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길산 수종사
- ( 2021.04.19 )
늦은 오후 시간 운길산(610m) 동쪽 절상봉(522m) 아래 370m 고지에 자리한 수종사 (명승 109호) 를 가보았다. 수종사 가는 길의 푸르른 산 숲과 수종사의 아름다운 전망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수종사까지는 시멘트 차도로 연결되어 있어 산길이 안전하다. 단지 단단한 시멘트 길, 가파른 산길이어서 무릎에 부담이 심하고 걷기에 좋지는 않다. 그렇지만 늦어도 길이 훤히 보이고 차도로만 따라 하산하면 되니 안전하여, 오늘은 수종사를 가보기로 하였다. 《 하남시청앞역 (6번출구) (직진 2분) -> '덕풍시장.더샆센트럴럴뷰 정류소' 50번 버스 -> (경의중앙선)팔당역 -> 운길산역 》 이런 교통 노선으로 운길산역에 내리니 공기도 시원하다. 그리고 플렛홈에서 바라보는 운길산이 아름답다.
운길산역을 나와 전철 철로 아래 통로를 지나 송촌리 마을을 지난다. 주변의 경치가 너무 아름답고 마음에 와닿는다. 전철이 다니는 송촌리 계곡 방향의 경치는 항상 내 마음을 끌어당긴다. 내가 운길산 등산시 늘 가던 계곡길을 오른다. 경사가 완만하게 높아지는 이 계곡도 운치가 있다. 주변의 신초록 잎의 나무 숲이 너무 아름답게 보인다. 이 계곡길의 마지막 주택 앞 (운길산역 1km 지점) 에서 오른쪽 산비탈을 올라 수종사까지 나있는 시멘트 차도로 올라선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가파른 시멘트길이다.
안전하기는 하지만 아주 가파르고 구불구불하게 산을 타고 오른는 시멘트길은 아주 힘들게 느껴진다. 길 옆의 흙길을 밟으면 바로 흙길이 얼마나 탄성이 좋은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오르고 오르면 태산이 발아래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오르고 오르니 앗, 수종사 일주문이다. 오늘은 월요일 평일인데도 수종사 가는 길에는 차량이 많이 오르내린다. 수종사 절 입구 해탈문까지는 한참 가는데, 4월 초파일 석탄일 연등이 많이 걸려있다. 오늘이 음력으로 3.8일이다. 한달 후면 음력 4월 8일 석탄일이다. 불이문에서 수종사 해탈문 까지 가는 길은 돌계단에 가파르다. 그렇지만 옛날 조선시대 유명한 시인.묵객들이 찾았다던 수종사 가는 길은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멀리 양수리 방향의 경치가 내 눈을 사로잡는다.
수종사 이르는 길은 <일주문 -> 불이문-> 해탈문>을 통과하여야만 들어갈 수 있다. 모두 불교적인 의미를 지닌 문들이다. 수종사는 아담한 절로 500고지의 절상봉 아래 터를 잡고 가파른 언덕에 축대를 쌓아지은 절이다. 아주 높은 지대에 있으며, 절을 받치고 있는 축대가 아슬아슬하게 보인다. 혹시 축대가 무너질까 위험하게 보이기도 한다. 만약 일본같이 지진이 심한 나라이면 이런 절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축대 밑의 길을 지날 때는 축대가 위험해 보인다. 비가 많이 와서 물을 머금어 지반이 약해지면 금방 무너지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미리 모든 상부를 시멘트 처리하고, 산 언저리도 물길을 돌려 땅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 수종사는 운길산(610m) 능선, 절상봉 아래 위치한 절로서, 절 입구에서 시계방향으로 삼정헌, 웅진전, 산령각, 선불장, 사리탑, 팔각오층탑, 대웅보전, 경학원, 보광전, 범종각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거의 운길산 정상 부근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조선 후기 절에 대한 책 '범우고'에 의히면 세조가 이 절에 친히 행차하여 땅을 파서 샘을 찾고 혹은 종을 발견했다 해서 '수종사' 라고 했다는 전설이 있다. 1939년 석조 부도를 중수하면서 세종21년 (1439)에 조성된 정의옹주 부도로 추정되기에 조선 초기 창건된 절이라고 추정된다.
