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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여행(旅行)

② 대청호 청남대, 속리산 법주사 - ( 2022.09.27 )

by the road of Wind. 2022. 9. 28.

  대청호 청남대, 속리산 법주사

- ( 2022.09.27 )

 

-  《  속리산 법주사  》:

 

 

아, 속리산 법주사를 가보고 싶어 오늘 강행군을 하였습니다. 나는 아주 오랜 옛날 젊은 시절에 법주사에 가본 적이 있는데, 속리산 입구 관광단지에서 술 한잔에 취해 속리산 문장대도 올라보지 못하고 하룻밤 자고 나서 그냥 되돌아간 기억 때문에 늘 법주사를 다시 찾아보고픈 마음이 컸습니다. 그런데, 40 몇년이 지난 오늘에사 속리산 법주사를 가보게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였습니다. 나의 집사람은 처녀시절에 운동화 신고 그 당시 등산로가 정비되지 않던 시절 험한 산길을 아무 것도 모르고 친구들과 함게 문장대까지 올라보았다는 말을 듣고 감탄했습니다. 나는 지금 칠순이 넘은 나이에 무리하게 속리산 문장대를 오를 수 없겠다는 생각에 다다르니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일년에 겨우 삼일간의 여름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하던 시절, 일만하고 지내온 나의 인생이 어쩌면 허무한 것이었습니다.  

 

법주사하면 먼저 정이품송(正二品松)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이품송을 똑똑히 보리라 생각했습니다. 법주사 관광단지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정이품송공원에 차를 주차시키고, 정이품송을 구경하여 보았습니다. 정이품송은 안타깝게도 한쪽 가지가 일부 부러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나무의 생김새가 범상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절묘하다할까, 예술품 같은 수준의 자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많은 세월동안 태풍 강풍에도 견디며 살아왔을 소나무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정이품송 관람을 마친 후 법주사 주차장으로 향합니다. 관광단지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깨끗하고 주변이 산뜻한 길을 따라 법주사를 향합니다. 조각공원도 지나고, 속리교(俗離橋)를 지나자 곧장 매표소가 보입니다. 속리교, 속리산...속세와 멀리 떨어지다 는 뜻에서 한없는 평안을 얻는 느낌이 듭니다. 번잡하고, 오욕에 물든 풍진세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현대인을 감동케 하는 말입니다. 

 

법주사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하고, 일주문을 향하여 걸어갑니다.  앗, 일주문이 나옵니다. "호서제일가람 (湖西第一伽藍)"이란 글씨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속리산 법주사 현판도 보입니다. 여기에서 부터 물소리 새소리가 들리는 숲이 우거진 '세조의 길'이라는 자연관찰로가 시작됩니다. 자연관찰로 왼쪽으로는 물 맑은 계류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기대가 큰 마음을 가지고 법주사를 향해 걷습니다. 드디어 법주사 금강문 앞에 속리2교가 나타납니다. 아, 주차장에서 약 20분 정도 거리의 법주사 앞에 당도한 것입니다. 주변을 살피니 왼쪽에 마애여래의 좌상이 있는 커다란 바위 암벽이 보입니다.  일단 그 곳으로 가봅니다. 바위 밑에 촛불 등이 켜져있고 마애불이 새겨져 있습니다. 

 

마애여래좌상 오른쪽에는 능인전이 있고, 세존사리탑이 있는데, 들어가보지 않고 지나친 것이 후회됩니다. 세존사리탑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마애불 암벽을 지나 금강문 방향의 경내로 걷습니다. 금강문 앞에는 사천왕문이 있습니다. 큰 칼 옆에 찬 눈이 부리부리한 무섭게 생긴 사천왕들이 좌우에 서있습니다. 그리고, 신도들의 소원성취를 비는 글씨가 주렁주렁 걸려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이런 조형물이 무섭고 절에 가기 싫었습니다. 

 

사천왕문 앞에는 어도같은 길이 놓여있고, 전면에 팔상전(捌相殿)이 있습니다. 팔상전은 법주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목조 건물 같았습니다.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이먀, 가장 높은 목조탑이라고 합니다. 지금 보는 것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수리한 것입니다. 팔상전 벽면에는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란 이름이 붙었다 합니다. 

