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촌동 백제고분군 - ( 2018.11.22 )
오늘은 석촌호수 인근의 석촌동에 볼 일이 있는 집사람을 데려다 주기 위해 나갔다가 석촌동 백제고분군을 돌아보았다. 나는 집사람을 건물 입구에 내려주고 그대로 차를 몰아 석촌동 백제고분군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장은 만차 상태였다. 그런데 겨우 차 한대가 빠져나가면서 간신히 주차가 가능하였다.
석촌동 제2호분
○ 석촌동 백제고분군: 한성백제 초기의 돌무지 무덤군으로, 1911년 처음으로 조사가 이루어졌고, 잠실 개발과 함께 1974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다. 1975년 사적 제243호 '석촌동 백제초기 적석총'으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서울 석촌동 고분군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석촌'이라는 지명도 바로 돌무지 무덤 때문에 생긴 것이다. 1911년 조사시 석촌동 일대에 돌무지무덤이 90여기의 적석총(돌무지무덤)과 봉토분(흙무덤)이 분포되어 있었으나, 대부분 개발로 인해 없어졌으며, 1974년 조사 당시 3호와 4호 적석총만 남아 있었다. 1985년에는 이 일대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백제고분군공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1호와 2호 적석총이 추가로 발굴되었다.
* 1호분: 북분과 남분이 서로 붙어있는 연접묘로 길이가 22.3m이다. 북분과 남분은 축조방식의 차이가 확인되는데 북분은 고구려 돌무지 무덤(적석총)의 축조방식을 따르지만, 남분은 백제화된 돌무지 무덤의 축조방식을 따르고 있다.
* 2호분: 17m 내외 규모의 고구려 식의 전형적 적석총이 변하여 백제화된 것으로 보인다.
* 3호분: 고구려식 돌무지 무덤으로 가로 50.8m, 세로 48.4m, 높이 4.5m의 규모로 가장 거대하며 조성시기와 규모로 보아 근초고왕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 4호분: 17.2m 내외규모의 백제형 돌무지 무덤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석촌동 고분군....지정번호: 사적 제 243호...
석촌동 고분군은 백제 초기에 밎들어진 돌무지 무덤군이다. 1916년에는 90여기가 잇었던 것으로 보고되었으며, '석촌'이란 마을 이름도 돌무지무덤이 많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무덤은 없어지고 현재는 4기만 남아있다. 이곳의 돌무지무덤은 외형에서는 고구려의 발달된 기단식 돌무지무덤과 같지만 내부 구조에서는 서로 다르다. 3호 돌무지덤은 무덤 안팎을 모두 돌로 쌓은 고구려식이며, 2호와 4호 돌무지무덤은 기단과 계단 외부를 돌로 쌓았지만 내부를 흙으로 채웠다는 점에서 백제식이다. 기단부만 남은 1호 돌무지무덤은 두 기의 무덤으로 남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남쪽 무덤은 고구려식이고 북쪽 무덤은 백제식이다. 3호 돌무지 무덤은 밑변 50m, 높이 4.5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로 4세기 후반경의 왕를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분 산책로...
내원외방형 돌무지 무덤...
A호 적석총 또는 와방내원형 적석총이라고도 한다. 안쪽에 지름11.4m의 흙무지 봉분이 있고, 겉모습은 한 변의 길이가 16m인 직사각형의 계단식 돌무지무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하 무덤에서 볼 수 있는 둘레돌인 호석처럼, 안쪽에 둥근 원모양으로 열을 지은 깬돌이 봉분 자락에 놓여 잇었다. 그 바깥의 자갈돌과 네모 모양으로 열을 지어 가지런히 놓인 테두리 깬돌은 주변 1.2.3.4호분처럼 계단식 돌무지무덤의 흔적으로 보인다. 1987년 발굴 조사에서 돌널무덤 3기와 돌무지 움무덤 2기의 뚜렸한 윤곽이 안쪽 바닥면에서 발견되었으나, 돌무지무덤이 파괴된 뒤에 나중에 만들어진 무덤일 수 있어서 내원외방형 돌무지무덤과의 관련성은 분명하지 않다. 무덤 안과 밖에서 각종 토기 조각과 손칼. 쇠못. 꺾쇠 등의 철기가 많이 출토되었지만, 모두 교란층이어서 관련 유물인지는 명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아직 남아있는 단풍....반갑다....
한성백제박물관 석촌동고분군 발굴조사 현장....
30년만에 다시 발굴되는 석촌동 고분군...
2015년 부터 서울시 한성백제박물관 조사팀이 석촌동 1호분과 2호분 사이에서 발굴 조사를 시작하였읍니다. 석촌동 고분이 30년만에 다시 발굴되는 것이지요.