수종사 삼정헌 곁의 평지 지붕위에 서면 공간 코너에 '묵언' 이란 팻말이 있고, 아, 발 아래 멀리 펼쳐지는 북한강과 양수리, 팔당호 주변 경치가 너무 아름답다. 이 두물머리 경치는 옛날 조선시대 명망가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수종사에서 초봄의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에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의 감동을 받는다.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 가는 길에서 멀리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를 뒤로하고, 자연의 세미한 아름다운 숨결과 밝은 미풍의 결을 느낀다.
○ 등 산: 걸음수 12,700steps, 거리 8.9 km, 소모열량 579 Kcal, 소요시간 01:59 hrs (3:40-6:17), 속도 3.7 km/h. 고도: 395m.
○ 코 스: (경의중앙선) 운길산역 - 송촌리 - 수종사 - 송촌리 - '물의 정원' - 운길산역.
▶ 팔당역:
▶ 운길산역:
앗, 운길산, 그리고 오른쪽 뾰족한 절상봉, 그 아래 수종사가 있다.
○ 예봉산, 운길산 등산 안내도:
1) 팔당역- 등산로입구- 예봉산: ( 거리 2.88 km/ 소요시간 1:50분 )
2) 팔당역- 등산로입구- 벗나무쉼터- 예봉산: ( 거리 3.56 km/ 소요시간 2:10분 )
3) 천주교묘지- 승원봉- 견우봉-직녀봉-율리고개-율리봉- 벗나무쉼터- 예봉산: ( 거리 5.15 km/ 소요시간 2:40분 )
4) 도곡리마을버스종점- 새재고개- 적갑산- 철문봉- 예봉산: ( 거리 6.15 km/ 소요시간 3:05분 )
5) 도곡리마을버스종점- 새재고개- 운길산: ( 거리 6.50 km/ 소요시간 3:20분 )
6) 운길산역- 율리봉- 벗나무쉼터- 예봉산: ( 거리 5.25 km/ 소요시간 2:50분 )
7) 운길산역- 운길산: ( 거리 3.10 km/ 소요시간 1:40분 )
8) 조안보건지소 - 운길산: ( 거리 2.97 km/ 소요시간 1:30분 )
9) 한음이덕형별서터- 운길산: ( 거리 2.28 km/ 소요시간 1:15분 )
<- 예봉산 정상 5.25KM, ↑ 운길산 정상 3.10KM, ↑ 주필거미박물관 3.06KM
진중1리
진중1리 마을은 뒷편에 운길산을 두고 있으며 조곡천이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자연마을로는 중리, 마진, 조곡등이 있습니다. 진촌리의 '鎭'자와 중리의 '中'자를 따서 진중리라 하였고 마진은 임진왜란 당시 말로 진을 쳤기 때문에 마진산성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조곡은 산속에 새가 많이 울고 그 소리가 아름다우며 계곡이 깊숙하며 물이 ㄲ끗하여 사람살기에 좋다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장어, 오디, 유기농채소로도 유명합니다.
-> 운길산 정상 2.88KM, ↑ 주필거미박물관 2.85KM
↖ 운길산 2.38km.
<- 운길산 정상 1.77KM ( 수종사 0.97KM ), ↖ 팔각정, -> 운길산역 1.80KM.
