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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소요산 단풍, 자재암 - (2015-10-22)

by the road of Wind. 2015. 10. 22.

소요산 단풍, 자재암  - (2015-10-22)

 

 

소요산을 다녀왔다. 소요산의 그 현란한 단풍을 보고 싶어서이다. 2015.10.24~25 이틀 동안 열리는 <소요단풍제>에 미리 다녀온 것이다. 주말

소요단풍제 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붐비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집사람과 둘이서 조용히 미리 소요산 단풍 구경을 하고 왔다. 지금 소요산 주차장 일원에서는 단풍축제 준비가 거의 마무리 되어 있었다. 소요산 초입에는 < 2015 소요산 국화전시회 >  도 열려 온갖 종류의 가을 국화가 여러가지 모양으로  전시되어 있었으며 분재등 볼거리가 화려하였다. 소요산 단풍도 절정기에 와있어서 붉은 색조로 탐방객들의 얼굴까지 홍조를 띠는 듯이 보였다.  

 

단풍은 설악산에서 시작을 알리면서 하루 20~25km씩 남하(南下) 한다고 한다. 또한 단풍은 정상인 고지대에서 산아래 저지대로 하루 50m씩 내려온다고 한다. 소요산 단풍은 지금 계곡을 물들이고 있다. 머지않아 곧 모두 낙엽으로 떨어지고 단풍은 소리없이 사라질 것이다. 찬란하게 빛나고 흔적없이 사라지는 운명인 것이다.

 

 

소요단풍제가을의 소요산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단풍의 절경을 담고  있으며 「소요단풍제」는 단풍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 1986년부터 시작되어 매년 10월말경이면 동두천시 전역과 소요산에서 펼쳐지는 동두천의 대표적인 축제 중 하나이다. 「소요단풍제」는 지역의 문화예술인과 단체의 역량이 결집된 공연예술을 통해 동두천시의 문화수준을 높이는 데 일조하였고 특히, 단풍의 절정기에 소요산에서 펼쳐지는 소요단풍축제때는 다양한 참여 이벤트와 친숙한 연예인이 출연하는 공개방송으로 시민과 관광객이 모두가 하나되는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며 2015년에 30회째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 10월 문화의 달에 지역의 문화예술인과 단체가 일년동안 준비한 각종 전시회, 전통공연, 무대예술 등 다채로운 문화 행사가  동두천시 전역에서 펼쳐진다. 제30회 소요단풍제...단풍이 아름다운 소요산에서 오는 10월 25일부터 26일까지 이틀간 소요단풍제가 소요산 야외음악당에서 개최된다. 각종 무대공연과 체험행사 등 한층 풍성해진 이번 문화제는 소요산을 찾은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잊지 못할 가을날의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특히 동두천시 여고생과 여성 시민을 대상으로 제3회 요석공주 선발대회를 실시해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 이번 단풍제는 동두천 민요보전회 전통민요 재현, 전문 초청공연팀, 문화예술 협회별 공연, 요석공주 선발 대회,  연예인 초청공연 등이 준비돼 있다. 또한 다양한 체험부스와 전시부스을 운영하여 소요산을 찾은 관광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것이다.

일 시 : 2015. 10. 24(토) ~ 25(일), 장 소 : 소요산 야외음악당    - < 동두천시 >

 

소요산(587m): 소요산은  경기도 동두천시 동북방 소요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백운대(440m), 중백운대(510m), 상백운대(559m), 나한대(571m), 의상대(587m), 공주봉(526m)의 여섯 봉우리가 부채꼴을 이루고 있으며 주봉은 상백운대(559m)이다. 서화담 양봉래와 매월당이 자주 소요하였다 하여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경관이 뛰어나서 "경기의 소금강"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기암괴석의 봉과 바위능선, 협곡을 이루는 계곡이 아름답다. 원효폭포 옥류폭포 청량폭포 선녀탕,  자연석굴 나한전과 금송굴이 있어 매력적이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자재암이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중 하나이다. 소요산은 수도권 최고의 단풍 명산이다.

등산코스:

- 1코스(5.71㎞,1시간30분 ) : 일주문 - 자재암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선녀탕 - 자재암 - 일주문 – 관광지원센터
- 2코스(6.53㎞, 2시간 ) : 일주문 - 자재암-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상백운대 - 칼바위 - 선녀탕 - 자재암 - 일주문 - 관광지원센터
- 3코스(7.04㎞, 3시간30분): 일주문-자재암-하백운대-중백운대-상백운대-칼바위-나한대-의상대- 샘터갈림길-구절터- 일주문-관광지원센터
- 4코스( 8.19㎞, 4시간 ): 일주문-자재암-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칼바위-나한대-의상대 -공주봉- 구절터- 일주문 - 관광지원센터

 

 

소요산 입구~ 속리교 까지:

 

"소요산 자재암" .  이름부터 멋 있다. 스스로 있는 암자로  단풍구경을 하면서 소요하며 올라오라는 당부같다.

