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단풍문화제 2018, 자재암, 선녀탕 - ( 2018.10.27 )
오늘 하루동안 동두천문화원이 주최하는 '소요단풍문화제 2018' 가 소요산 야외음악당에서 개최된다. 나도 오늘 오전에 이 사실을 알고 서둘러 등산 채비를 하고 전철을 타고 1호선 소요산역으로 향했다. 전철은 소요산 가는 사람들로 분볐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요산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12:49 소요산역에 내려서도 플렛홈에서 전철 개찰구를 통과하기 까지 떠밀려 가다시피 하였다. 거의 올드 그레이(old gray) 들이었다. 연세든 분들에게는 이런 축제가얼마나 좋은가? 단풍 구경도 하고 막걸리도 한잔하고 얼마나 좋은가? 소요산 주차장 입구에서는 2018 국화전시회도 열리고 있었다. 주차장 길을 조금 올라가니 오른쪽 바탈 아래 품바타령 하는 곳도 보인다. 수많은 차량들이 주차장을 점령하고 있었다. 주차장을 지나 소요산 야외음악당으로 올라가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수많은 텐트들이 쳐져있고 음식물을 팔고 있었다. 오늘 소요산 일대는 '보고, 듣고, 먹자' 판이다. 나는 소요산 자재암 으로 가는 길도 수많은 사람들로 분볐다. 길고 긴 계곡 좌우로 단풍이 아름답다. 나는 단풍 구경을 하며 자재암을 들렀다가 선녀탕까지 가보았다. 나는 소요산을 더러 다녔지만 자재암 위 쪽 계곡에 있는 선녀탕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선녀탕이 있는 계곡은 소요산 계곡 중에서도 최고였으며 정말 단풍에 물든 암벽의 아름다움에 감탄이 나왔다. 선녀탕은 계곡 물이 말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볼품은 없었으나 주변 경치의 수려함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늘 소요산 단풍을 구경을 해보자지 않았다면 얼마나 후회가 되었을까? 이 가을 단풍 피크 철엔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경기도의 소금강인 소요산을 반드시 가 볼 일이다.
소요산역 앞 거리 풍경...
소요산 가는 길 뒷 골목...
수많은 사람들이 단풍축제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소요산 입구의 이 키큰 나무....언제 보아도 멋있다.
억새풀도 하얗게 변하여 바람에 몸을 누인다...
마차산 방향....
2018 소요산 국화전시회.....
소요산 자재암....
노란 국화의 화려함...
"국화 행복마차"...
할매와 미실이 공연장....
소요산 단풍 구경...몰려가는 사람들....
군밤, 햇밤출시....
소요산 단풍나무 터널 조성 현수 기념비.....
소요산 입구 조형물....
계곡 물리 말라있다...
시가 있는 산책길...
개여울
김소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히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約束)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소요산야와음악당...오늘 축제장이다...
아, 단풍...붉은 홍조....너의 수줍은듯한 그 얼굴을 잊지 않으마....
동두천을 사랑하는 모임...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작은 행복으로 내 마음이 기뻐지는 오늘을 살아가고 싶다...
다정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해 지는 길이다......
소요산 입문(入門)...
소요산 자재암...자재암 일주문....
소요산 자재암....경기소금강...
원효폭포....원효굴....
○ 원효 (元曉) (617-686): 신라시대 승려, 귀족으로 본명은 설사(薛思)이다. 신라의 개국공신이자 박혁거세를 추대한 사로 6촌의 촌장 중의 한사람인 설거백 또는 설호진의 후손이다. 원효는 15세(또는 28세) 때 어머니 조씨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삶과 죽음을 오래 고민하다가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출가 이후 영취산(靈鷲山)의 낭지(郎智), 흥륜사(興輪寺)의 연기(緣起)와 고구려 반룡산(盤龍山)의 보덕(普德) 등을 찾아다니며 불도를 닦으며 뛰어난 자질과 총명이 드러났다. 34세 때인 650년(진덕여왕 4년) 의상과 함께 당나라 고승 현장에게 불법을 배우러 가다가 요동 근처에서 고구려 순라군에게 잡혀 좌절되었으며, 661년(문무왕 1년) 다시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길에 올랐으며, 당항성 근처의 한 무덤에서 잠이 들었다가 잠결에 목이 말라 달게 마신 물이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 다시 보니 해골바가지에 담긴 더러운 물이었음을 알고 급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진리를 깨달아 유학을 포기한다. 그 뒤 분황사에서 득도 통불교(通佛敎)를 제창하며 민중 속에 불교를 보급하기에 노력했다. 원효는 한국불교의 불멸의 성사(聖師)이며, 그는 대승불교의 건설자인 인도의 나가르주나(Nagarjuna, 용수龍樹)나 중국불교를 새롭게 열어간 천태지자(天台智者)대사에 비견되기도 한다. 한국불교에서만이 아니라 세계불교사에 있어서 원효의 위치는 그만큼 찬연하게 빛나고 있다. 원효는 실로 불교 사상의 종합과 실천에 노력한 정토교(淨土敎)의 선구이며 또한 으뜸가는 저술가이기도 하였다. 저서:《열반종요》,《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론》,《 발심수행장 》등.