발굴허가: 문화재청 허가 제2015-1030호.
조사경위: 학술발굴조사.
조사지역: 서울시 송파구 가락로7길21 석촌동고분군.
조사면적: 3,100 m2.
조사기간; 2015년 10월 -완료시 까지.
조사기관; 한성백제박물관 백제학연구소.
문의: 02) 2152-5952~3
석촌호수 곁에 있는 롯데월드타워가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석촌동제2호분...
제2호분은 복원 정비하기 이전에는 길이 약 25m, 너비 약 20m, 높이 3~4m 크기의 봉우리 모양을 이루고 남아있던 것으로서 봉우리 모양의 분구 기저부 주위에는 민가가 들어서고 돌담이 둘러 있었으며 파괴된 분구 위에는 약 10~3cm 두께로 흙이 덮여 있었다.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제2호분의 분구 축성은 제1단의 바깥둘레에 1m 정도 높이로 포갠 돌을 쌓고 그 내부에 진흙을 다져 채웠으며 제2단은 제1단의 적석 가장자리에서 얼마쯤 안쪽으로 들어가서 포갠 돌을 쌓은 다음에 다시 그 내부에 진흙을 다시 채우고 제3단은 제1, 2단과 같은 방법으로 축성하고서 정상부에서는 둥그렇게 흙을 덮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제1단의 동·서·남쪽 면에는 지탱석이 각각 1개씩 남아 있었다. 내부구조의 확인에 있어 동북 1/4구역과 서북 1/4구역의 일부만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전모는 알 수가 없고 다만 동북 1/4구역의 바닥에 자갈과 막돌조각이 섞여 깔려 있었음이 확인되었으며 깔린 돌 사이에는 붉은 갈색 연결 토기편이 흩어져 있었다. 복원 정비된 제2호분의 제1단은 길이 동서 16.4m, 남북 16.5m, 높이 90cm,단의 너비 2m 이며, 제2단은 길이 동서 12.5m, 남북 12.6m, 높이 0.9m,단의 너비 2m 이며, 제3단은 길이 동서 8.5m, 남북 8.6m, 높이 1.7cm, 단의 너비는 정상부에 흙이 덮여 있어 확실하지 않으며 전체 높이는 3.5m이다. 그리고 제1단 바닥 서북쪽에는 장축을 동북~서남 방향으로 둔 목곽 토광묘 1기가 드러났는데 크기는 길이 2.5m, 북쪽너비 1.6m, 중앙너비 0.4m, 남쪽너비 0.65m, 길이 0.1m~0.15m 이다. 이러한 구조 형식의 적석총은 분구·내부 구조 등 고분 전체를 돌로 쌓아 축조한 고구려 식의 전형적 적석총이 변하여 백제화된 것으로 보인다.
석촌동 제4호분....
제4호분은 맨 아랫단 길이가 17m 가량인 사각형의 3단으로 된 계단식 돌무지무덤이다. 겉모습은 완전한 돌무지무덤이지만 내부는 흙으로 채워져 있어서 전통적인 고구려 돌무지무덤과는 다른 백제식 돌무지무덤으로 부르기도 한다. 1974년에 실시한 발굴 조사에서는 맨 위 제 3단에 동서 4.8m, 남북 4.8m의 정사각형 돌방과 너지 2m 가량의 널길을 윤곽만 상징적으로 설치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1984년 정비 복원을 위한 재조사에서 원래 진흙을 다져 쌓은 흙무지무덤이던 것을 겉모습만 돌무지무덤으로 바꾼 것으로 확인하였다. 주검을 묻은 흔적은 흙을 다져 쌓은 지점 3군데서 따로 따로 확인되었다. 무덤안에서 특별한 유물이 확인 되지는 않았으나, 돌무지 속에서 벽돌, 토기, 기와 등의 조각이 발견되었다. 돌을 쌓은 방식으로 보아 돌방무덤을 만들려고 한 것으로, 4~5세기에 만들어진 무덤으로 추정된다.
석촌동 제3호분......
이 무덤은 동서방향의 길이가 50.8m, 남북 방향의 길이가 48.4m로 추정되는 사각형의 돔룸지무덤이다. 산에서 가져온 큰돌을 깨서 3단 이상 쌓았는데, 1980년대 중반까지 여러채의 민가가 무덤 위에 있었기 때문에 무덤의 높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최소 4.5m이상인 것으로 보인다. 무덤은 땅을 잘 고른후 40~50cm의 께로 진흙을 깔아다지고 그 위에 자갈돌과 지댓돌을 차레로 깔았다. 이후 대체로 40cm가 넘는 크기의 깬돌과 작은 판자들을 가로 누여서 층층히 쌓아 올렸다. 무덤이 훼손된 뒤에 밝굴 조사를 했기 때문에 주검이 묻힌 곳은 찾지 못했으나, 무덤 주위에서 중국 동진 시대의 도자기 조각, 금으로 만든 장식 조각인 덮개, 백제 토기 조각등을 수습하였다. 제3호분은 4~5세기경에 백제 왕릉으로 보이며, 학계에서는 근고초왕(346~375)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옥토 교회...