 

소요산역 방향으로 뒤돌아 본다... 

 

"2015 소요산 국화전시회" ....참 볼만 하였다. 각종 국화가 향기를 발산하고 있으며 어디선가 꿀벌들이 날아와 동참하고 있다.

 

각종 분재도 눈길을 끈다.

 

 

만약에 이 세상에 꽃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지구별은 얼마나 축복 받은 별인가?  를 생각한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꽃처럼 아름답게 살아가야 한다.  

 

 

이 건물은 무슨 건물인고 하니 "동두천시 농특산물 판매장" 이란 간판이 붙어있다.

 

 

 

사랑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 심장(마음)은 사랑의 발전기이다.

 

 

"소가 웃을 일이다."란 말이 있다. 여기에선 국화향이 너무 좋아서 소가 웃겠다. 웃을려고 하고 있다.  

 

 

현란하다....아름답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 그렇게 울었나 보다/. ...../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  < 서정주, 국화 옆에서>


 

 

 

"寬景秋花黃葉紅_(관경추화황엽홍)" ...경치를 바라보니 가을 꽃은 노랗고 나뭇잎은 붉구나!

 

 

 

주차장 입구에 음식점들이 있다.  소요산으로 들어가는 길 중간에도 식당가가 있다. 그래서 삭막하지 않다.

소요산으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간다...

멋진 아치형 조형물이다.

 

 

주차장을 지나 여기에서 부터 본격적인 계곡 길 진입이다.

 

 

"요석공원" .  소요산 하면 자재암이요 자재암 하면 원효대사이며 원효하면 요석공주, 그리고 영원한 사랑의 테마다...

 

 

여기에 의상교가?  당대의 라이벌? 

 

 

야외음악당이 있는 넓은 공지이다.

 

 

 

이 곳의 단풍이 소요산에서는 가장 붉고 짙다.

 

 

 

 

 

단풍처럼

 

사랑아

단풍으로 오너라
태양처럼 붉게 타오르다
서로 손잡고 남강의
푸른 강물 위로
논개처럼 몸을 던지자
 

사랑은

화산처럼 솟구치다
용암으로 흘러내리는
핏빛 정열이려니

 

사랑아
단풍처럼 시월의 숲에서
흩어져 영원으로
아득한 태고의 신비로
다시 되돌아가자
 

 

 

매표소...은행나무의 노란 빛이 주변을 환하게 비추는 듯 하다..

 

 

 

 

 

 

 

 

Autumn Leaves ....젊은 날 불러보던 노래가 생각난다....


 

The falling leaves Drift by the window
The autumn leaves Of red and gold


떨어지는 나뭇잎들이 창문곁으로 스쳐지나가네 
 적색과 황금색의 찬란한 빛깔로 물든 나뭇잎들.....

 

I see your lips The summer kisses
The sunburned hands I used to hold


여름날 입맞춤했던 당신의 입술, 
내가 잡아주던 그을린 손이 생각나네.....

