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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생각 노트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 장로 - ( 2022.02.15 )

by the road of Wind. 2022. 2. 15.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 장로  

-  ( 2022.02.15 )

 

엊그제 동네 주변을 산책하다 '일가도서관' ( 031-5128-1046/ 경기 하남시 풍산동 168-3)을 자나가게 되었다. 일가 (一家)는 가나안농군학교 창설자 김용기 (金容基, 1909~1988) 장로의 호(號)이다. 옛날 하남 풍산동의 낮은 야산 황산 아래 있었던 가나안농군학교는 미사 신도시 건설로 다른 곳으로 이전해 가게 되었다. 대신 이곳에 일가도서관과 미사역사일가공원 등이 건립되어 있다. 김용기 장로의 개척정신은 가나안농군학교를 통하여 세계가 주목한 우리나라의 새마을 운동으로 발전하여 나갔으며,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근본 정신이 되었다. 너무 감명깊은 이야기이다. 낮은 곳에서 이름없이 빛도 없이 헌신적으로 활약한 김용기 장로 같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일어나야 힌다고 생각한다.     

 

 

◎ 일가 김용기 장로 일대기:

1909년- 9월 5일 경기 양주군 초부면 봉안리 (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5형제중 4째로 출생.
1915년- 마을 서당에서 명심보감, 통감, 소학 등을 배움. 
1919년- 아버지가 마을의 3.1운동을 주도하여 수백명 행렬을 이끄시는 모습을 목격함. 이 무렵 외지에서 형이 돌아오자 김용기는 본가에서 분가해 나감.
1922년- 여운형이 경기 양평에 세운 기독교 계통의 광동학교에 입학.
1926년- 광동학교 졸업 및 김봉희 여사와 결혼함.
1931년-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현 조안면) 능내리에 봉안교회 설립, 버려진 땅 4000여평 부지를 구입하여 봉안 이상촌(理想村)을 건설하고, 일제 강점기 말에 출옥한 여운형을 보호해 주기도 함.
1934년- "너는 꼭 농사꾼이 돼라." 는 아버지의 유언을 받음. 농사 짓기 2년만에  ‘동네에서 제일 농사를 잘 짓는 일꾼’이라는 칭호를 듣게 됨. 
1946년- 서울 구기동에 일본인이 운영하던 과수원을 인수하여 농장 설립.
1952년- 6.25전쟁으로 황폐화된 용인군 원삼리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장 건설하고, 복음 농도원과 복음농민고등학원 설립. 또한 교회 신설 및 인재 양성. 그가 평생 그리던 이상촌 건설 계기를 마련함.
1955년-  8.15 광복후,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풍산리 (현 하남시 풍산동) 황산의 넓은 황토벌을 개간하여 가나안 농장 설립.
1962년- " 한 손에는 성서를, 한손에는 괭이를" 이란 신념에 따라 평생의 숙원인 기독교 합숙교육기관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하고 농촌 일꾼 양성.  농림부 장관상·향토문화 공로상을 수상.
1966년- 막사사이상 (사회공익상 부문) 수상. 새마을운동에 영향을 줌.
1978년- 필리핀 세이버대학교 명예인문학박사 학위 취득함.
1988년- 8월 1일 경기도 광주군 동부읍 풍산리 제1가나안농군하교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함. 김용기 장로는 평생을 양복, 구두를 신어본 일이 없으며, 평생을 자신이 재단한 간단한 국민복, 고무신을 신고 농사꾼으로 생을 마감함.

 

 

 

가나안농군학교:

1. 설립목표: 농민교육과 사회지도자 양성을 목표로한 교육기관.
2. 개설: 1962년.
3. 연원:
- 1933년: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봉안이상촌 개척.
- 1946년: 서울 구기동, 삼각산농장 개척.
- 1952년: 경기도 용인, 엔덴향 설립.
- 1954년: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풍산리 (현 하남시 풍산동) 가나안농장  (1만여평) 설립.
- 1962년:  하남 풍산동, 가나안농군학교 설립, 향토문화상 수상.
- 1973년: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용암리 농장 및 제2가나안농군학교 설립. 인촌문화상, 새마을 훈장 협동장 수상.
- 1988년: 설립자 김용지 장로 별세. 한국최초 농민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 

- 1997년: 경남 밀양시 무안면 회봉리, 가나안농군학교 영남 설립 ( 설립자 이현희 목사 )

- 2003년: 가나안농군학교 영남 개교.