 

팔상전 왼쪽 산 아래 경내에는 아주 높은 커다란 금동미륵대불이 보입니다. 노란 금빛으로 눈에 확 뜨입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오른쪽 곁에는 범종각이 있습니다. 사찰의 모든 전각이나 시설물이 보물 같이 보입니다. 금동미륵대불 위쪽에는 

 

팔상전을 지나니 쌍사자석등이 나오며, 아주 커다란 대웅보전( 大䧺寶殿)이 보입니다. 법주사 사찰 건물의 하일라이트입니다. 대웅보전 왼쪽에는 진영각명부전이 있었습니다. 석조희견보살입상, 원통보전이 있습니다. 

 

법주사 가람 경내를 이리저리 발길 가는데로 주마간산격으로 둘러보았습니다. 대운보전 오른쪽으로 가자 멀리 속리산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리고 오른쪽에 선희궁원당궁현당이 있었습니다. 선희궁원당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니 아주 넓은 부분으로 요사채들이 즐비하게 들어차 있었습니다. 이곳은 진입금지 구역으로 법주사 스님등 관계자들이 게시는 곳이라고 하는데, 이 요사채 규모와 수량을 볼 때 법주사의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었습니다. 

 

사찰에 관한 문외한인 내가 그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금강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다향에서 커피 한잔 씩을 테이크 아웃하여 테이블에서 잠시 앉아 쉬다가  집사람과 아들은 주차장으로 향하고, 나는 법주사 오른쪽 계곡 길을 따라 저수지 방향으로 다녀오려 빠르게 서두릅니다. 저수지 가는 '세조 길'에는 템플스테이 하는 사찰 건물도 나오고, 10여분 오르니 저수지가 나옵니다. 저수지 제방 위에 올라서니 아, 경치가 너무 좋습니다. 만약 내가 이곳에 와보지 않았다면 오늘의 법주사 구경에서 진미 하나가 빠진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진 몇장을 찍고, 나를 기다릴 집사람을 생각해서 빠르게 하산 하였습니다.

 

오늘 법주사 관람 너무 좋았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인 법주사는 모두가 국보이고 보물인 사찰같았습니다. 다음번엔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법주사 행 고속버스를 타고 와서 속리산 언저리를 걸어보고 싶습니다.   

 

 

속리산 법주사:

 

법주사는 의신 조사가 창건을 하고 진표 율사가 7년 동안 머물면서 중건하였다고 전해져 오나 진표 율사는 금산사에서 나와 속리산에 들러 길상초가 난 곳을 표해 두고 바로 금강산에 가서 발연수사(鉢淵藪寺)를 창건하고 7년 동안 머물렀다고 합니다. 진표 율사가 그 후 금산사와 부안 부사의방에 가서 머물 때 속리산에 살던 영심(永深), 융종(融宗), 불타(佛陀) 등이 와서 진표 율사에게서 법을 전수 받았습니다. 현재의 법주사는 영심 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려 인조 때까지도 절 이름을 속리사라고 불렀다는 점과 '동문선'에 속리사라는 제목 시가 실려 있는 점으로 미루어 아마도 절 이름이 길상사에서 속리사로, 그리고 다시 법주사로 바뀐 것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지금까지 정확하게 규명되지는 않았습니다.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법주사라 이름 붙여진 이후 법주사는 성덕왕 19년(720)에 중건되었으며 고려에 와서는 태조 1년(918)에 왕사(王師)인 증통 국사(證通國師)가 중건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충청도 지방의 승병 본거지였던 법주사와 산내 암자가 모두 소실되는 상황을 맞게 되었으나 인조 4년(1626)에 벽암 각성(碧岩覺性)선사가 나와 중창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벽암 선사의 일대 중창에도 불구하고 복구된 건물의 수는 20여 동에 불과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조선시대 들어서도 절의 법등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흔히 조선시대가 숭유억불의 시대라 하지만 유교는 치국(治國)의 원리와 개인적 수양의 방편일 따름이고, 사람들의 불교신앙은 사실 상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왕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선 초 세조 때(1455∼1468)는 신미(信眉) 대사가 머물며 절을 크게 중창하였습니다. 세조의 스승으로서 큰 존경을 받았던 신미 스님은 이보다 앞선 1449년(세종 31) 12월에 속리산 내의 복천사(福泉寺)를 중창하기도 하였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1967년 금오 태전(金烏太田, 1896∼1968) 스님이 기울고 퇴락한 전각을 중수하였습니다. 1974년에는 정부의 지원으로 가람의 전각 대부분을 보수하고 복원하였습니다. 2005년 현재 4년간의 해체, 복원 불사를 통해 대웅보전이 예전의 위용을 되찾으며 속리산을 찾는 이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속리산 법주사 일원 종합안내

