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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늦가을 용문사 - (2014-11-17)

by the road of Wind. 2014. 11. 17.

늦가을 용문사 - (2014-11-17)

 

용문산(1,157m) 자락의 용문사(龍門寺)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 소재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봉선사의 말사이다. 신라 신덕왕 2년(913년) 승려 대경(大境)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또 다른 일설에 의하면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행차하여 직접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려 우왕 4년(1378년)에 지천(智泉)이 개풍군 경천사에 있던 대장경을 이 곳에 옮겨 봉안하기도 했다. 조선 세종 29년(1447년) 세종의 둘째 왕자인 수양대군이 어머니 소헌왕후 심씨를 위해 보전을 다시 지었다. 수양대군은 왕이 된 뒤 왕명으로 용문사를 중수하도록 하는 등 관심을 보여 이후 여러 차례 중창했으나, 대한제국 순종이 왕위에 오른 1907년에 대한제국 군대 해산으로 의병 운동이 일어나면서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이 불태워버렸다. 1982년 선걸 스님이 취임하여 대웅전·삼성각·범종각·지장전·관음전·요사·일주문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탑 미륵불을 조성하였으며,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부분 현대에 새로 지어진 것들이다. 용문사 문화재에는 정지국사탑 및 비 (正智國師塔, 碑)있으며 대한민국 보물(보물 제531호)로 지정되어있다. 정지국사는 고려말 당시 절의 사세를 크게 확장시킨 스님으로써, 충숙왕 11년(1324년)에 사재부정(司宰副正)을 지낸 아버지 김연과 어머니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법호는 축원(竺源)이다. 1395년(태조 4년)에 천마산 적멸암에서 나이 62세 법랍 43세 입적했다고 한다. 또한 용문사 최대의 명물은 수령 1,100년 에 달하는 천연기념물 제30호 은행나무이다. 이 은행나무는 우리나라 수목중 가장 키가 크며, 동양 최대라고한다. 높이가 42m에 달하고, 줄기의 최대 둘레는 15.2m 라고한다.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세자였던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고도 하고, 또 신라 고승 의상대사(義湘大師)가 그의 지팡이를 꽂은 것이라고도 한다. 수많은 전쟁과 화재가 있었음에도 이 나무만은 그 화를 면했다고 한다. 사천왕전(四天王殿)이 불탄 뒤부터는 이 나무를 천왕목(天王木)으로 삼고 있다고 하며,  조선 세종(世宗) 때는 정삼품(正三品)보다 더 높은 당상직첩(堂上職牒)을 하사받은 명목(名木)이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는 소리를 내어 그 변고를 알렸다고 할 정도로 신령스런 나무로 인식되어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시간도 없었거니와 무릅부상까지 당하여 운동을 삼가고 있어서 가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이 가을이 지나가기 전, 11월이 다가기 전, 가을 단풍을 멋있게 한번 보고싶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최대, 동양 최대라는 은행나무가 있는 용문사를 찾았다. 주차장에서 용문사까지의 길이 아주 좋고 용문산 주변의 풍경이 아주 수려하고 유서깊은 사찰을 보고 주변의 노란색 단풍과 용문산의 울긋불긋 단풍을 행여나 볼 수 있을까 기대를 해본 것이다. 용문사 주차장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도로변 산하와 계곡에는 단풍이 거의 지고 스산한 겨울 기분이 날 지경이었다.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더러있었으나 전반적으로는 분위기가 조용하기만 하였다. 사찰은 대개 가람의 배치와 구성이 대동소이하지만 용문사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우리나라 최대의 은행나무이다. 참으로 대단하였다. 잎이 모두 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는데 줄기의 굵기가 대단하였다. 천년 세월을 견디어 내는 이 나무가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줄기 아랫부분에는 커다란 혹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나 나무는 건강하였고 위풍당당하였다. 우리가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은행나무가 우리 인간들을 내려다 보는 것 같았다. 

 

 

 

 

 

秋懷_추회  澤堂 李植_ 택당 이식

가을 회포

 

萬木霑秋影 楓林亦自誇  (만목점추영    풍림역자과)

나무들은 온통 가을 그림자에 젖어있고/   붉게 물든 단풍 숲 절로 뽐내누나

  

間松披錦罽  蘸水起紅霞  _ (간송피금계    잠수기홍하) 

소나무 사이엔 솔잎 져   비단 깔아 놓은 듯/  가득한 물에는  붉은 노을 일으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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偶爾明人眼 依然當物華  _  (우이명인안    의연당물화) 

 나도 모르게 그대 눈이 환히 밝아져/  예전의 화려한 가을 풍경 다시 맞았네  

 

 

斜陽故嫵媚 一半暫交加   _  (사양고무미 일반잠교가)

석양은 옛과 같이 아양을 떨려고 하는지/  절반은 갑자기 반만 비추어 주네  

 

李植(이식)(1584∼1647): 조선의 문신/자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澤堂), 본관은 덕수(德水)/ 좌의정 荇(행)의 현손이며 좌찬성에 증직된 안성(安性)의 아들이다. 광해군 2년(1610) 문과에 급제하여 7년 뒤 선전관이 되었으나 폐모론이 일어나자 낙향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이조좌랑이 되었으며, 대사간으로 있을 때 실정(失政)을 논박하다가 여러 번 좌천되었다.

 

 

 용문사 가는 길:

 

 

 

 

 

용문사관광단지 주차장에서 출발:

 

 

 

 

 

 

 

 

 

 

 

 

 

 

 

 

 

 

 

용문사 그리고 그 유명한 은행나무: 

 

 

 

 

 

 

 

 

 

 

 

 

 

 

 

 

 

 

 

 

 

 

 

 

 

 

 

 

 

 

 

 

 

 

 

 

 

하산 길:

용문사 관광단지 주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