- 2011년: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옥현리 가나안농군학교 양평 설립. 하남 풍산동 가나안농군학교 이전함. (현재는 일가 김용기선생 기념관으로 사용 ).


4. 현황:
- 가나안농군학교 원주: 033-762-5106/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용암리 (누적 교육생 43만명)

- 가나안농군학교 영남: 055-351-2962/ 경남 밀양시 무안면 화봉리 (원주가나안농군학교와 별도) (누적교육생 5만명)

 

 

 

팔당댐 곁의 봉안터널을 지나자 마자 터널 끝에서 마주하는 봉안교회, 김용기 장로 안내판.

 

봉안이상촌 전신 봉안교회:

"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마라."


" 노동의 가치를 크게 여겼던 가나안농군학교의 창립자인 일가 김용기 장로가 남긴 명언입니다. 김용기 장로의 고향인 조안면 봉안마을에는 1914년 설립된 봉안교회가 있습니다. 김용기 장로는 모두가 바라는 이상향, 낙원인 봉안이상촌건설을 꿈꾸었고 최종에는 조국의 국권 회복을 목표로 했습니다. 1931년 김용기 장로가 드디어 봉안교회 일원들과 뜻을 모아 이룩한 것이 봉안이상촌이었습니다. 봉안이상촌은 당시 우리나라를 선도하는 일종의 연수원이자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였으며, 당시에는 혁신적인 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일가 김용기 장로는 쌀 공출을 막기 위해 벼 대신 밀, 옥수수, 고구마를 재배했고 그 당시 최고의 고구마 재배기술을 고안했습니다. 또한 일제에 항거하는 공출반대운동 및 독립운동과 독립투사를 보호하고 연락하는 등 나라의 독립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도 했습니다. 봉안이상촌의 성공은 훗날 제2이상촌을 거쳐 가나안농군학교로 발전하면서 우리나라의 농민소득을 올리고 농민을 교육하고 깨우치게 하는 나라의 커다란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가나안농군학교는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의 롤모델로 삼았다고 하니, 새마을운동의 요람인 셈입니다. " 

 

 

김용기 장로같은 위대한 선각자가 있으므로, 가난에 찌든 우리나라에 새마을운동이 태동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우리나라가 이렇게 기적처럼 발전한 정신적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감사한 마음이 절로 우러나온다. 언젠가 나는 우리나라에 IMF 경제위기가 닥쳐와 눈물을 머금코 직장을 나와야 하는 시점에 하남시 황산 자락에 있었던 가나안농군학교에서 3일 정도 사회 적응을 위한 대비로 교육을 받았던 일이 있었는데, 그 당시 가나안농군학교의 근검절약, 땀 흘려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노동정신의 생활모습, 장애인이면서도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정상인과 같이 사회생활을 하시는 분들의 간증과 함께 참으로 많은 감명을 받고 용기를 얻은 기억이 떠오른다. 팔다리 멀쩡한 사람이 살아가려면 무슨 일을 못 하갰는가? 가족을 위한 일이면 자기 한 몸 분골쇄신(粉骨碎身) 무엇을 못 하겠는가? 나는 그 때 나의 보잘 것 없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이 먹어 더 이상 이 사회에서 일할 수 없다고 할 때까지 무슨 일이든 닥치는대로 하였다. 나는 말년의 이 고난의 세월이 지금도 보람있게 느껴진다.      

 

 

 

하남시 풍산동 일가기념관

 

 

 

시립일가어린이집

 

 

가나안농군하교 설립자

일가 김용기

( 1909 ~ 1988 )

 

위대한 선각자 김용기 장로께서 '개척의 종'을 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진정한 애국자란 이런 사람일 것이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김용기 장로의 숭고한 정신을 잘 모를 것이다. 이런 분을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하고 그 정신을 본 받을 수 있도록 후대에 길이 길이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대민족이 세대를 거쳐 모세와 다윗을 민족의 영웅으로  높이고 추앙하는 것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하남시 일가도서관

 

 

 

" 하남을 기록하고, 오늘을 기억합니다. "

하남시일가도서관

미사역사일가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