 

1 대웅보전, 2 석조희견보살좌상, 3 원통보전, 4 팔상전, 5 쌍사자석등, 6 사천왕 석등, 7 마애여래의좌상, 8 세존사리탑, 9 능인전, 10 석조, 11 석련지, 12 당간지주, 13 사천왕문, 14 철솥, 15 벽암대사비, 16 금강문, 17 궁현당, 18 선희궁 원당, 19 사실기비.

- 주요문화재 :

* 세계유산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 국보: 보은 법주사 팔상전,  보은 법주사 쌍사자등, 보은 법주사 석련지.
* 보물: 보은 법주사 사천왕 석등,  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 보은 법주사 신번 천문도 병풍, 보은 법주사 대웅보전, 보은 법주사 원통보전, 보은 법주사 괘불행, 보은 법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보은 법주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보은 법주사 철솥, 보은 법주사 복천암 수암화상탑, 보은 법주사 석조희견보살입상,보은 법주사 복천암 학조화상탑,보은 법주사 동종.  

 

 

◆ 정이품송:

 

정이품송공원

 

 

보은 속리 정이품송

 

 

보은 속리 정이품송:   천연기념물 제102호.


보은 속리 정이품송은 높이 16.5m,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는 5.3m이며, 수령은 약 600년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모양이 아름답고 큰 소나무이다. 이 소나무에는 얽힌 이야기가 있다. 조선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 임금이 타고 있던 가마(연)가 소나무 아랫 부분 가지에  거리게 되어 임금이 "나뭇가지에 연이 걸린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지 이 소나무는 스스로 가지를 위로 들어 올려 임금의 가마가 무사히 지나가도록 했다고 한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세조가 그 자리에서 지금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정2품의 벼슬을 이 소나무에 내렸다. 이때부터 이 소나무는 <연이 걸린 소나무> 또는 <정이품송>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법주사 정이품송 동영상

 

 

정이품송을 지켜라

 

* 솔잎흑파리 방제용 방충만 설치 장면.

* 정이품송 방해충망제모습

* 2004년 3월 중부지방 폭설시 소방용수를 살수하며, 제설작업을 하는 장면 ( 당시 좌측상부의 2개 가지가 부러지는 피해를 입었슴 )

 

 

 

너무 아름답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정이품송의 변천사:

 

- 1935년의 정이품송: 조선명승기록화사업시 촬영한 사진으로 도로가 나무 아래로 개설되어 있다. 

- 1980년대의 정이품송: 보호구역 등은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수세가 약해졌으나 정이품송 특유의 원뿔형 모습을 갖추고 있다.

- 최근의 정이품송: 좌측 앞쪽 가지는1993년에 강풍, 좌측 상부 가지는 2004년 폭설로 피해를 입었다. 

 

 

 

정이품송 현황:

명칭: 보은 속리 정이품송.
지정구분: 천연기념물 제 103호 (1962.12.3 지정)
소재지: 보은군 속리산면 상판리 17-3번지.
-  소유자: 보은군
관리단체: 보은군.
주요현황:
   .. 품종: 소나무 (소나무과 소나무속-Prius densiflora)
   .. 유형: 중부남부고지형 (가지가 곧고 수관이 넓음)
  ..  수령: 600-800년
   .. 수괴 16.5m
   .. 흉고둘레: 5.3m.
   .. 수관목: 19.4 X 11m (장단측
                   13.7X 17.2m ( 동-서, 남-북 )

***  2006년 11월 30 스케닝 사진.

 

 

 

" 속리산국립공원 "

 

 

법주사 정이품송 동영상

 

 

 

천연기념물 제103호  정이품송.