雲吉山 水鍾寺 (운길산 수종사) 일주문
▶ 운길산 수종사:
1. 대웅보전, 2. 경학원, 4. 웅진전, 5. 산령각, 6. 삼정현, 7. 후원채, 8. 다도실, 9. 범종각, 10. 보광전, 11 팔각오층탑 (보물 제1808호), 12. 부도 (경기도유형문화재 제 157호), 13. 불이문, 14. 미륵불, 15. 일주문, 16 화장실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 일원: (명승 제109호):
조선시대 문인인 정약용이 지은 <유수종사기(遊水鐘寺記)>에 수종사는 신라시대 때 지은지 오래된 사찰이라고 전하고 있니만, 근거 자료가 없어 자세하지 않다. 전하는 설화에 따르면, 고려 태조 왕건이 산 위에서 솟아나는 이상한 구름기운을 보고 가보았더니 우물 속에 동종이 있어서 그곳에 절을 짓고 수종사라고 이름 붙였다고도 하며, 1458년(세조4년)에 금강산을 다녀오던 길에 이두수(二頭水: 兩水里_양수리) 에서 유숙하던 세조가 운길산에서 종소리를 듣고 깨어나 주변을 찾아보니 18나한상이 모셔져 있는 바위굴에서 물소리가 종소리처럼 울려 퍼지고 있어 수종사라 하고 중창하였다고도 한다" "수종사에는 1439(세종21)에 조성한 태종의 딸 정혜옹주(? ~1424)의 부도와 1494년(성종24)에 태종의 후궁인 명빈 김씨(?~1476) 성종의 후궁들이 발원하여 조성한 팔각오층석탑이 있다. 팔각오층석탑에서는 1682년(인조6)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1584~1632)가 발원하여 조성한 불보살상도 발견되었다" " 1890년(고종27)에는 주지로 있던 풍계 혜일(枫溪慧一)이 고종에게 8천냥을 하사받아 수종사를 중창하였다. 이듬해에 다시 4천냥과 비단을 하사받아 불상 4존(尊)을 개금하고 탱화 3축(軸)을 새로 봉안하였다."
"여기는 슬로시티 조안" - 남양주시
" 수도권 최초의 슬로시티, 남양주시 조안..."
빠르게 빠르게만 살아온 현대인들의 삶 속에 작은 쉼표가 되어주는 수도권 최초 슬로시티 조안, 이곳에서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서로 만나 유유히 흐르는 자연의 수려함과 다산 정약용의 얼을 그대로 지닌 전통의 가치를 함께할 수 있습니다.
'새가 편안히 깃든다'하여 이름 붙인 조안은 구불구불 이어진 마을 안길로 차가 마주하요도 기다려 주는 느림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자연의 시간을 존중하고 배려하여 얻은 자연의 먹을 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는 곳이기도 합니다.
'슬로시티 조안'은 그 이름에 걸맍게 천천히 돌아보아야 제멋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강바람의 향기를 맡으며 힘차게 페달을 밟는 자전거로 자연과 역사가 주는 고마움을 공유하며 걷는 다산길 걷기까지 느림의 미학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느리게, 느리게...자연의 속도에 맞추다 보면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깃들 것입니다.
<- 운길산 1KM.
不二門_ 불이문
↑ 정상 0.8KM, <- 운길산역 2.8KM. -> 수종사
解脫門 _해탈문
선불장 & 대웅전
응진전
삼정헌
"茶禪 一味 ( 다선 일미 )"
선불장
대웅전
보광전
默言 ( 묵언 )
앗, 북한강, 양수리, 팔당호 방향의 아름다운 경치!
수종사 부도 (정의옹주 부도 추정), 5층석탑
대웅보전
경학원
秋來雲物易悽悽_ 추래운물이처처
宿雨連朝水拍堤_ 숙우련조수박제
下界煙塵無地避_ 하계연진무지피
上方樓閣與天齊_ 상방루각여천제
白雲歷歷誰堪贈- 백운력력수감증
黃葉飛飛路欲迷_ 황엽비비로욕미
我擬往參東院話_ 아의왕참동원화
莫敎明月怪禽啼_ 막교명월괴금제
가을이라 오만 풍경이 처량해지기 쉬운데
밤새도록 비까지 와서 물이 못 둑을 쳐 대네.