<- 주출입구, -> 고분광장
희화나무 보호수....수령 235년 (1089년 기준) ...
제3호 옴무덤......
이 움무덤은 길이 206cm, 깊이 26cm의 네 모서리가 둥그스레한 직사각형으로, 장축은 동북-서남 방향이다. 제2호 움무덤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바닥 시설은 없었으며, 북서쪽 모서리에 회청색 짧은 단지 1개가 놓여 있었다. 원래 있었던 옴무덤을 방수보호 시설로 덮고, 바로 그 위에 50cm 지점에 모형으로 재현해 놓은 것이다.
석촌동 제1호분...
제1호분은 일찍이 집을 만들기 위하여 헐어뜨린 탓에 훼손되어 정확한 구조를 확인하기 어렵다. 발굴 조사를 통해 남쪽 무던덤 내부에 맨 아래 기단부가 확인되었는데, 무덤 2개가 남북으로 이어진 상분이었다. 북쪽 무덤은 3세기 중엽에, 남쪽 무덤은 3세기 말 ~4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남쪽 무덤과 북쪽 무덤의 기단부는 크기가 서로 비슷하며, 두 무덤 사이의 공간을 진흙으로 매우고 서쪽으로 길게 돌을 덧쌓아 두 무덤을 연결한 구조다. 길이 20~30cm의 크기의 깬 돌로 네 벽을 쌓았으며, 바닥에는 10cm 안팎의 돌조각, 지갑 등을 깐 돌돗널 4개가 있었다. 가장 큰 돌덧널을 한가운데에 동서 방향으로 길게 놓고, 작은 돌덧널 3개를 북쪽벽에 잇대어 동서방향으로 나란히 놓았다. 무덤 내부와 주변에서는 백제 토기와 기와, 금귀거리 등이 출토되었다.
석촌동 제5호분...
제5호분은 지름 17m, 높이 3m의 원형 봉토분이다. 이 고분군에서 형태가 가장 잘 보존된 봉토분이라서, 정비.복원할 때 내부 조사는 하지 않고 봉분을 흙으로 쌓은 방식만 확인하였다. 봉분은 흙을 다시 봉긋하게 쌓았으며 그 위에 강돌과 막돌로 한 겹 덮은 다음에 다시 흙을 얄게 덮은 특이한 형식의 무덤으로, 이를 즙석봉토분이라 부른다. 한강 유역의 즙석봉토분의 대표적인 사례는 제5호분의 동쪽 수십 미터 지점에 위치한 가락동 제1..2호분이다. 1969년에 두 무덤을 발굴 조사한 결과, 하나의 봉분안에 여러개의 나무널과 독널을 각각 묻은 흙무지무덤으로 밝혀졌다. 석촌동 제5호분도 같은 구조로 추정된다. 즙석봉토분의 계통에 대해서는 토착민의 무덤 양식에 즙석이라는 고구려적 요소가 가미된 것으로 보는 견해와 봉분을 만들고 지상에 주검 안치 고안을 둔 마한의 문화 전통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고대 백제 초기의 유적을 돌아보면서, 역사는 시대에 따라 면면히 흐른다는 사실을 새삼 느껴본다. 인간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 태어 났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하늘이 주신 한 인간에 대한 운명이다. 나는 이 시대, 우리나라에 태어나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를 느낀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풍요와 자유, 찬란한 문화를 누리고 살아간 시대는 별로 없을 것이다. 가난과 독재의 압제에서 노에처럼 시달리지도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선조들의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땀과 피의 열매일 것이다. 이런 사실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다.
석촌고분 공영주차장...(02-3431-1761 / 서울 송파구 가락로 7길 21 (석촌동 248) ). ....면적 : 930 ㎡, 주차면수 : 62면,
* 운영시간 : 평일 09:00~18:00, 토요일 09:00~15:00, * 일요일, 공휴일 무료개방 (09:00-18:00) (* 야간은 거주자주차구획으로 전환)
* 주차요금 : 5분 50원 ( 참고: 1시간당 = 600원 ), 월정기요금 : 주간 30,000원, 야간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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