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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생각 노트

나의 무모한 산행 추억 (1) - ( 2021.03.14 )

by the road of Wind. 2021. 3. 14.

   나의 무모한 산행 추억 (1)

 -  ( 2021.03.14 )

 

어제 경기 광주 무갑리 무갑산 등산으로 오늘은 운동을 쉬었다. 두 다리의 근육이 뭉쳐 매우 불편하다. 쓰지 않던 근육을 무리하면 이런 결과를 얻는다. 그래도 평소 1만보 이상 걷기 운동 때문에 종아리 근육은 괜찮은데, 무릎 위 부분 대퇴근이 매우 아프다. 거의 9년만에 등산한 무갑산 길은 가파르고 험한 능선길에 긴장하면서, 산행시간도 부족함을 느껴 심적 부담이 컸었다.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오후 3시가 넘어 산을 오르는 것은 무모함이다. 나는 산행하는 중 나의 무모한 옛 산행 추억을 회상해 보기도 하였다.  ( * 참고로 사진은 그 당시가 아닌 옛 사진으로 대신한다 )

 

 

내 생애 처음의 포천 백운산, 도마치봉 등산 추억:

 

어연간 25여년 전의 일이다. 내 나이 46세쯤 되던 어느 늦은 가을날 이었다. 11월 하순이었다. 그 당시 주말 저녁 신문을 보다 신문에 도마치봉 주변의 억새군락에 관한 기사가 바람에 날리는 아름다운 흑백의 억새 사진, 약도와 함께 조그만 하게 나와 있었다. 그래서 불현듯 내마음에 이 아름다운 억새평원을 보고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었다. 당장 그 다음날 전철을 타고 의정부로 가서, 포천 가는 버스를 환승하여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서 내렸다. 여기에서 다시 버스로 환승하여 카멜고개라는 별칭을 가진 광덕고개로 갔다. 그 때 광덕고개에서 내리니 관광버스에서 지방에서 온 듯한 사오십대 정도의 그룹이 백운산 방향으로 등산을 시작하였다. 나는 무작정 그 뒤를 따라 백운산 산행을 시작하였다. 등산화도 없고 일반 운동화 차림이었으며, 등산가방도 물론 메지 않았다. 전혀 등산 차림이 아니었다. 등산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시절이었다. 그날 내가 가진 것은 달랑 생수 한병 뿐이었다. 내가 서울이란 대도시에 올라와서 내 생애 처음으로 산행에 나선 것이기 때문이었다. 시골에서 자라서 나무하고 소 먹이러 산에 다니던 어린 시절 생각만 하고 산에 대한 무서움은 전혀 없었다. 산을 고향 뒷동산 처럼 만만하게 보았던 것이다. 등산로를 따라 한참을 가니 드디어 백운산 정상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백운산 정상 조망만 조금 감상하고 바로 오른쪽의 계곡방향으로 하산해 버린다. 나는 참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여성분들이 많아 체력을 생각해서 급히 아래로 하산한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혼자 신문의 약도를 보면서 도마치 억새평원을 보러 도마치봉으로 향한다. 이 길은 아무도 등산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정도 가니 봉우리(삼각봉)가 나오고 다시 여기를 지나 도마치봉을 향한다. 그런데, 산이 높아 그런지 바람이 많이 불며 앵앵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등산로 지면도 낙엽에 살얼음이 살짝 얼어 있었다. 고양이 울음같은 바람소리가 매우 기분 나빴다. 나는 산에서 나는 이런 소리는 그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 보았다. 이곳의 기온은 서울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조금 험한 길을 얼마를 갔을까 마침내 도마치봉이 나온다. 도마치봉은 덩상 주변에 숲이 없고 민둥 봉우리어서 주변의 일망 무제한 경치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백운계곡, 흥룡사 방향으로는 아래를 볼 수 없는 아주 가파른 봉우리 였다. 

 

나는 여기서 오려 가져간 신문 기사의 약도를 보면서 다시 그 아름다운 억새평원을 찾아 더 진행한다. 도마치봉을 조금 내려가니 무슨 먹는 샘물이 있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샘물이 솟아나오다니 감탄했다. 나는 이곳을 그 대로 지나쳐 국망봉 방향으로 능선길을 진행하였다. 조금 가니 넓은 평지와 억새군락이 보였다. 매우 아름다웠다.

 

그런데, 억새 감상할 겨를도 없이 시간이 늦어버려 하산로를 찾아야 했다. 오후 햇볕이 엷어지고 있었다. 거의 5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던 것 같다. 신문 약도데로 국망봉 오르는 언덕 봉우리를 보면서 계속 직진하고 있는데, 도대체 약도에 있는 흥룡사 방향의 하산로를 찾을 수 없다. 앗, 큰일이다. 이 일을 어떻게 하나? 그 자리에서 광덕고개 방향을 바라보니 아주 까마득 하다. 이제 내가 살아 남으려면 오던 길을 따라 밤이 되든 어떻게 되든 출발 원점인 광덕고개로 되돌아 가야한다는 일념뿐이었다. 살기 위한 결론이었다. 나는 그 때 너무 놀라고 긴장되었다. 나는 이곳도 처음이어서 아는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옛 산행코스 개요>:

 

시점: (광덕고개) --> (3.2km)-->(백운산)-->(2.1km, 삼각봉 경유)-->(도마치봉)-->(약2.2km)-->(억새평원) <반환점>

--> (4.5km, 도마치봉 경유)--> (백운산)-->(4.1km)--> (백운계곡, 흥룡사):종점.

