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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천진암, 시월의 마지막 외출 - (2015-10-31)

by the road of Wind. 2015. 10. 31.

천진암, 시월의 마지막 외출   -  (2015-10-31)

 

'시월의 마지막 외출' 하고 발음하니 어감이 좋고 무슨 인상깊은 사랑 영화 제목 같기도 한 느낌이 난다. 사실 오늘이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시월의 마지막 날이란 가을이 홀연히 가버리는 상실감이 느껴지는 그런 날 같기도 하다. 그래서 시월의 마지막 날, 마지막 주말을 기하여 가까운 곳으로 나가보았다.

 

처음엔 집 사람과 여주 부근을 돌아보고 남한강변을 따라 드라이브하며 서울로 돌아오려 했었다. 비극적 최후를 마친 안타까운 '명성황후의 생가' 를 돌아보고 강천면 강천리에 있는 강천섬의 넓은 인공섬으 공원에서 홍천의 은행나무숲 못지 않은 노오란 은행 나무 사잇길을 걸어보고 영월루, 강천보, 여주보, 신륵사 등을 둘러보고 오려고 집을 출발하였으나 천호대교 아래 올림픽대로로 들어서는 길목의 차량 정체로 행선지를 바꿔서 상일동, 하남, 팔당댐, 퇴촌의 지방도 만을 따라 정체를 피하면서 천진암을 목적지로 하고 차를 몰고갔다.    

 

내 예상은 적중하여 차 막힘이 없이 천진암성지를 잘 다녀왔다. 특히 수도권의 산들은 단풍의 절정기를 이루어 산들이 온통 엷은 갈색 또는 붉은 색이거나 노란 색감으로 아름답고도 정결한 새악시 처럼 조화롭게 단장하고 있는 듯 하였다.  

팔당호의 푸른 물결은 쌀쌀한 날씨 탓인지 물결조차도 시리게 느껴졌으며, 주변의 단풍으로 년중 최고의 풍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팔당댐 팔당댐은 가득 담겨져 있는 바다같은 강물을 볼 때마다 그 그윽한 경치와 광활하고 시원한 호수의 모습에 매료되곤 한다. 지금 처럼 미증유의 가뭄 상태에서는 서울과 수도권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는 고마운 호수이다. 2015년 9월현재 우리나라 인구는 5천백만 정도, 서울의 인구 1천만 정도, 경기도 1천2백만정도 이다. 서울과 경기도에 전인구의 43% 정도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이 먹는 물이 여기 팔당호수의 물에서 나온다. 그러니 팔당호수 물은 우리들의 생명수이자 우리들의 젖줄이다.  팔당댐, 그 얼마나 고맙고 아름다운 댐인가. "나이 먹어서 철난다" 는 말이 있다. 내가 느끼는 건데.....틀림없는 말이다. 나이 먹어가니 정말 철이 나는 것 같다. 평소 무심했던 아무 것도 아닌 일에 감동하고 고마워 하게 된다.   

 

아, 가을은 얼마나 좋은가? 아, 이 아름다운 경치 좀 봐!  옆에 앉아 차창 밖을 보는 집사람이 가을 단풍에 감동한다. 아, 나도 감동한다. 우리는 부부다. 부부는 일심동체라 하지 않던가? 오, 저 산 봐라. 단풍 단풍...저 산 좀 보게나. 천진암 성지 가는 길은 주변의 아름다웁게 물든 단풍으로 환상으로의 여행같다. 차도 위에 우거져 울긋 붉긋 물든 가로수 길을 드라이브하며 바람을 가르듯 천천히 가다보니 "참 좋다~"는 생각외에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다. 퇴촌성당 근처에서 천지암성지 까지 무려 9km에 달하는 우산천 변을 달리는 길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 옛날 천주교 신도들이 정부의 탄압을 피하여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이렇게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을까? 그들의 고통은 얼마나 컸을 것이며 죽음에의 공포감은 얼마나 컸었을까?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면서 천진암에 도착하였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미 상당한 차들이 파킹되어있었다.