원효굴...
○ 요석공주와 원효: 요석공주(瑤石公主)는 김춘추의 둘째누이며, 첫남편을 백제전투에서 잃고 홀로 된 여인으로, 당시 무열왕은 요석궁에 머무는 과부가 된 둘째 딸을 원효와 결혼시키려 하였다. 왕이 궁리(宮吏)에게 명하여 금성시내에서 춤추며 노래 부르는 원효를 찾아 데려오라 했으며, 궁리가 시내로 나가 원효를 찾자, 그는 이미 남산(南山)에서 내려와 문천교(蚊川橋)를 지나다가 관리를 만나게 되는데, 일부러 물에 빠져서 옷을 적셨다. 이후 무열왕은 옷을 말리고 쉬게 하도록 명을 내려 원효와 공주를 맺어주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원효는 과부공주인 요석과 만나 얼마후 설총을 낳았다고 한다. 이후 스스로 실계(失戒)한 원효는 소성거사(小性居士)라 하며 무애의 보살행을 행하였다 한다. 요석공주는 당대 최고의 학승을 파계시키고 3일간의 사랑으로 설총을 얻으며, 위대한 원효를 민중에게로 인도한 보살이었다고 평가할만 하다. 원효는 뒷날 설법에서 “고구려나 백제, 신라는 모두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했으며, 그는 진정한 미래를 내다본 선지자, 선각자이기도 하였다.
속리교 건너 "동두천 소요산 등산코스" ...
1코스(초보자코스): 일주문- 자재암- 하백운대- 선녀탕- ㅏ재암- 일주문.
2코스(중급자코스): 일주문- 자재암-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칼바위- 선녀탕- 자재암- 일주문.
3코스(상급자코스): 일주문- 자재암-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칼바위-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 구절터- 일주문.
백팔계단....백팔번뇌를 생각하며 계단을 오르라는 뜻인가?
백팔번뇌란 불교에서 인간의 모든 고통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면 108 이라는 숫자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육근(六根) 즉 눈, 귀, 코, 혀, 몸, 생각은 각각 어떤 대상을 만 나면 그로인해 ‘좋다’, ‘나쁘다’ ,‘평등하다’ 의 세가지로 인식하 기 때문에 18가지의 번뇌를 가져오며 또한 고통(苦), 즐거움(樂), 고통 도 즐거움도 아닌(捨_사) 세가지의 작용으로 18가지의 번뇌를 내게 하니 모두 36가지가 된다. 이를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간으로 계산하면 108번뇌가 된다는 것이다.
백팔계단 입구 이정표.....<- 중백운대 1.4km, <- 자재암 0.35km, ↖ 공주봉 1.3km, ↖ 의상대 2.5km, ↘ 일주문 0.1km, ↘ 소요산역 2.4km.
백팔계단...인간은 무구나 그 자신의 번뇌를 안고 힘들게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은 인생길을 걸어간다.
해탈문.....백팔번뇌를 가지고 힘들게 백팔계단을 올라 해탈문에서 홀연히 번뇌의 업장은 소멸되고 새로운 세상에로의 개안을 열게 된다는 뜻인가?
놓치기 쉬운 소요산 명소...
* 관음봉: 원효대사가 수도하던 중 관음보살을 친견하였다는 설화로 관음봉이라 불린다.
* 속리교: 원효폭포 가기 전 우측에 위치한 대리석 교량으로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다는 의미의 교량.
* 세심교: 원효대를 지나면 대리석 기둥을 여러개 놓은 다리가 있는데 마음을 씻는다(정하게 한다)는 의미의 다리.
* 극락교: 소요교라고도 불리며 자재암을 잇는 다리로 부처님의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의 다리.
* 원효폭포: 일주문을 지나면 좌측에 아담한 폭포가 보이는데 원효대사가 원효대에서 고행 수도중 자주 내려와 휴식을 취하던 곳.
* 추담선사부도: 자재암에서 입적한 추담선사(1898-1978)의 공적을 기린 공덕비와 사리탑이 있다.
* 독성암: 자재암 맞은편에 우뚝 솟은 기암으로 옥녀봉, 옥로봉, 원효암, 약수암 등으로 불린다.