 

 

● 속리산 법주사:

 

속리산 법주사 주차장

 

 

법주사 가는 길

 

 

속리산 조각공원

 

 

레이크힐스 관광호텔 속리산

 

 

속리교,  달천

 

 

탐방지원센터

 

 

속리산국립공원안내도

 

 

법주사 매표소

 

유네스코세계유산 한국의 산지승원, 
문화재보호구역 입장료:

개인성인 5,000 (대학생), 청소년 2,500 (중.고등학생), 어린이 1,000 (초등학생).
단체: 성인 4,000, 청소년 2,000, 어린이 800  ( 동일단체 30명 이상)
- 무료: 경로증, 장애인, 국가유공자, 조계종신도증 지참자.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

 

 

세조길 자연관찰로

 

 

속리산국립공원 자연관찰로

 

법주사 매표소에서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숲길로 속리산국립공원에 자생하는 동.식물관찰과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알 수 있는 길이다. 자연관찰로에서 숲 이야기, 속리산의 야생동물 및 땅 속에 사는 생물들. 참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이야기, 국립공원 깃대종 등의 주제로 이루어지 해설판이 있다.  속리산의 자연을 감상하고 생태를 관찰하며 자연학습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단풍나무

 

 

 맑은 계류

 

 

달천

 

 

법주사 일주문,  " 호서제일가람 "

 

 

속리산 법주사

 

 

 

알림

이곳은 사찰 수행도량으로

- 하안거: 음 4월 15일 ~ 7월 15일

- 동안거: 음 10월 15일 ~ 1월 15일

탐방객 께서는 음주 고성방가를 삼가하여 주십시오

속리산 법주사 주지

 

 

상사화

 

문장대  5.9km ->

 

 

보은 속리산 사실기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67호)


보은 속리산 사실기비는 조선 현종 7년(1666)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우암(尤蓭)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동춘당(同春當) 송준길(宋浚吉)이 쓴 것이다. 비문에는 속리산이 명산이라는 것과 세조가 이곳에 행차한 사실 등 속리산의 내력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수정봉(水晶峰) 위에 있는 거북바위의 내력이 쓰여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나라 태종이 세수를 하려는데 세숫돌에 큰 거북 그림자가 비췄다고 한다. 이를 이상히 여긴 태종이 유명한 도사를 불러 들여 물으니 대답하기를, 동국(東國, 한국) 명산에 큰 거북의 형상이  당나라를 향하고 있어 많은 당나라 제물을 동국으로 들어가게 하고 있으니 거북 모형의 물형을 없애라 하였다. 이에 사람을 보내 속리산 수정봉에 있는  돌거북의 목을 자르고, 돌거북 등 위에 10층 석탑을 쌓아 거북의 정기를 눌렀다고 한다. 

 



 

법주사 종합 안내

 

 

속리2교

 

금강문

 

 

마애여래의상 

 

 

마애여래의상

 

 

 

법주사 경내

대웅보전, 팔상전, 법주사 석련지

 

 

능인전

 

 

천왕문

 

 

범종각

 

 

팔상전

 

보은 법주사 팔상전:  (국보 제55호)

보은 법주사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를 모시고 있는 5층 목조탑이다. 법주사를 처음 만들 때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사라진 것을 선조38년(1605) 부터 인조4년(1626)에 걸쳐 벽암대사가 주관하여 다시 세웠다. 팔상전은 두 단의 석조 기단 위에 세워져 있고 기단 네 면의 중앙에는 돌계단이 있다. 이 기단과 계단은 통일 신라 때의 것이다. 각층의 밑면은 정사각형이며, 1층과 2층은 다섯 칸, 3층과 4층은 세칸, 5층은 두 칸으로 위로 올라갈 수록 너비가 줄어들어 안정감을 준다. 처마 끝을 받치는 공포 1)는 1층부터 4픙까지는 주심포식2)이고 5층은 다포식3)이다. 지붕 꼭대기를 중심으로 네 개의 지붕면이 뻗어있는 사모지붕이며 지붕 위 꼭대기 부분은 조선시대의 것으로 지금까지 완벽히 보존되어 있다.  팔상전 내부 한 가운데는 5층 전체를 통과하는 기둥이 있다. 이 기둥의 네 면에는 팔상도가 두 폭씩 있고 그 앞에는 열반상과 삼존불상이 있다. 법주사 팔상전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목조탑으로 건축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된다. 

