괴하였던 독립운동 전략의 하나였다. 이는 적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겨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조하는 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대표적으로 이재명, 강우규, 채경욱, 송학선 의사 등이 거사를 결행하였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하여 순국하였다.
* 의사(義士): 목숨을 바쳐 무력적인 행동으로 적에 대한 거사를 결행하신 분.
* 열사(烈士): 목숨바쳐 맨몸으로 적과 싸워 투쟁하신 분.
* 지사(志士):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하고 적에게 항거하신 분.
광복회:
1915년 경북 대구에서 박상진을 중심으로 조직. 전국 해외지부 설치, 친일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활동 전개.
1917-1918년 친일파 장승원, 박용하 처단. 1918년 박상진, 김한종, 채기중, 임봉주, 장두한, 강순필등 서대문 형무소 수감.
1921년 채기중, 김태경, 임봉주, 강순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
1921년 박상진, 김한종 대구형무소에서 옥사.
의열단:
1918년 중국 지린에서 김원봉,김세우 등을 중심으로 조직.국내외 일제고관및 친일파 처단.
1920년 곽재기 지사 조선총독부 폭파 계획중 피체 서대문형무소 수감.
1923년 김상옥 으시 종로경찰서 폭탄투척 의거. 은신중 일경과 총격전 긑에 자결.
1924년 김지섭 으사 일본 도쿄 황궁 폭탄 투척 의거.
1926년 나석주의사 동방척식주식회사에 폭탄투천 의거 자결.
27결사대:
1918년 만주에서 활동하던 이탁등 독립운동가 27명을 국내진입.
1919년 서울에서 이완용등 매국노 7인을 처단할 목적으로 결사대 조직.
국내에서 임종환등 5명 합류.
1919년 고종 인산시 매국노 처단. 일제 주요기관 파괴활동 전개.
1919년 임종환등 23명 피체. 서대문형무소 수감. 양종환 옥사.
조선민족대동단:
1919년 전협,최익환등이 독립운동 필요성 자각하여 조직. 활동 중 주목되는 것은 의친왕(義親王)이강(李堈)을 망명시켜 임시정부에 참여시키려던 계획이다. 1919년 대동신보 발행, 10월 제2의 3.1독립만세운동 추진. 11월 정남용, 이을규(李乙奎), 한기동(韓基東), 송세호(宋世浩) 등이 의친왕과 함께 수색역을 출발해 열차편으로 압록강을 통과해 11월 12일 만주 안동역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의친왕의 탈출계획을 사전에 안 일경에 의친왕은 서울로 호송되고 전협, 정남용, 이을규 등이 차례로 체포, 중형 언도받음.
유관순 열사...
벽면에 붙어 있는 순국열사들의 사진...
태극기 목각판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3.1독립만세운동 직후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어 명실공히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되었다. 임시정부는 최고지휘부가 되어 연통제를 실시해 국내의 독립운동 연락망을 구축하였고, 외교,교육,문화등 다방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40년 9월 광복군을 창설하여 일제에 선전포고를 하고 대일전쟁을 전개하는등 관복의 서막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국내외에서 활약하던 많은 임시정부 요인들이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그 중 여러명이 옥중 순교하였다.
제2의 만세운동, 6.10만세운동: 6.10만세 운동은 1928년 6월 10일 각계각층의 다양한 독립운동 세력이 연합하여 펼친 만세시위운동이다. 순종의 인산일 약 30만명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5~600여명의 학생이 일제히 독립만세를 고창하여 시위를 전개하였고 지방 곳곳에서도 만세 시위가 이어졌다. 이 시위로 서울에서 21명이 체포되었고, 권오성, 권오상, 이선호, 유연희를 비롯한 대부분의 관여자들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공명 단신문기사 (1929.4.18)
조선어학회사건: 조선어학회는 일제의 한국어 사용 금지 등 민족말살정책에 저항하여 사전편찬, 한글보급을 통해 민족사상을 고취하였던 단체이다. 일제는 1942년 10월부터 1944년 2월까지 한글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던 한글학자 33명을 검거하였고, 이로 인해 조선어학회는 해산되었다가 광복후 한글학회로 재조직 되었다.
사형장 가는 길
사형장 지하 시신수습실 모형.
사형장 및 벽에 붙어있는 독립투사들 사진들...
시구문...시체 내어가는 문.
