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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나의 산행

금병산(652m) - 소설가 김유정의 산 (2011-05-27)

by the road of Wind. 2011. 5. 27.

금병산(652m)   - 소설가 김유정의 산 (2011-05-27)

 

금병산(652.2m)은 춘천시 신동면 증리에 소재한 산으로 젊은 나이에 일찍 요절한 소설가 김유정의 생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여 유명하다. 금병산 일원에는 김유정이 남긴 작품이름을 따서 원창고개에서 정상까지는 봄.봄길, 정상에서 서쪽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산골나그네길, 북쪽능선으로 가다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은 동백꽃길, 산의 남쪽에 해당하는 증4리에서 능선을 넘어 다시 증리쪽 계곡으로 내려오는 길은 금따는 콩밭길, 산골나그네길에서 저수지로 내려서는 길은 만무방길이라고 이름 부르는 코스가 있다. 금병산은 근처의 유명한 삼악산(654m)과 높이가 비슷하나 산의 형상은 전혀 다르다. 삼악산은 험한 암벽으로 이루어 진 등산코스의 험한 산이지만 금병산은 북쪽능선의 단애를 빼고는 바위가 거의 없는 아주 편한 걷기 좋은 육산이다. 금병산은 4 계절 중 겨울철에 오르기 가장 좋고, 가을이면 낙엽이 무릎까지 빠질 정도로 수목 이 울창하다. 금병산은 춘천분지의 남쪽을 마치 병풍처럼 막고 있어 정상에 서면 춘천시가지의 조망이 아주 탁월하다.

 

등산로:

ㅇ  김유정역 - 금병국교 - 끝집 - 싸리골집 - 능선 - 능선5거리 - 금병산 정상 - (안골/ 원창고개/  삼포) 3개 방면으로 하산. (4시간 소요)

ㅇ (북릉코스) 김유정역- 김유정유적지- 406봉- 노송군락지 - 금병산 정상- (남서릉코스) 헬기장-  삼거리 - 저수지- 금병초교- 김유정역

ㅇ (북릉코스) 김유정역- 김유정유적지- 406봉- 노송군락지 - 금병산 정상- (남서릉코스) 헬기장-  삼거리 - (직진) - 철탑삼거리 우측길  - 잦나무숲-  금병초교- 김유정역

ㅇ  원창고개 - 사슴목장 - 조리터골 - 597봉 - 적송군락 - 정상 -   진달래군락 - 소나무군락 -406봉 - 삼화식당 (8km, 3:30분 소요)

 

등산기:

나는 전에 금병산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금년 3월경 전철에서 만난 어떤분의 이야기를 듣고 오늘 금병산 산행을 하게된 것이다. 경춘선 전철을 타고 강촌역을 지나 다음역에 내리니 김유정역이다. 김유정역은 한옥 스타일로 아담하게 지어서 멋이 있었다. 11:40분경 하차하였으나 점심을 준비하지 못하여 여기저기 찾아보다 마침 보리밥집이라는 곳을 찾아가게 되었다. 식당 분위기가 시골집에 마치 시골 처가집에간 기분이다. 여기서 보리밥으로 점심을 먹으니 맛도 좋고 옛생각도 난다. 내고향은 남쪽나라인데 옛날 쌀은 별로 없고 주식이 보리였다.  삼시 세끼중 두끼는 항상 보리밥만 먹고 살았다. 그래서 한동안은 보리 보자만 들어도 질렸었는데 지금은 향수가 어려서인지 참 좋아한다.  아무튼 식사를 하고 김유정 유적지를 지나 좌측 북릉을 타기 시작하였다. 말하자면 동백꽃길을 따라 올라갔다. 산길은 마치 비단길같다. 소나무잎같은 낙엽이 흙과 섞여있어 쿠손이 있고 부드러웠다. 숲도 우거져 있어 시원한 산행이되었다. 정상까지는 숲에 가리워 조망이 터지지 않았으나 정상 전망대에 오르니 그 조망이란 너무 아름다웠다, 동서남북으로 산이 둘러 쌓여 모처럼 맑은 하늘과 뭉게구름까지 하늘을 수놓아 너무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 정상에서 잠시 간식을 좀 먹고 어떤 분과 주위 산에 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다 남릉쪽으로 하산하였다. 이 분의 조언데로 주욱 곧장가다 삼거리를 만나면 김유정역 방양표시쪽으로 하산하란다. 그러면 잣나무숲을 통과할 수있어 매우 좋다는 것이다. 말한데로의 코스르 따라 증리 실내마을로 내려왔다. 오늘 산행은 너무 만족한다. 강촌은 번잡하고 도회지같았는데 이곳은 한적한 시골 분위가 남아있어 조용한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이곳 증리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모습이며 이곳 주민의 말을 빌리면 가을이면 가을단풍이 금병산 골짜기마다 너무 아름게 수놓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아름다움은 김유정의 작품에 어떻게 그리 잘 묘사되었는지 모른단다. 다음번에 가족들과 함께 산행을 하려한다. 오늘 산행은 굳 좋았다.  

