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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청계천변 - (2014-05-25)

by the road of Wind. 2014. 5. 25.

청계천변 - (2014-05-25)

 

 

아침 일찍 청계천변을 걸었다. 청계광장으로 다가가니 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이 무수히 걸려있었다. 세월호의 슬픔이 또 다시 밀려왔다. 흐리긴 하지만 상쾌한 아침인데, 젊음을 피어보지도 못한 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착찹하고 슬프다. 간혹 문득 문득 떠오르는 감정들이 웃음을 앚아가는 것 같다. 항상 똑같은 물음: 그 아름다운 청춘은 어디에 가벼린 것인가? 왜 그렇게 되어버린 것인가? 어른들은 왜 그렇게 미련하게 행동했을까? 이 결과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다. 답답하다.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 확실하게 결말을 내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이 것이 이땅에 살아있는 자들의 의무이다 라는 생각이다.  세상은 잊을 것이다. 그것이 더욱 가슴을 쓰리게 만든다.

  

 

○ 청계천의 시작점 청계광장

 

<못다핀 꽃>  600X350 2014 임옥상 / 세월호 추모 조형물이다. 여기에서도 많은 애끓는 심정들이 노란 리본으로 걸려있다. 가슴 아픈 일이다. 못다핀 꽃. 그렇다. 조형물의 제목을 읽는 순간 목구멍에 무엇이 걸리는 듯 하였다. 못다핀 꽃들아, 미련한 어른 들이 미안하다. 잘 못 했다. 말로 어찌 속죄가 되겠는냐? 

  

청계천을 걸어가다. 그러나 나는 여느 때와 달랐다. 마음이 침잠되어 있으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아, 이 부정적인 감정이 사람을 잡는 것이로구나. 그러나 이런 기분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해장 술이라도 한잔 해야 하지 않겠나? 그러나 이른 아침 그런 곳은 없었다.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버린 윤동주 시인의  "서시"란 작품이 눈에 띄었다.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목이 메인다. 누구를 진실로 진실로 사랑해 본 경험이 없는 나이기에 이 말이 내 마음에 비수처럼 꽂쳐왔다. 그렇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 운명을 사랑하고, 숙명을 사랑해야 한다. 아,아, 유한 것들이여, 슬픈 것들이여! 오늘 밤 잎새에 바람이 불고, 밤 하늘에 별빛이 스치울 때 한잔의 술로 우리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또 다른 여로를 떠나가야 한다.

 

 

 

 

 

 

 

 

 

< 못다핀 꽃 >

 

어찌할꼬
어찌하란 말이냐

 

강물아,
못다 핀 꽃
꺽여버린 그 꽃들,

 

어찌할꼬
어찌하란 말이냐

 

청계 맑은 물
졸졸졸
따라오라고
그저 암말 말고
따라오기만 하라고
소리치네
소리치며 흐르네

 

어디보자 하면서도
뒤돌아 볼 수 없는데


아침 하늘
구름 가득 끼어있네

 

조그만  물고기도
춤추고
작은 들새들도
노래하는데
너희들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는구나

 

버드나무 강가에 드리우고
찔레꼿도 물소리 듣고 있는데
너희 피지 못한 꽃들은
어디 갔느냐?

 

실 바람
엷은 물결도
내 앞에 먼저 가며
따러오라 손짓하는데

 

못다 핀 꽃
그 꽃들은
어디 갔을까?

 

강물아,
그 꽃들 어찌할꼬
어찌 하란 말이냐?

 

 

 

 

 

 

 

   

 

사람들은 다시 바빠질 것이다. 일상은 빠른 흐름으로 지나 갈 것이다. 먹고 살려는 몸 짓들이 우리들을 보이지 않는 틀에 가두어 놓는다. 사람들은 익숙하여 절망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래 열심히 살아야 한다. 먹을 것을 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 먹거리를 싸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허기진 어린 것들이 구석에서 나와서 바쁜 입 놀림으로 씹어 삼킬 것이기 때문이다. 아, 살아있는 자는 죽을 수 없다. 살아 남아야 한다. 살기 위하여 우리는 노예도 되고 머슴도 된다. 희멀건 하늘이 보인다. 구름이 끼어있어도 맑은 기색은 있다. 하늘도 우리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저기 구름을 양생하여 비를 내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할거나, 우리 슬퍼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언제까지 슬픔에 잠겨있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