서대문 형무소 지하고문실: 이곳 서대문형무소 보안과 지하실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던 독립운동가들을 취조하였던 공간이다. 각 방은 취조실과 임시구금실, 독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곳에 끌려온 독립운동가는 취조과정에서 견디기 힘든 온갖 고문을 감당해야했다. 이러한 이유로 이곳 지하수감실은 수감자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지하고문실이라 불렸다. 이렇게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은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에 자행했던 폭력과 국권을 되찾기 위해 피흘리며 노력한 한민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증명하고 있다.
물고문...강제로 수조에 머리를 집어넣거나, 코나 입에 물을 마구들이 부어 호흡을 곤란하게하여 고통을 주었던 고문 방법. 심지어는 폐에 물이 차서 흉막염에 걸려 매우 고통스럽게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에 고문현장은 오리지 않겠다. 끔찍하다.
취조광경
손톱자르기고문..가늘고 날카로운 꼬챙이를 손톱 밑으로 찔러 고통을 주었던 고문 방법. 심할 경우 손톱뿐만 아니라 입 속까지 마구 찌러 고통을 주기도 했으며, 심지어 그 고통으로 기절하는 경우도 있엇다.
태 (1912년)
상자고문...상자 안쪽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상자 안에 집어넣어 마구 흔들며 못에 찔리게 하여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
벽관고문...옴짝달싹 할 수도 없이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하여 앉을 수도 움직링 ㄹ수도 없는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 벽에 서 잇는 관이라 하여 '벽관'이라 이름 붙여졌다.
지하독방...취조후 옥사로 이동하기 전 감금했던 곳. 곳곳에서 들려오는 고통의 비명소리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고문과 공포로 휩싸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하독방에서도 독립운동가는 만세소리를 멈추지 않았고, 독립의 다짐을 되새겼다.
되찾은 조국, 광복의 환희:
2008년 11월 서대문형무소 개소 100년, 1998년 11월 15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개관, 1987년 11월 15일 서울구치소 경기도 위왕시로 이전..
아, 밖으로 나오다. 밝은 햇볓을 보다:
서대문형무소 순국선열 추모비: 추모비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시다 순국하신 분들을 모신 자리입니다. 순국선열들의 얼과 혼을 추모해 주세요.
서대문형무소순국선열: 강석대 강순필 강우규 강종근 ....등등 191명의 명단...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우물 및 격벽장..
서대문형무소 투옥 독립운동가...
형무소 감방...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연혁.
민족의 수난과 비극의 현장에서 그 당시의 독립에의 열망과 순국선열들의 피 흘린 희생에 머리가 숙여진다. 다시는 이런 수난의 역사가 없어야 한다. 지금 평화롭게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러한 점을 잘 마음에 아로새겨서 각자 애국 정신에 투철해야 하겠다. 진정으로 우리나라가 부강해 지고, 외세에 침략당하는 일 없이 평화롭게 살아가야 한다.
일본제국주의의 침탈로 부터 얼마나 감격하며 광복을 맞이했는가? 그런데 얼마후에 정신을 못 차리고 우리민족은 다시 6.25 라는 민족의 수난을 겪지 않았는가? 상처뿐인 동족상잔(同族相殘)에서 얼마나 많은 백성이 피흘리고 죽어가야 했는가? 우리의 아름다운 국토가얼마나 심하게 폐허가 되었는가?
지금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으로 칭송받고 있다. 인류 역사 이래 가장 빠른 경제부흥의 기적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잘 알고 과거를 무조건 무시하면 않된다. 젊은 세대들이 가난과 전쟁을 알겠는가?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허리띠를 졸라메고 일하며 이런 부강한 나라를 이룩하였는가를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
움음울하고 고통에 찬 고문실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보고 나서니, 지금의 우리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졌나 선혈들의 참혹한 희생에 다시금 마음이 숙연해 진다. 밝은 햇빛을 보니 참으로 송구스럽게도 감사한 세상에 살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지금 또 어려운 국제상황과 경제상황에 처해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상황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떤 때는 방송을 보면서도 기가차서 말이 않나오는 경우가 많다. 신문 사회면은 매일 같이 나쁜 뉴스이다. 이러면 안되는데...걱정이 매우 크다. 살인이다, 패륜이다, 성범죄다, 무엇이다 등등 이게 옳바른 사회인가? 지금 무언가 잘 못 된 것 같다. 세계 최상의 기술로 인터넷 세상을 구가하는데 오히려 우리들의 마음 상태는 잘 못 되어 가는 것 같다. 차라리 그 옛날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 모두 나 때문이오 하고 먼저 자기 부터 반성하는 자세로 살아가고, 모든 문제점을 슬기롭게 극복하여 세계에서 가장 존경과 찬사를 받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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