 

김유정(金裕貞)(1908~1937): 소설가/ 1908.1.18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  휘문고등보통학교 졸, 연희전문학교 문과 중퇴 / 단편 소설 '소낙비'가 1935년 《조선일보》에 당선되고, 《중앙일보》에는 '노다지'가 당선되어 문단 활동 시작 / 1933년  구인회 조직 활동, 야학당 '금병의숙' 농촌계몽운동 참여 / 1965 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   김유정은 민중들을 사랑하여 명문집안의 자손인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소작인들에게도 존대말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집안이 기울면서 공장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누나에게 얹혀살다가 1937년에 폐결핵으로 요절하였으며, 타계시까지 30여 편의 소설을 창작하였다./ 김유정은 조선 현종의 비 명성왕후의 친정아버지인 김우명의 후손으로 그의 넷째 손자 도택(道澤)이 김유정의 선조가 되었다. 아버지 김춘식은 자를 윤주(允周)라 했으며 진사시험에 합격해 사마좌임금부주사(司馬座任禁府主事)를 지냈다 고 한다. /  저서: 봄봄. 동백꽃. 소낙비. 만무방 등/  김유정의 고향인 실레마을은 강촌역과 남춘천역 사이에 있는 김유정역에서 내려 걸어 5분 거리에 있다. 실레마을은 김유정 소설의 무대가 된 마을로, 마을 곳곳 소설의 무대가 된 곳마다 팻말이 세워져 있고, 「봄봄」 봉필영감의 집은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삶을 바꾼 여인: 김유정의 3번째 여인은 박봉자로서 몇 개월 동안에 30여 통의 답장없는 편지를 써댔으며 그녀의 약혼을 안 그날부터 유정은 술로써 이내 청춘을 불사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로인한 쇠약에서 페결핵에 걸리지 않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 가난:  김유정이 서울에 올라오면서는 우울증이 깊어지고 공장에 다니는 누이에게 신세를 져야 했으며 목간 값서부터 담배 값에 이르기까지 누이의 눈치를 봐야 했으며 그보다 실업자인 매형 정씨까지도 압력을 가하는 가난한 신세였다고 한다. / 질병: 30년대 문인들은 술로 살다시피 하였다. 폐가 결단이 날 정도로 악화된 상태였지만 김유정의 몸은 늘 술을 놓지 못하였다. 평소에는 입이 무겁고 말더듬이지만 술좌석에선 능변이요 달변이며 취하기만 하면 딴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병이 깊을 대로 깊어 경기도 다섯째 누이의 집, 정릉 골짜기의 암자와 신당동 형수의 집 단칸방에서 병마를 버틴다. 21세에 걸린 치질 증세도 폐결핵 요양차 정릉 암자에 기거하면서 늘 바위 위에 누워지내다 그 냉기로 인해 재발하여 죽음의 순간까지 고통을 주었다. 22세부터 늑막염으로 통원치료, 25세에는 폐결핵이 발병하여 그때부터 어깨가 꾸부정 휜 상태로 지내다가 27세 정식으로 폐결핵 진단을 받았다. 그러다 1937년 가난과 실연과 병마에 찌든 그의 고통의 생애의 막이 스물 아홉에 마감된다. 김유정의 유품은 지금 어느 것 하나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가엾고 불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