* 옥류폭포: 천연암굴인 나한전 오른쪽에 우물처럼 깊게패인 협곡으로 쏟아지는 물줄기가 한여름에 시원함과 경치를 자랑한다.
원효대....이곳은 원효 스님이 정진중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머물며 좌정하고 수도하던 장소로 원효대로 불리운 곳.
소요산 입구 방향의 소요산 계곡....
나옹선사의 선시 ...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 靑山兮要我以無語 - 청산혜요아이무어 )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 蒼空兮要我以無垢 - 창공혜요아이무구)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 聊無愛而無憎兮 - 료무애이무증혜)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 如水如風而終我 _ 여수여풍이종아 )
▒ 나옹선사(懶翁禪師) (1262-1342): 고려 말기의 고승/ 공민왕의 왕사/ 본명은 원혜(元慧), 휘는 혜근(慧勤), 호는 나옹(懶翁)/ 경북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에서 출생/ 20세 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 출가해 공덕산 묘적암(妙寂庵)의 요연(了然)선사에게서 득도/ 1348년(충목왕 4) 원나라에 가서 연경(燕京)의 고려사찰인 법원사(法源寺)에서 인도 승려 지공(指空)의 가르침을 받음/ 조선 태조 왕사로서 한양천도의 주요 인물인 무학대사가 그의 제자였다. 나옹, 지공, 무학, 세분의 부도와 비석이 회암사터의 뒤쪽에 현존/ 그가 입적한 남한강변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 사리를 봉안한 부도와 비문이 남아 있다.
추담선사 부도탑...
수도 정진 중...출입금지...
자재암:
자재암 경내...
기념품 등 판매소...
소요산 자재암 종무소....自在庵 (자재암) ....
대웅전...
○자재암(自在庵): 654년(신라 무열왕 1년) 원효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의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974년(광종 25년) 각규대사(覺圭大師)가 태조의 명으로 중창하고 소요사라 했다. 그리고 1153년(의종 7년)에는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각령(覺玲)이 대웅전과 요사만을 복구하여 명맥만 이어왔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사찰에 대한 구체적인 연혁이 전하지는 않으나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 경기 양주도호부 소요사(逍遙寺) 조에 태조의 원당으로 하고 밭 1백 50결을 하사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범우고(梵宇攷)에 있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년)의 시에 소요사가 언급되고 있으나 페허가 되었다고 했다. 이로보아 조선 초까지만 해도 자재암은 태조의 원당으로 왕실의 비호를 받아오다가 어느 시기엔가 폐허가 되다시피 하여 겨우 명맥만 유지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조선후기 들어서는 1872년(고종 9년) 원공(元空)과 제암(濟庵) 스님이 퇴락한 자재암을 중창하고 영원사(靈源寺)라 하였다. 원공(元空)과 제암(濟庵) 스님은 같은 꿈을 꾸고 만나 영산전, 만월보전, 독성각, 산신각, 별원(別院) 등 모두 44칸을 중창 하였다고 한다. 1907년에는 화재로 만월보전을 제외하고 모두 소실되었다. 그 후 1909년 성파(性坡)스님과 제암 스님이 다시 중창하고 절 이름을 자재암으로 고쳤다. 근세에 들어 한국전쟁 당시 다시 소실된 것을 1961년 진정(眞精) 스님이 대웅전을, 1968년 성각(性覺) 스님이 요사채를, 1977년에는 삼성각을, 1982년에는 일주문을 각각 지었다. 이어 1984년에는 동두천 시내에 부설 연화유치원(현)이 개원하였고, 1983~1985년에 오래된 건물을 헐고 새로운 중창을 하여 지금의 사격을 갖추었다. - < 자재암 연혁 >
나한전 바위...
자재암 석등...
보원전..
청량폭포...
소요산 선녀탕:
단풍에 물든 계곡
하백운대, 선녀탕 가는 길...
자재암 삼성각...
하백운대, 선녀탕 갈림길...<- 하백운대 0.6km, ↗ 선녀탕 0.65km, ↘ 자재암 50m.
선녀탕 가는 길...계곡길이어서 돌, 바위 길이다...
선녀탕 가는 계곡의아름다운 단풍 .......
갈림길.....<- 선녀탕 0.3km, -> 칼바위 0.95km, ↘ 자재암 0.7km.
선녀탕 근처의 단풍이 매우 화려하다..
계단있는 좌측 계곡에 선녀탕이다. 자칫 모르고 지날 뻔 하였다. 빨간 막대봉의 국가지점번호에 위치표시가 있어 알 수 있었다. 계단길을 계속가면 하백운대다.
