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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① 창덕궁, 창경궁- ( 2024.09.01 )

by the road of Wind. 2024. 9. 2.

 

창덕궁, 창경궁

- ( 2024.09.01 )

 

《  창덕궁  》

 

시내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창덕궁, 창경궁을 찾아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종묘를 운동삼아 걸어본 후에 그 곁에 있는 광장시장 구경을 좀 하다 파전이나 무슨 먹거리를 찾아 냉막걸리 한잔 하고 오려  했지만, 길가다 창덕궁 이정표를 보고는 발길을 창덕궁으로 돌렸습니다. 창덕궁, 창경원은 서로 이웃하고 있어 같이 둘러볼 수 있어 아주 좋았습니다.  일요일인데도 탐방객들은 외국인들을 제외하면 내국인은 아주 소수 였습니다. 외국인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창덕궁을 가면 비원(Secret Garden)을 가보고 싶은데 오늘도 비원 입구에는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장사진을 치고 있어 포기하고 창경원으로 넘어갔습니다.  창경원은 다른 궁전에 비해 뜰이 넓고 개방적입니다. 특히 춘당지라는 아름다운 연못이 있어 운치를 더하는 곳입니다. 창경원 구경을 마치고 창경궁 정문 앞 정류장에서 종로3가 가는 버스를 타고 종로3가에 내려 전철역으로 가다 길가의 생맥주집에서 생맥주 2잔에 기분이 좋아져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 오늘 생맥주 한잔에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다음번엔 광장시장을 꼭 들러 냉막걸리 한잔 해보려 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으니, 무엇 보다 행복한 만족감은 먹는 것에서 솟아나온다는 진리를 터득하는 것 같습니다.   

 

 산   책 : 걸음수 6,430 steps, 거리 4.14 km, 소모열량 221 kcal, 소요시간 01:06 hrs, 속도 3.7 km/h, 기온 31℃. 

 코   스 : (5호선) 종로3가역 - 창덕궁 ( 돈화문 - 궐내각사 - 인정문 - 선정전 - 희정당 - 대조전 - 흥복헌 )  - 창경궁 ( 통명전- 양화당 - 집복헌 - 영춘헌 - 환경전- 경춘전 - 함인정 - 문정문 - 문정전 - 숭문당 - 명정전  명정문 - 옥천교 - 춘당지 -  홍화문

 

 

창경궁 가는 길:

 

멀리 창덕궁 정문 (돈화문)이 보인다.

 

익선동 목장

한국전통음식연구소...떡박물관

 

종묘 방향 한옥들

 

 

창덕궁:

 

돈화문...경로의 경우 신분증 제시로 정문 통과.

 

돈화문(敦化門):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1412년(태종 12)에 건립되었다. 창건 당시 창덕궁 앞에는 종묘가 자리 잡고 있어 궁의 진입로를 궁궐의 남서쪽에 세웠다. 2층 누각형 목조건물로 궁궐 대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며, 앞에 넓은 월대를 두어 궁궐 정문의 위엄을 갖추었다. 돈화문은 왕의 행차와 같은 의례가 있을 때 출입문으로 사용했고, 신하들은 서쪽의 금호문으로 드나들었다. 원래 돈화문 2층 누각에는 종과 북을 매달아 통행금지 시간에는 종을 울리고 해제 시간에는 북을 쳤다고 한다. 돈화문은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1609년에 재건되었다. 

 

 

창덕궁 관람 요금
 
1. 전각 관람:  

대인:  내국인 3,000원,  내국인 3,000원 
단체:  내국인 2,400원, 내국인 2,400원 
( 내국인 만 25세 ~ 만64세, 외국인 만 19세~만 64세 )
* 전각 관람 만 65세 이상 경로 무료. 

2.  후원 관람:  

경로:  
개인: 내국인 5,000원,  외국인 5,000원 
단체:  내국인 5,000원,  외국인 5,000원 
만 65세 이상 )


대인:  
개인: 내국인 5,000원,  외국인 5,000원 
단체:  내국인 5,000원,  외국인 5,000원 
만 19세 ~ 만 64세 )

소인:  
개인:  내국인 2,500원,  외국인 2,500원 
단체:  내국인 2,500원,  외국인2,500원 
( 만 7세 ~ 만18세 )
 

후원 입장 시간:  10:00, 11:00, 12:00, 13:00, 14:00, 15:00.


- 후원 관람 인원은 회차당 인터넷 예매 50명, 현장 구입 50명입니다. 
- 후원 입장 예매는 6일전 오전 10시 부터 ~ 전날까지 궁능유적본부 누리집에서 가능합니다. (입장 당일은 현장에서 구입)
- 후원은 창덕궁 해설사의 인솔하에 제한 관람만 가능. 개별 관람 불가. 
- 입장 시간 미준수시 입장 및 횐불 불가.