속세의 연기 먼지는 피할 길이 없건만
상방의 누각은 하늘과 가지런하여라.
백운은 역력하건만 뉘에게 줄 수 있으랴
단풍잎은 흩날려 가는 길은 헷갈리겠지.
내가 가서 동원의 담화에 참여하려 하노니
밝은 달밤에 괴이한 새가 울지 못하게 하소. - < 서거정, ‘수종사’ >
○ 서거정(徐居正,1420~1488): 수종사에 올라 “동방 사찰 가운데 제일의 경치”라 격찬 하였다. 수종사를 중창한 세조가 매우 아끼던 신하였던 당대 최고의 문장가요 시인이다. 그는 45년간의 공직생활 가운데 대제학을 23년간 지냈다. < 동국통감〉〈동국여지승람〉〈동문선〉〈경국대전〉등 조선을 대표하는 저술들의 편찬을 주도했고,〈동인시화〉〈역대연표〉 등의 개인 저술과 시문집〈사가집〉을 남겼다. 그가 쓴 시문(詩文)은 무려 1만여 편에 이른다는데 전하는 것이 6000여 편이다.
맑은 물은 하늘이 준 물처럼 흘러내리고
환한 꽃 저녁 비에 윤기가 난다
아련히 먼 곳까지 둘러보다가
눈길 돌려 향그런 초목 대하네
비탈 골짝 저물녘 서로 합하고
구름 노을 저 멀리 살짝 나누나
즐거움에 오히려 나 홀로 서서
한 밤 더 자며 아니 돌아가고파
淨水流天液 (정수유천야) 濃花潤夕霏 (농화윤석비) 遊神連漭杳(유신연망요) 回矚注芳菲 (회촉주방비)
厓谷昏相合 (애곡혼상합) 雲霞遠稍飛 (운하원초비) 怡怡猶獨立(이이유독립) 信宿欲無歸 (신숙욕무귀)
- < 다산 정약용, '수종사에서 잠을 자며(宿水鐘寺_유수종사)' >
○ 조선후기 문인 가운데 수종사와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다산 정약용(1762~1836)이다. 수종사에서 내려다 보이는 조안면 능내리에는 정약용의 묘와 생가 여유당이 있다. 이곳에서 수종사까지는 약 7.6km거리이다. 다산은 14세에 수종사를 유람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의 여러 이름난 사찰을 방문하였다. 동림사・봉은사・천정암・천진암 등에서 다산은 청정한 삶을 견지하였고, 세속의 명리와 부귀공명을 멀리 하였으며, 고단한 심신을 위로 받았다. 정약용은 유난히 수종사를 좋아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아스라이 보이는 저 수종사에는 / 뜬 아지랑이에 기와 고랑이 분간되네 / 호남에는 사백 군데의 사찰이 있지만 / 끝내 이 높은 누각보다는 못하리"라는 시에는 수종사에 대한 그의 애정이 담겨있다.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수종사와 전라도 사찰을 비교했는데, 호남의 4백 곳 사찰이 수종사의 높은 누각만 못하다고 평하고 있는 것이다.
범종각
보호수 은행나무...수령 550년...
은행나무 2본이다. 높이 35m, 25m, 둘레 2,m, 1.2m.
'세조를 감동시킨 종소리 (은행나무)'
부스럼을 앓던 세조가 오대산 상원사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깨끗이 낫고 한강을 따라 환궁하는 길이었다. 양수리까지 오니 밤이 이슥해 쉬어 가는데 운길산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신하가 알아보니 천년고찰 터 암굴 속에 십팔나한상이 앉아있고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내는 것이라 했다. 세조는 이곳에 절을 복원해 수종사라 부르고 이 은행나무(500년)을 하사했다고 한다.
수종사 사적기...