선녀탕...국가지점번호 다사 6396 9403 ...<- 0.2km 선녀탕입구, -> 선녀탕갈림길 0.72km.
앗, 선녀탕....선녀는 어디가고?
물이 말라있네....선녀가 목욕할 물도 없군...
하산 길:
나의 반환점....,,,이 계단을 계곡가면 하백운대...
소요산 최고의 단풍계곡...내 얼굴이 붉어지겠다...
의상대(정상) 방향...
계곡이 온통 붉은 갈색이구나!
칼바위와 나한대 사이 능선에서 금송굴 측면의 계곡길을 내려오는 사람들....0.8km 거리...
사람도 산하도, 모든게 단풍이구나!
아, 맑은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미워하는 마음 없이 사랑하는 마음만 가득 채워 가자. 아낌없이 사랑을 내어 줄 수 없을까? 우리는 내 가슴에 조그만이라도 사랑 없음을 슬퍼해야만 한다.
산 비탈 난간도 돌아나고...
이 가을날 우리 마음 속의 슬픔을 벗어버리자. 왜 가슴은 답답한 것인가? 미래에의 불안이 나를 엄습하기도 한다. 나를 에워싼 모든 것들이 나를 슬프게 할 때가 있다. 왜 그럴가? 나를 따라 오는 이 그늘을 벗어버리자. 외로움의 안타까움도 벗어버리자. 나는 하나의 붉은 단풍이 되어 땅에 떨어져야만 하는가? 진정 내 자신을 사랑할 수는 없을까? 오늘도 산길을 걷는다. 무언(無言)으로 산과 대화한다. 강물같은 세월을 한탄하지 말아야지. 흘러가는데로 살아 가야지...
자재암 하산 계단...
앗, 자재암 경네....
" 좋고 나쁜 것은 없다. 다만 '서로 다른 것'이 있을 뿐 차이를 알되 차별하지는 말라. " - 소요산 자재암...
원효대에서 바라보는 암봉...
백팔계단 내려 가기...
속리교 지나 다시 자재암 일주문...
두 기의 돌탑...누구의 소원인가?
소요산야외음악당...
서울시립악창단...
소요산 계곡길 중간의 음식점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소요산 곳곳에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이야기가 스며있다. 신라29대 무열왕녀(요석공주)가 원효대사를 사모하여 공주궁을 짓고 설총을 길렀다는 주초의 흔적이 남아있고, 정상인 의상대 옆에는 원효대사가 요석공주를 두고 이름을 지었다는 공주봉도 있다. 특히 자재암은 신라 중기 원효대사가 개산(開山)하였으며, 고려 광종 25년(974년) 곽규대사가 왕명을 받아 정사를 세웠으나 고려 익종 7년(1153년)에 소실되었고 이후 여러차례 소실과 재건을 되풀이 하다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61년에 재건 하였다. 소요산에는 이밖에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행궁지(行宮址)도 남아있다.
물방울 모형?
다시 소요산 입구 형 조형물..
내려 온 길을 멀리 바라본다...
핸드폰 사진 원목 액자 3분 완성....010-4868-0209...
소요산에서는 단풍은 어디에도 있고, 사람들은 즐겁구나!
멋진 야외무대...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축산물브랜드타운...어떤 거수가 노래하고, 사람들은 흥에 겨워 춤추고...
소요산 자재암 표시석...
지사각(志士閣) .....구한말의 홍덕문 지사에 대한 추모비...
소요산맛거리....그냥 갈 수 없겠구나...
소요산 명품한우축산물식당 (031-866-8820) ...소요산맛거리 첫번째 집이다. 매장이 넓고 깨끗하다. 음식이 정갈하고 맛있다. 고기 굽는 시설이 잘 되어있다. 직접 고기팩을 사서 구워먹을 수도 있다. 정육점 식당이다.
삼겹살/목살 (1인분 200g) 12,000원, 항정살/가브리살/갈매기살 (1인분 200g) 16000원, 한우등심 1++ (1인분 200g) 28,000원, 한우특수부위모듬 (1인분 200g) 33,000원, 비
빔냉면 6,000원, 잔치국수 4,000원, 물냉면 6,000원, 된장찌게 6,000원, 김치찌게 7,000원, 소고기해장국 7,000원, 갈비탕 10,000원, 선지해장국 6,000원...
선지해장국으로 오늘을 마무리한다...이 집 음식맛이 좋다...소요산에서는 하산시에 매번 이 집을 찾아오게 된다.
오늘 소요산 단풍에 완전 취해버렸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보였다. 이 단풍 시기도 잠깐 지날 터이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한다. 모든 게 한 때이다. 사는 것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이 어디 있는 것인가? 평범한 일상의 행복...오늘도 행복한 한때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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