 

 

 

 

천진암 성지 입구에 있는 접수처에서 주소,성명, 방문 인원수, 소속 성당 등 몇 가지 사항의 방명록을 기재하고 입구로 들어서니 길 연도에 십자가서있는 포장 비탈길을 오르게 되어있었다. 이 길 끝에는 예수님이 달려있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나는 천주교 신자가 아닌데 천주교 성당은 하나같이 건물 모습이 평화롭고 아름다우나 예수님이 형틀에 달린 십자가는 보기가 꺼려질 정도로 잔인하다 징그럽다 하는 생각이 든다. 참혹한 모습이다. 마침 비탈을 오르고 나니 아주 드넓은 광장이 나타고 천주교 기념 성당 건립을 위한 커다란 조감도와 함께 주변을 감싸고 있는 단풍으로 물든 경치가 너무 아름다웠다. 아주 시원한 경치이다. 풍수지리적으로 본다면 직감적으로도 천하명당 처럼 보였다. 천지를 주관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만유의 절대자이신 3위일체 예수님을 기리는 장소인데 무슨 잠꼬데 같은 헛 소리야 하는 생각도 들지만 소박한 생각으로 터가 너무 좋다는 뜻에서다. 주변의 경치가 너무 좋았다.

 

그런데 이 곳까지 벤츠를 타고 오신 연세가 많은 분들이 차를 세워두고 기념 사진을 찍고있다. 천주교 관련 고위 인사들인가? 나는 여기에서 또 한번 놀랐다. 천진암성당조감도 때문이다. 사각형의 2층 구조물에 한국식 맞배지붕을 한 성당 건물로 보이는데 그림으로 보면 규모가 너무 적은 것 같다. 이 기념성당을 짓는데 100년을 계획하고 있다는데 너무 오랜 세월아닌가? 하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한분이 이 터를 닦는데만 20여년이 걸렸소! 하는 게 아닌가? 크게 한번 놀랐다. 보통 무슨 계획을 장구하게 생각할 때면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말한다. 이 성지를 완성하는 것도 백년대계 아래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긴 세월 동안 건설한다고 하는데 외형의 조감도는 너무 적어보였다.  이 점이 나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않는다. 왜 일까?     

 

오늘 처음 이 곳에 와보고 나는 감탄을 많이했다. 주로 경치 때문이다. 이 성지 뒷 산이 앵자봉이다. 물론 자봉(鶯子峰)(670.2m)은 천주교인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산이고 앵자봉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천주교가 전파되기 시작되었으며, 앵자봉 일원은 천주교 성역 순례길로 지정되어 있기도하다. 앵자봉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초기에 천주교 교인들이 숨어 살았을 만큼 산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심산유곡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받는 산이다. 나는 언젠가 앵자봉양자산(704.4m)을 연계 산행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 천진암성지에서 위로 올려보는 앵자봉의 모양은 꾀꼬리가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다. 앵자봉을 왜 앵자봉이라 했는지 이해가 간다. 천주교 성지를 품고있는 산, 앵자봉이다.

 

천진암 성지에서 사진을 조금 찍고 주변을 조금 걸어보고 천진암주차장으로 다시 걸어내려와 양수리 두물머리로 향했다. 집사람 말로는 어제 인기 TV 드라마에서 이 곳이 나오는데 너무 많이 달라지고 잘되어 있는데 가보자는 것이다. 퇴촌을 거치고 주말마다 개방하는 팔당댐을 건너 양수리 두물머리로 갔다. 그런데 이 곳으로 차를 진입시켰다가 오도가도 못 하고 차 안에서 시간만 지체하고 있다 마지막 돌려나오는 로터리에서 차를 뒤로 역주행하여 겨우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도무지 무슨 차들이 그리 많은가? 젊은이들이 애인과 함께 모두 다 이 곳으로 몰려온 것인가? 다음 번 평일에 다시 한번 와보자고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의 코스집- 천호대교- 상일동- 미사리 - 팔당댐 - 팔당호수 길 - 퇴촌- 관음2리- 우산리 천진암성지 - 퇴촌 <엄지매운탕> 집 - 팔당댐 - 두물머리 -  집.

