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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생각 노트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 장로- ( 2022.12.02 )

by the road of Wind. 2022. 12. 3.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 장로

- ( 2022.12.02 )

 

날씨가 몹시 춥다. 오후 시간 운동을 조금 해 보려고 집을 나섰다. 어디를 가나?  집에서 하남시 방향으로 걸어서 5호선 하남 미사역까지 걷다 전철을 타고 되돌아오자고 생각하였다. 동장군을 생각해서 완전군장을 하고서 집을 나서서 길을 걷는다. 생각보다 그렇게 춥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길 걷는 것이 좋다. 길 가면서 여러가지 길가 풍경도 감상하며, 이것 저것 생각하면서 걸으면 마음이 가벼워 지는 것 같다. 능골근린공원을 지나 강일역 근처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위의 길을 지나간다. 강일동성당도 지난다. 성당 건물은 거의 모두가 외관이 아름답다. 성당 건물에만 들어가도 내 인생의 시름이 모두 해결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조금 더 걷고나니 하남시 일가도서관이 나타난다. 도서관 앞에는 일가 김용기 장로 동상이 있다. 나는 김용기 장로에 관한 이야기나 가나안농군학교란 말만 들어도 김용기장로 같은 위대한 분이 있을까 생각해 보게된다. 우리나라 근대화 기간 동안 가난의 질곡에서 해방되도록 한 새마을운동의 시발점이 된 가나안농군학교의 정신이야 말로 김용기 장로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들은 후손들이 이러한 위대한 분의 사상과 공로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애국자는 누구인가? 

 

평소엔 그냥 지나치다 오늘 나는 일가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실내가 잘 정돈되어 있고 도서관 규모는 작지만 아주 깨끗하고 아담하였다. 나는 여기에서 책을 조금 구경하다 밖으로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미사역으로 걷기에는 시간이 늦어버렸다. 다행히 돌아오는 길은 아들이 외출갔다 돌아오는 길에 픽업을 해 주어 어두워진 시간  손쉽게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 미사호수공원 가는 길

 

 

 

천주교 강일동성당

 

 

 

하남시 일가도서관. 기념관

 

 

가나안농군하교 설립자
일가 김용기
( 1909 ~ 1988 )  


◎ 일가 김용기 (1909~1988) 장로 일대기:

1909년- 9월 5일 경기 양주군 초부면 봉안리 (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5형제중 4째로 출생.
1915년- 마을 서당에서 명심보감, 통감, 소학 등을 배움. 
1919년- 아버지가 마을의 3.1운동을 주도하여 수백명 행렬을 이끄시는 모습을 목격함. 이 무렵 외지에서 형이 돌아오자 김용기는 본가에서 분가해 나감.
1922년- 여운형이 경기 양평에 세운 기독교 계통의 광동학교에 입학.
1926년- 광동학교 졸업 및 김봉희 여사와 결혼함.
1931년-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현 조안면) 능내리에 봉안교회 설립, 버려진 땅 4000여평 부지를 구입하여 봉안 이상촌(理想村)을 건설하고, 일제 강점기 말에 출옥한 여운형을 보호해 주기도 함.
1934년- "너는 꼭 농사꾼이 돼라." 는 아버지의 유언을 받음. 농사 짓기 2년만에  ‘동네에서 제일 농사를 잘 짓는 일꾼’이라는 칭호를 듣게 됨. 
1946년- 서울 구기동에 일본인이 운영하던 과수원을 인수하여 농장 설립.
1952년- 6.25전쟁으로 황폐화된 용인군 원삼리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장 건설하고, 복음 농도원과 복음농민고등학원 설립. 또한 교회 신설 및 인재 양성. 그가 평생 그리던 이상촌 건설 계기를 마련함.
1955년-  8.15 광복후,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풍산리 (현 하남시 풍산동) 황산의 넓은 황토벌을 개간하여 가나안 농장 설립.
1962년- " 한 손에는 성서를, 한손에는 괭이를" 이란 신념에 따라 평생의 숙원인 기독교 합숙교육기관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하고 농촌 일꾼 양성.  농림부 장관상·향토문화 공로상을 수상.
1966년막사사이상 (사회공익상 부문) 수상새마을운동에 영향을 줌.
1978년- 필리핀 세이버대학교 명예인문학박사 학위 취득함.
1988년- 8월 1일 경기도 광주군 동부읍 풍산리 제1가나안농군하교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함. 김용기 장로는 평생을 양복, 구두를 신어본 일이 없으며, 평생을 자신이 재단한 간단한 국민복, 고무신을 신고 농사꾼으로 생을 마감함.

 

 

 

 

이곳은 옛날 황산 아래 가나안농군학교가 있던 자리이다. 하남시 미사지구 건설로 인해 가나안농군하교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가면서 이곳이 개발되었고, 일가 도서관 및 기념관이 세워지게 되었다. 

 

정기휴관일: 매주 월요일

 

 

 

 

 산   책 : 걸음수 3,370 steps, 거리 2.2 km, 소모열량 118 kcal, 소요시간 00:30 mins, 속도 4.3 km/h, 기온 1 ℃.

 코   스 :  고덕천 - 능골근린공원 - 강일역 - 강일동성당 - 일가도서관. 

 

 

=== < 2022.05.03 사진, start >===

"팔당수력원자력"

 

 

봉안터널 ( L = 278m ) 

 

 

봉안이상촌 전신 봉안교회:

"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마라."


노동의 가치를 크게 여겼던 가나안농군학교의 창립자인 일가 김용기 장로가 남긴 명언입니다. 김용기 장로의 고향인 조안면 봉안마을에는 1914년 설립된 봉안교회가 있습니다. 김용기 장로는 모두가 바라는 이상향, 낙원인 봉안이상촌건설을 꿈꾸었고 최종에는 조국의 국권 회복을 목표로 했습니다. 1931년 김용기 장로가 드디어 봉안교회 일원들과 뜻을 모아 이룩한 것이 봉안이상촌이었습니다. 봉안이상촌은 당시 우리나라를 선도하는 일종의 연수원이자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였으며, 당시에는 혁신적인 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일가 김용기 장로는 쌀 공출을 막기 위해 벼 대신 밀, 옥수수, 고구마를 재배했고 그 당시 최고의 고구마 재배기술을 고안했습니다. 또한 일제에 항거하는 공출반대운동 및 독립운동과 독립투사를 보호하고 연락하는 등 나라의 독립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도 했습니다. 봉안이상촌의 성공은 훗날 제2이상촌을 거쳐 가나안농군학교로 발전하면서 우리나라의 농민소득을 올리고 농민을 교육하고 깨우치게 하는 나라의 커다란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가나안농군학교는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 롤모델로 삼았다고 하니, 새마을운동의 요람인 셈입니다.  

 

 

 

↑ 연꽃마을

 

 

팔당호, 경안천 하류 퇴촌 방향

 

 

봉안대교, 봉안마을

 

=== < 2022.05.03 사진,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