고려 왕건이 상서로움을 좇아 이곳에 이르러 구리종을 얻음으로써 부처님의 혜광을 통해 고려를 건국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1439 (세종21년)에 이르러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의 옹주의 부도를 세우고 금제 9층 수정사리함 (사리14과)을 청자항아리에 담아 부도 안에 모셨다. 1458 (세조4년) 세조가 두물머리에서 머물다 새벽에 들려오는 종소리를 따라 올라와 보니 그 종소리는 다름아닌 바위굴 속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세조는 굴속에서 18나한을 발견하고 5층 돌계단을 쌓았으며 팔도방백에 중창을 명하였다. 도량은 이러한 연유에 의해 수종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때 은행나무 두 구르를 심고 다음 해인 1459년에 수종사 담을 건립하였다. 1493 (성종24년) 후궁 명빈 이씨가 목제불감과 설법도가 그려진 금동불감에 금동불보살상 등 14좌를 봉안하고 후궁들의 발원문도 함께 넣었다 고 탑안에 모셨다. 1628(인조6년) 정의대왕대비가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을 시주하였으나 6.25전쟁 때 불에 탔다. 1974년 혜광화상이 대웅보전을 1981년 규원당 대웅화상이 익사전과 종각을 지었다. 1999년부터 금해당동산은 응진전 선불장 심정헌 미륵불 일주문 등을 세워완성하며 서거정이 천하제일명당이라 찬탄했던 절의 풍광을 다시 복원하였다. 수종사는 조선후기 초의 다산 추사를 비롯한 다선묵객들이 당색과 신분을 따지지 않고 함게 모여 담론을 했던 사회변혁의 꿈이 깃든 곳이다. 후인을 위해 수종사와 함게 했던 선인의 발자취를 따라 사적기를 적는다. 불기 2551년 동산 짓고 선종석 쓰다.
'운길산 수종사와 한음 이덕형 선생'... <- 수종사, -> 하산길(송촌리) 1.8km.
한음 이덕형 (1561-1613) 선생은 산수가 빼어난 운길산을 사랑하시어 바쁜 중앙정치의 와중에도 여가를 내어 사제촌에서 수종사로 이어지는 돌길을 따라 자주 걸으셨다. 수종사의 주지가 되어 사제촌(莎堤村)의 한음선생을 인사차 찾아온 덕인(德人) 스님에게 준 시에서 선생과 스님과 사제촌을 겨울 풍광이 그대로 드러난다.
운길산 스님이 사립문을 두드리네 (僧從西庵 拍柴關 _승종서암 박자관)
앞 개울 얼어 붙고 온 산은 백설인데 (凍合前溪 雪滿山_동합전계 설만산)
만첩청산에 쌍련대 매었네 (萬疊靑螺 雙練帶_ 만첩청루 쌍동대)
늘그막의 한가로움 누려봄 즉 하련만 (不妨分占 蒼年閑_부방분점 창년한)
선생은 7년여의 임진왜란을 수습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나 극심한 정쟁에서 오는 국정의 혼미에 몹시 상심하셨다. 봄날이 가는 어느 초여름 선생은 이곳 수종사를 찾아 주지 스님에게 우국충정에서 오는 자신의 괴로운 심경을 드러내는 시를 지어주셨다.
산들바람 일고 옅은 구름비 개었건만 (風輕雲淡 雨晴時_풍경설담 우청시)
사립문 향하는 걸음걸이 다시금 더디네 (起向柴門 步更遲_기향자문 보경지)
구십일의 봄날을 시름 속에 보내며 (九十日春 愁裏過_구십일춘 추이과 )
운길산 꽃구경은 시기를 또 놓쳤구나 (又孤西庵 賞花期_우고서암 상화기)
오른편 사제촌(송촌리) 한음마을에는 500년 조선역사상 최연소로 31세에 대제학에 오르고 42세에 영의정에 오르신 선생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후 삶을 마감하신 별서(別墅) 터 및 하마석(下馬石) 등의 유적이 그대로 있어 아련한 선생의 발자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2010년 6월 광주이씨한음상공파종회
하산길:
물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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