 

주말에 차를 가지고 수도권 주변으로 놀러가는 것은 항상 차량 정체를 각오하고 나서야 한다. 새벽같이 나가고 점심 먹고 바로 되돌아 와야 한다. 오늘 천진암 성지를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다. 주변 산들은 등산을 해 보았지만 여기는 처음이다. 길게 이어지는 우산천 변의 차도를 드라이브 하는  맛도 참 좋았다. 이 가을 지금쯤이면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을까?  차량정체 때문에 여주에서 이 곳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었는데 아주 잘 된 것 같다. 나는 비록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이 곳 성지에 와 보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뿐이다.

 

 

 

퇴촌 가는 길:

 

팔당댐 바로 옆에서 예빈산을 바라보며 사진....도로를 무단횡단 할 수 없어 팔당댐을 찍지 못 해 아쉽다. 도로 바로 아래에는 한강이 흐르고 있다.

 

팔당댐을 지나 팔당호 우측 호반 길을 가다 광주상수원관리사업앞 도로변에서 찍은 팔당호의 경치...멀리 정면으로 분원이 보인다.

 

 

광주시상수도관리사업소...

 

 

 

퇴촌을 지나 천진암 성지 가는 길:

 

관음2리 도로변에서 주변을 찍어 보았다.

 

도로변에 정자가 있고 슈퍼가 있다. 이 곳에서 음료를 샀다.

 

키 큰 느티나무와 정자... 여름철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쉼터로 좋겠다...

 

"관음2리 정자앞" 버스 정류소...

 

 

관음3리 마을회관...관산 (556M) 등산로 입구...

 

관산(冠山)은 높이 556m의 낮은 산으로 양자산(楊子山:710m)·앵자봉(鶯子峰:667m)·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북에서 남으로 뻗어있다. 이 능선 상의 500m 안팎의 수많은 구릉을 만들어 기복이 매우 심한 잔구성(殘丘性) 산지로 발달하고 있으며 능선과 계곡이 빽빽한 참나무숲과 머루·다래,으름,칡덩굴 등 잡목림으로 가득차 있다. 인적 뜸하여 호젓한 산행을 할 수 잇으며 가을이면 낙엽이 무릎까지 빠질 정도이다. 여기 관음3리 에서  시작하여 관산을 거쳐 무갑산 아래 무갑리로 내려서면 아주 좋은 산행이 된다. 


 

 

관음3리를 지나 천진암으로 가는 길에서...차량 안에서 찍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는 담아 낼 수 없다. 사진은 사진일 뿐이다.

 

 

 

 

 

 

 

 

관음3리를 지나 조금 올라가니 <양강> (경기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63) 이란 음식점이 나오고 전면의 경치가 아주 좋았다. 저 멀리 앵자봉 줄기가 보이고 우리가 가야할 곳이다.   빈터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가 예술이네....

 

 

양강 앞 다리에서 바라 본 천진암 방향의 경치....

 

 

 

우산리 372 <다향찻집> 앞에서...

 

전통찻집 <다향> (경기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372) ....

 

이제 천진암이 보인다....멀리 앵자봉이 보이고 그 아래가 천진암 성지이다...

 

 

 

 

천진암 성지 에서: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요금은 무료이다.

 

주차장 옆의 산 기슭을 찍어보았다. 엷게 물든 단풍...가을이 서성이고 있다.   

 

 

 

천진암 주차장....