 

창덕궁 권역 안내

후원(後苑)  Secret  Garden 300m 도보로 10분 ->

 

창덕궁 (昌德宮):

조선조 3대 임금인 태종은 1405년에 제2의 왕궁으로 창덕궁(昌德宮)을 창건했다. 그럼으로써 수도 한양의 서쪽에는 경복궁이, 동쪽에는 창덕궁이 위치하여 균형잡힌 도시공간을 구성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으로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탄 후 경복궁은 재건되지 않았고, 270여년 동안 창덕궁이 조선 왕조 제1의 정궁으로 역할 하였으며, 마지막 임금인 순종 때 까지 사용된 최후의 궁궐이기도 한다. 동쪽의 창경궁(昌慶宮)과 함께 하나의 궁궐로 사용되어 동권(東闕)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궁궐 예재는 남북 중심축을 따라 엄격하게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경복궁 역시 이 제도를 따랐다. 그러나 산자락에 자리잡은 창덕궁은 인위적이 제도를 벗어나 주변 자연 지형에 순응하고 변화를 거듭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 되었다. 왕실 생활에 편리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공간구성은 경희궁, 덕수궁 등 다른 궁궐 구성에 영향을 주었다. 1917년 대조전을 비롯한 내전들이 불타 없어지자 경복궁의 전각들을 헐어다 옮겨짓는 등 많은 건물들이 변형, 훼손, 철거되었다가, 1991년 부터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덕궁은 조선 궁궐의 원형을 비교적 충실히 지니고 있으며,동궐의 후원은 한국 전통 조경의 특성과 아름다움을 가장 후륭하게 구현한 예로 평가된다. 1997년 12월 유네스코(UNESCO)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되었다.    

* 궁궐 영역별:


1. 돈화문 일원, 2. 인정전 일원, 3. 선정전, 4. 희정당, 5. 대조전 일원, 6. 성정각 일원, 7. 궐내각사, 8. 선원전 일원, 9. 낙선재 일원, 10. 부용지와 주합루, 11. 애련지와 의두합, 12. 연경당, 13. 존덕정과 폄우사, 14. 옥류천 일원, 15. 신선원전 일원.

 

창덕궁 회화나무 군 천연기념물:  

돈화문 안 마당에 좌우로 자라는 8그루의 회화나무가 모두 천연기념물이다. 나무 높이는 15~16m, 가슴높이 줄기둘레 2~3m, 나이는 약 300~400년에 이른다. 이곳의 회화나무는 1830년 무렵의 창덕궁 그림(동궐도)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에 불타 버린 창덕궁을 다시 지을 때 심은 것으로 짐작된다. 돈화문 주변은 조정의 관료들이 집무하는 관청이 배치되는 공간으로, 이곳에 회화나무를 심은 것은 '궁궐 정문 안쪽에 괴목(회화나무와 느티나무)을 심고 그 아래에서 삼공(三公) 이 나랏일을 논했다." 는 중국 고사에 의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궁궐외에 학덕 높은 선비들이 사는 마을에 흔히 심었다. 그래서 학자나무라고도 한다.

 

 

금천교  &  진선문(進善門):  

진선이란 임금께 바른말을 올린다는 뜻이다. 임금이 계시는 정전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므로 올바른 정치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영조 때엔 이곳에 신문고가 설치되어 있었다. 신문고는 커다란 북으로,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한 백성이 신문고를 두드려 임금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었다고 한다.

 

궐내각사(闕內各司): 

 

 왕실과 직접 관련이 있는 여러 관청들이 궁궐안에 설치되었고, 이를 궐내각사(闕內各司)라 부른다. 그 가운데 정치를 보좌하는 홍문관(弘文館, 玉堂), 건강을 보살피는 내의원(內醫院, 藥房), 정신문화를 담당하는 규장각(奎章閣, 內閣), 왕의 칙령과 교서를 보관하던 예문관(藝文館) 등이 중심 시설이었다. 대부분의 건물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소멸되었다가 2005년에 복원되었다. 가운데 흐르는 금천을 경계와 경관 요소로 삼았고, 여러 관청들이 밀집되면서 미로와 같이 복잡하게 구성되었다.   

 

약방

 

숭범문:

 

인정전 서문이다. 서쪽으로 예문관, 내의원과 통한다. ‘숭범(崇範)’은 ‘규범을 높인다’는 의미이다. 정도준이 글씨를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인정전 측면

 

인정문...품계석

 

인정전(仁政殿):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正殿)으로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이다. 앞쪽으로 의식을 치르는 마당인 조정(朝廷)이 펼쳐져 있고, 뒷쪽으로는 북한산의 응봉으로 이어져 있다. 2단의 월대 위에 웅장한 중층 궁궐전각으로 세워져 당당해 보이는데, 월대의 높이가 낮고 난간도 달지 않아 경복궁의 근정전에 비하면 소박한 모습이다. 인정전은 겉보기에는 2층이지만 실제로는 통층 건물로 화려하고 높은 천장을 볼 수 있다. 바닥에는 원래 흙을 구워 만든 전돌이 깔려 있었으나, 지금은 마루로 되어있다. 전등, 커튼, 유리 창문 등과 함께 1908년에 서양식으로 개조한 것이다. 인정문 밖 외행각(外行閣)에는 호위청과 상서원 등 여러 관청들을 두었다. 1405년(태종5)에 창덕궁 창건과 함께 건립되었으나 1418년(태종18) 박자청에 의해 다시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0년(광해2)에 재건, 1803년(순조 3)에 소실된 것을 이듬해에 복원해 현재에 이른다. 외행각 일원은 1991년 이후에 복원했다.