 

 

되돌아 가려니 언제까지 갈 수 있나? 저녁이 되어 오고 앵앵 바람 소리는 거친데 어두워 지면 과연 내가 광덕고개까지 갈 수 있을까? 너무 긴장되었다. 그런데, 아뿔사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하였다. 이거 큰 일이다. 그렇지만 죽기살기다.  억새평원을 조금 걸어가는데 내쪽으로 오는 대학생들 같은 젊은이 2명이 보인다. 어디로 가냐니 국망봉 방향을 가리킨다. 이 시간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젊은이들도 맨몸 차림이었다. 아마 국망봉 가는 능선 고개를 넘어 이동면 방향으로 내려설 것 같은 생각을 해보았다. 시간에 쫒겨 무슨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다리도 쥐날 것 같이 아프고 힘들어도 극도로 조심하며 도마치봉, 삼각봉을 지나 백운산 정상에 다시 도착하였다.  

 

앗, 이 늦은 초저녁이 되어 오고있는 시간에 백운봉에서 어린이를 데리고 있는 아주 젊은 부부를 만났다. 너무나도 반가웠다. 나는 어디로 하산하려느냐고 물었다. 오전 지방분들이 내려 가던 방향을 가리킨다. 그래서 나는 아득한 광덕고개 대신 처음 가보는 흥룡사 방향의 백운계곡 능선길을 내려 가게 되었다. 이제는 내 뒤에 올 젊은 부부가 있어 마음에 안정을 찾았다. 하산길을 모르며 가파르고 아주 작은 알갱이 같은 돌맹이들이 있어 미끄러운 산길을 먼저 걸어내려 갔다. 능선 곁으로 경사가 무척 심했다. 그리고 양편에는 절벽같이 경사가 급했다. 잘 못하여 미끄러지면 추락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 길도 길고 험했다. 어둡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머리를 지배하였다. 어찌어찌하여 백운계곡에 내려섰다. 아, 밝은 달이 중천에 떠올라 있었다. 나는 드디어 살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눈물 날 것같은 기쁨과 환희가 밀려왔다. 

 

너무 기뻐서 콧노래가 나올 지경이었다. 백운계곡 길을 따라 내려가니 앗, 흥룡사가 나온다. 너무나도 반가웠다. 흥룡사 절 아래에는 계곡 가에 길게 넓은 주차장과 식당가가 있었다. 나는 여기에서 생애 처음으로 그 이름난 이동갈비를 시켜먹었다. 하늘에는 밝은 달이 교교하고 '하꼬방' 같은 식당에서 이동막걸리이동갈비라 내 생애 최고의 음식이었다. 나는 위험에서 죽지 않고 살아난 기분을 느꼈다. 너무 행복하였다. 이동갈비 식사후 이곳에서 포천 버스를 타고 이동으로 나와 여기에서 사창리에서 동서울고속터미널로 가는 직행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죽다가 살아난 산행, 그 때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 땀이 날 지경이다.  

 

 

 

(2015.08.23- 광덕고개 (카라멜고개) 가는 길,  왼쪽 전면의 백운산, 도마치봉 능선) 
(2015.08.23- 광덕고개..... 경기도.강원도 경계지점)

 

(2015.08.23- 광덕산 방향)

 

(2015.08.23- 산정호수, 철원 방향)
(2015.08.23- 광덕산 방향, 백운산 가는 길)
(2011.10.01- 백운계곡, 왼쪽 백운산, 그리고 중간 삼각봉, 오른쪽 도마치봉) 
(2011.10.01- 백운계곡)
(2011.10.01- 백운산과 왼쪽 광덕산... 그 아래 광덕고개)  
(2011.10.01- 광덕고개 방향) 
(2011.10.01- 백운계곡)
(2015.08.23- 백운산 흥룔사) 

백운산 흥룡사:  종선사의 말사. 이동면 도평리 해발 904m의 백운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말엽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절터를 정할때 나무로 만든 세마리의 새를 공중에 날려 보냈는데 그 중 한마리가 백운산에 앉아 그 자리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창건했을 때는 내원사라 하였고, 대웅전 등 법당이 4동에 이르는 대규모 사찰이었다. 1786년 중건하며 백운사라 이름을 고쳤다가 1922년다시 중수하면서 흑룡사로 절 이름을 고쳤다. 그 후 오늘날엔 흥룡사로 바뀌었다. 흥룡사에는 세종의 친필이 보존되어 있다. 져 백운계곡의 길이는 무려 10km로 곳곳에 넓은 공터와 수림지대, 반석지대가 연이어져 있다. 흥룡상서 한 20분쯤 올라가면 계곡이 갈라지는데, 그 중 왼쪽 계곡이 주 계곡이다.

 

 

(2015.08.23- 흥룔사 곁의 주차장, 그리고 이동갈비 식당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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