 

 

 

 

 

천진암 성지: 경기 광주시 퇴촌면 천진암로1203 에 소재하고 있다. 전세계 모든 나라의 천주교회가 대부분 다른 나라 선교사들의 전도로 시작되었으나, 우리나라 천주교회는 1779년에 이벽, 권일신, 정약종, 권철신, 이승훈 등 당시 저명한 학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으니, 학문적 지식의 수준에 있던 천학(天學)천진암에서 자발적인 진리탐구를 위한 6,7년간의 강학회(講學會)를 통하여 종교적인 신앙의 차원인 천주교회로 승화, 발전시켰으며, 그 현장이 바로 천진암 성지이다. 어느 나라에도 그 나라 천주교 발상지는 없으니 천진암 성지는 한국 주교회에만 있는 자랑스럽고 거룩한 성지이다. 이 성지에는 한국천주교회 창립의 성업을 이룬 이벽,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 정약종 한국 천주교회창립선조 5위 묘가 천진암 터에 모셔져 있고, 조선교구설립자 묘역에는 정하상, 유진길 및 한국천주교회 창립선조들의 직계 가족인 정약전, 정지해, 이석 등 선인들의 묘가 안장되어 있다.

 

* 천진암 성지의 볼거리 : 강학회가 열리던 천진암 계곡 입구에는 강학 기념비가 서 있고, 한국천주교회창립사연구원, 성모경당(1천여명 수용), 광암성당(200여명 수용) 등이 완공되어, 순례단들이 미사를 봉헌할 수 있으며, 한국 천주교 박물관(1,500평)은 현재 기초공사가 완료된 상태이다. 특히 한민족 100년 계획 천진암대성당(8,107평)은 건축허가가 완료되어 기둥 2개가 착공되고 있다. 30만평 성역에 3만여 평의 대성당 건립 터에서는 매년 수 만 명의 신도들이 모여 한국 천주교회 창립 기념행사를 거행한다   - < 한국관광공사 >

 

천진암(天眞菴): 고조선(古朝鮮) 시대 제정일치의 관습으로, 본래 단군영정 천진을 모시고 산제사, 당산제, 산신제 등을 올리던 천진각 혹은 천진당이라는 작은 초가 당집이 오랜 세월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며, 특히 일부 선사시대의 석조흔적으로 추정되는 현상을 볼 때, 삼국시대(三國時代) 그 이전부터 소박한 토속신앙의 현장으로 여겨지며, 훗날 천진암이 되어, 1779년을 전후하여 폐찰이 되었다. 조선시대 이곳에 있던 암자에 피신해 온 초기 천주교인들을 스님들이 피신시켜주고 보호해 주었다. 이로 인해 결국은 많은 스님들이 희생되었다. 불교의 자비정신이 돗보인다. 바로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 천진암에서 한국 천주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2007년 현재는 암자터만 남아 있고 이 일대는 천주교에서 성당을 세우는 등 성역으로 개발중이다. 


"천진암은 다 허물어져 옛 모습이 하나도 없다,,,요사체는 반이나 무너져 빈 터가 되었네 (寺破無舊觀,樓前僚舍半虛舊)" - 정약용.


"한국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성지에 건립되는 새 성전 머릿돌에 교황강복을 베푸노니, 하느님이 보우하사 온 겨레가 영원히 화목하기를 비노라."   -  교황 요한 바오로2세 (1993년).

 

 

 

 

 

광암성당(曠庵聖堂)... 참 소박하게 보인다...얼마나 좋은가? 화려하고 큰 성당보다 값지다...

신앙은 소박한데서 진실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닐까?

 

나사렛 갈릴리 아기 예수가 태어난 말구유인가?

 

천진성역 (天眞聖域) 1986년 7월 7일 ...

 

포장 오르막 길을 따라 오른다...길 양 옆에는 십자가가 로마자로 넘버링되어 있고 서있다.  십자가의이라고 한다....