1) 공포: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데 짜맞추어 댄 나무 부재.     
2) 주심포식: 공포를 기둥 위에만 배열한 것.
3) 다포식: 기등 상부 이외에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배열한 건축 양식. 

 

 

 

" 捌相殿(팔상전) " 

 

 

범종각

 

 

팔상전

 

 

쌍사자석등, 대웅보전, 약사전

 

 

약사전

 

 

원통보전

 

 

원통보전 &  쌍사자석등  &  대웅보전

 

 

쌍사자석등

 

 

원통보전

 

석조희견보살입상

 

진영각

 

 

기와불사

 

 

대웅보전

 

 

진영각

 

 

명부전

 

 

 

 

법주사 대웅전 동영상

 

 

선희궁 원당

 

 

관광객 출입금지, 정숙

 

 

 

약사전

 

 

팔상전 & 범종각

 

 

보은 법주사 철솥

 

 

금강문을 나서다

 

 

다향에서 커피 한잔

 

 

법주사 인포메이션 전광판

 

 

속리2교를 지나다

 

 

세조길

복천암, 템플스테이, 저수지 가는 길

 

 

법주사 템플스테이

 

 

속리산과 세조

 

세조가 한양을 떠나 온양온천까지 가는 길은 조선방역지도에 표시하였습니다. 1464년 2월 18일을 시작으로 광주 문현산(경기도 광주) -> 죽산(안성)-> 진천-> 청주-> 화인-> 보은-> 문의-> 전의(세종)-> 온양(아산)에서 온천을 하고 1464년 2월 27일 ~ 28일을 속리사(법주사)와 복천사(복천암) 등에 머물렀다는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조와 신미대사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 세종의 명으로 석보상절 편찬 작업에 함께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 당시 편찬된 책자들은 초기 한글 연구에 잇어서 중요한 자료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이 인연으로 사제의 연을 맺었고, 세조가 불교에 귀의하여 마음의 평안을 찾는데 함께 하였습니다. 현재 복천암에 신미대사 부도탑이 있습니다. 

세조실고 32권, 세조 10년 2월 27일  신해 1번째 기사

거가(車駕)가 보은현(報恩懸) 동평(東平)을 지나서 저녁에 병풍송(屛風松)에 마물렀다. 중 신미(信眉)가 와서 뵙고, 떡 1백 50동이를 바쳤는데, 호종(扈從)하는 군사(軍士)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신미대사부토탑: 보물 제1416호.

 

 

 

복천암과 세조

 

조선 7대 임금에 오른 세조는 과거 수양대군 시절 인연을 맺었던 신미대사를 만나기 위해 왕위에 오른 지 10년째 되던 해에 속리산 내 복천사 (현 복천암)으로 순행을 왔습니다. 세조는 복천사에 머물면서 법회를 열고, 피부병 치료차 요양을 했으며 쌀과 노비, 땅을 하사했습니다. 

법주사 -> 세조길 -> 목욕소-> 복천암 -> 문장대(1,054m) / 신선대 / 천왕봉 (1,058m).

   

 

저수지 제방

 

 

법주사 저수지 동영상

 

 

 

 

앗, 저수지

 

 

저수지 둘레길이 아름답다고 한다.

 

 

 

 

다시 주차장으로:

"작은 문장대"

 

 

문장대(文藏臺):


문장대는 원래 큰 암봉(岩峰)이 하늘 높이 치솟아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다하여 문장대(文藏臺)라 하였으나, 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을 하고 있을 때 꿈 속에서 어느 귀공자가 나타나 "인근의 영봉에 올라서 기도를 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찾았는데 정상에 오륜상감(五倫三綱)을 명시한 책 한권이 있어 세조가 그자리에서 하루 종일 글을 읽었다하여 문장대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일주문

 

 

다시 매표소

 

 

달천

 

 

레이크 힐스 호텔 설악산

 

 

속리산관광단지 식당가 ( 속리산면 사내리 )

 

 

관광안내소

 

 

속리산터미널

서울 동서울 터미널에서 속리산 직행 고속버스가 운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