인장전 임금님 용상
 

 

 

선정문

 

 

선정전(宣政殿):  

선정전(宣政殿)은 궁궐의 편전(便殿: 사무공간)으로서 왕이 고위직 신하들가 더불어 일상 업무를 보던 곳으로 지형에 맞추어 정전 동쪽에 세워졌다.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정 세미나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매일같이 열였다. 주위를 둘러싼 행각들은 비서실, 창고 등으로 이용되었으나 전체적으로 비좁았다. 선정전은 청기와를 올린 것과 앞쪽 선정문 까지 복도각 건물로 연결한 것이 특징이다. 선정전은 한 때 혼전(魂殿: 신주를 모시는 곳)으로 쓰였는데, 복도는 그때의 흔적이다.   

 

선정전 임금님 용상...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

 

희정당(熙政堂):  

희정당은 왕의 거처이며 집무실이다. 원래의 이름은 숭문당이었는데, 연산군 대에 희정당(熙政堂)으로 바꾸었다. 선정전이 종종 국장에 사용되면서 또 다른 집무실로 활용되었고, 왕의 침실로 쓰이기도 했다. 지금의 희정당은 1917년에 붙에 타 없어진 희정당을  복구하면서 경복궁 강녕전을 이전하여 건축한 것으로, 원래의 모습과 다르다. 앞쪽에는 자동차를 타고 내릴 수 있도록 현관이 마련되고, 내부에는 유리창과 전등, 근대적 화장실을 설치하고 유럽풍의 가구를 갖추었다.    

 

왕의 거처인 희정당 내부

 

 

==== <  ▼2024.05.30 사진: 대조전 > ====

대조전이 보인다.

대조전(大造殿) 

대조전은 창덕궁의 침전이자 생활공간이다. 대청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왕과 왕비의 온돌방이 있다. 대조전 오른쪽에 있는 흥복헌(興福軒)은 1910년 마지막 *어전 회의가 열려 경술국치가 결정된 비운의 장소이다. 대조전 전체 지역은 여러 부속 건물들이 **행각과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뒤뜰에 조성된 ***화계에는 아름다운 굴뚝이 세워져 있다. 현재의 대조잔은 1917년 일어난 화재로 이전의 대조전이 불타 없어지자 그 터에 경복궁 침전이었던 교태전을 옮겨 지은 것으로 마지막 왕과 왕비가 살았던 1920년대의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 어전회의: 중요한 국사를 다루기 위하여 임금 앞에서 중신들이 하는 회의.
** 행각: 궁궐, 절 따위의 정당(正堂) 앞이나 좌우에 지은 줄행랑.
*** 화계: 돌과 흙으로 층계를 만들어 꽃이나 나무를 심어 놓은 계단식 화단.

 

 

신식 가구들

 

대조전은 왕비가 거처하는 내전 중 가장 으뜸가는 건물이다. 이 건물에서 조선 제9대 왕인 성종을 비롯하여 인조·효종이 죽었고, 순조의 세자로 뒤에 왕으로 추존된 익종이 태어나기도 하였다. 조선 태종 5년(1405)에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를 비롯하여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불이 나서 다시 지었다. 1917년 또 화재를 당하여 불에 탄 것을 1920년에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고 그 부재로 이곳에 옮겨지어 ‘대조전’이란 현판을 걸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차례에 걸쳐 다시 지었기 때문에, 건물 자체는 물론 주변의 부속 건물들도 많은 변화를 거쳤다. 대조전은 현재 36칸으로 앞면 9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건물 가운데 3칸은 거실로 삼았으며, 거실의 동·서쪽으로 왕과 왕비의 침실을 두었다. 각 침실의 옆면과 뒷면에는 작은 방을 두어 시중 드는 사람들의 처소로 삼았다. 건물 안쪽에는 서양식 쪽마루와 유리창, 가구 등을 구비하여 현대적인 실내 장식을 보이고 있다.  - <문화재청>

 

==== <  ▲ 2024.05.30 사진 end > ====

 

 

영현문

 

보춘정(報春亭) ...선정각에 딸려 있는 누각.

 

관물헌(觀物軒)...성정각 뒤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집희(缉熙)'라는 편액은 고종이 12-13세에 쓴 것이라 한다. 

 

후원에 들어가려는 사람들...

 

창경궁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