 

~~~~   ~~~~~

 

I miss you most of all My darling
When autumn leaves Start to fall  


가을 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나는 당신이 그리워......

 

 

 

 

오늘 단풍축제를 앞두고 인명구조 연습 차 119 차들이 소요산 자재암 일주문 근처까지 와 있다..

 

"소요산 자재암"  일주문이다....두다리로 튼튼히 서있다.  "경기 소금강" 이라고 적고있다...

 

 

 

 

 

 

속리교~ 자재암 까지:

 

자재암으로 오르는 입구..."속리교"....이제 속세를 잊으란 말인가? 잊고싶다...아, 잊고 싶다....

 

일단 왼쪽의 원효폭포 를 구경한다... 

 

원효굴인가? 암굴이 있으며 많은 촛불이 켜져있다.

 

앗, "원효폭포" 다. 원효 증손자의 오줌 줄기 같다.  가뭄이 극심한지라 이해한다... 

 

 

 

속리교를 지나자 마자 서 있는 소요산 등산 안내도....잘 정리되어 있다.  나는 보통 구절터, 샘터를 거쳐 최고봉 의상대를 오른 다음 하산은 공주봉으로 내려온다.  이 코스가 가장 무난한 코스인 것 같다. 물론 하,중,상 백운대를 거치고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을 모두 등산 해 본 후의 간편 코스로 애용하는 것이다.

 

 

 

 

 

구절터를 거쳐 의상대 혹은 공부봉으로 가는 등산로...

 

 

자재암으로 오르는 "백팔계단"...  모든 인생은 백팔번뇌를 가지고 있다. 그 번뇌 속에서 자기를 불태우고 있다. 백팔게단 처럼 힘든 삶을 운명처럼 오르고 있는 것이다.

 

 

 

 

 

"해탈문"...  어떤 등산객인지 순례객인지 해탈문 종을 울리고 있다. 종소리는 사방에 퍼지고 번뇌는 날아간다.

 

 

 

 

"원효대" ....좋은 전망대이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 나옹선사 (懶翁禪師)(1320~1376)

 


나옹선사(懶翁) 선사: 고려말 고승. 경북 영덕 출생. 속성(俗性)은 아씨(牙氏). 법명은 혜근(惠勤). 인도의 고승 지옹스님의 제자이며, 조선건국에 기여한 이성계의 왕사인 무학대사의 스승이다. 세속 20세에 출가하여 요연선사 밑에서 정진하다가 25세 때 양주 회암사로가 4년 만에 대오(大悟)한다. 1371년 왕사가 됨. 1376년 세수 57세, 법랍 38세로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다. 

 


 

추담선사 부도탑..

 

자재암 선방인 것 같다. 수도정진중이라는 글씨가 보이는 것 같다.

 

 

 

 

아무리 비바람이 때린다 할지라도

반석은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어진 사람은 뜻이 굳세어

비방과 칭찬에도 움직이지 않는다.

 

 

훌륭한 말씀이다. 마음에 새겨두려 한다.

그러나 산과 같은 사람...반석같은 사람...이게 말처럼 쉽겠는가? 가을 바람에도 마음이 흔들리니....

 

 

 

 

 

 

자재암에서:

 

 
자재암(自在庵): 654년(신라 무열왕 1년) 원효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의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974년(광종 25년) 각규대사(覺圭大師)가 태조의 명으로 중창하고 소요사라 했다. 그리고 1153년(의종 7년)에는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각령(覺玲)이 대웅전과 요사만을 복구하여 명맥만 이어왔다. 조선 초까지만 해도 자재암은 태조의 원당으로 왕실의 비호를 받아오다가 어느 시기엔가 폐허가 되다시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후기 들어서는 1872년(고종 9년) 원공(元空)과 제암(濟庵) 스님이 퇴락한 자재암을 중창하고 영원사(靈源寺)라 하였다. 근세에 들어 한국전쟁 당시 다시 소실된 것을 1961년 진정(眞精) 스님이 대웅전을, 1968년 성각(性覺) 스님이 요사채를, 1977년에는 삼성각을, 1982년에는 일주문을 각각 지었다. 이어 1984년에는 동두천 시내에 부설 연화유치원(현)이 개원하였고, 1983~1985년에 오래된 건물을 헐고 새로운 중창을 하여 지금의 사격을 갖추었다자재암에는 원효 스님이 관음보살을 만나 자신의 수행력을 인증 받았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원효 스님이 요석공주와의 세속의 인연을 맺은 뒤 오로지 수행일념으로 이곳을 찾아 초막을 짓고 용맹정진 하던 때였다. - < 소요산 자재암 연혁 요약 >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년): 신라시대의 고승으로, 속성은 설씨(薛氏), 원효는 법명이며, 아명은 서당(誓幢)이다. 648년 황룡사에서 출가한 뒤 각종 불전을 섭렵하며 수행에 정진하였다. 일정한 스승을 모시고 경전을 공부하지 않고 타고난 총명으로 널리 전적(典籍)을 섭렵하여 한국불교사에 길이 남는 최대의 학자이자 사상가가 되었다. 34세에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로 가던 중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진리는 결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터득하고 의상과 헤어져서 돌아왔다. 이후 태종무열왕의 둘째딸인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았는데 이후 스스로 복성거사(卜性居士) 소성거사(小性居士)라고 칭하고 속인행세를 하였다. 현존하는 그의 저술은 20부 22권이 있으며 특히 그의<대승기신론>은 중국 고승들이 해동소(海東疏)라 하여 즐겨 인용하였고, <금강삼매경론>은 인도의 마명(馬鳴) 용수 등과 같은 고승이 아니고는 얻기 힘든 논(論)이라는 명칭을 받은 저작으로서 그의 세계관을 알 수 있는 큰 저술이다. 그는 학승으로서 높이 평가될 뿐만 아니라 민중 교화승으로서 당시 왕실 중심의 귀족화된 불교를 민중불교로 바꾸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종파주위적인 방향으로 달리던 불교이론을 고차원적인 입장에서 회통시키려하였는데 그것을 오늘날 원효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이라 부르며, 이것은 그의 일심사상(一心思想) 또는 무애사상(無埃思想)과 함께 원효사상을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 소요산 자재암 연혁 >

 

 

 

아름다운 절이다. 주변의 단풍과 기암괴석과 절집이 어울려  그림을 보는 듯 하다. 좁은 절터에 암자의 배치가 잘 되어있다. 무슨 양반가를 보는듯 건축미가 훌륭하다.

 

 

 

 

  

자재암...

 

대웅전..

 

 

 

 

 

 

 

나한전...

 

 

하백운대로 가는 등산로...단풍이 고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