그 옛날 로마시대 중동의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을 예수께서는 부당하게 형벌을 받고 무거운 십자가를 언덕을 오르셨으리라...그 길은 얼마나 고통으로 점철되었을까?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 아멘

 

 

 

예수께서 살아 생전에 너희들은 중언부언 하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기도문이다.  탐욕 많고, 죄 많고, 유혹에 약하고, 힘 없는 인생들이 하여야 기도문이다.  모든 인간들은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겸손함으로 돌아가서 주기도문으로 자신을 참회하고 용서를 받으며 일용할 양식을 구하여야 한다. 

 

 

 

예수님이 매달려 있는 십자가....무고한 젊은 종교인이 죄없이 형벌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로마를 비롯한 위정자들과 기득권 종교 세력들은 민중을 조직화 한 내란죄로 몰았을 것이다. 세계 역사를 통하여 반복되는 증오의 역사는 언제나 끝나려나? 가슴이 아프다...

 

십자가의 길을 뒤돌아 본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아, 세월이 가고 있다. 인생이 슬프다는 생각 뿐이다. 

 

 

 

십자가를 가까이 당겨본다. 예수님은 운명의 순간에 저들을 용서하소서 하였다고 말하고 다 이루었다 라고 하셨다고 한다. 자신을 죽인 원수들마저 용서하라는 기독교의 사랑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사건이다.

 

붉은 단풍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아름답다. 물론 시들어 가고는 있지만....

 

아, 산세가 아름답다...가을이 깊어만 간다....

 

왠가? 100년 대계로 건립하려는 천진암 대성당 조감도...그런데 규모가 좀 왜소해 보인다. 왠가? 이 건물 하나 짓는데 그렇게 장구한 세월이 필요한 것 일까? 의문이 들었다.  ... 그런데 이곳에서 얻어 간 팜플렛을 보고 의문이 풀렸다. 

 

천진암 대성당 조감도....(1985~1995년 설게도 작성, 1985~1992년 터 닦기, 1992년 대성당 터 축성, 1993년 첫 정초식, 1994년 중앙 본 제대석 축성, 1996년 첫 기둥 착공, 2001년 임시 4대문 틀 수림). 

 

와우 대단하다.. 지금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힘을 쓰고 정성을 들이고 있겠는가? 생각하니 머리가 숙여졌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은 건물이 유순하게 보이고 주변 산세를 해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럽식 건축을 도입하여 첨탑이 하늘을 찌를듯 한다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이상하리라는 생각이든다. 입구 바로 옆에 있는 소박한 광암성당 건물이 생각난다. 그런 이미지의 연장 같다. 우리나라 도처의 명승지에 있는 사찰 등에서 종교의 상징물을 하늘 높이 건립하여 을씨년 스럽게 보이고 해당 종교와 무관한 비신도들에게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데 이런 일은 없었으면 한다. 종교인들만 중요하고 자기 종교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은 종교의 창시자들은 하나 같이 내면의 중요성을 설파하셨지 자기를 숭배하는 외형을 중시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광활한 터를 닦는데만 2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이 곳까지 피신한 위나라 천주교 초기 신자들의 아픔을 느낀다. 이 세상에 종교의 자유를 말살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나라가 많다. 악의 세력들이다....  성모 마리아 상이 서 있다. 예수님의 어머님...성모...마리아...평화롭고 자애로운 모습이다...뜨거운 모성애가 느껴진다.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는 자식이 상상할 수 없는 모진 형벌을 받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야 했던 비극의 어머니였다. 그 고통과 비극의 어머니가 이제 가슴에 묻은 자식으로 말미암아 평화의 어머니 사랑의 어머니의 화신이 되었다.   

 

 

 

 

 

 

 

 

 

 

천진암 성지 입구 다시 내려섰다.

입구 광암 성당 옆에 장미 한 송이가 피어있다. 샤론의 장미 (Rose of Sharon) 인가?

 

입구 옆에 있는 민가들? 

 

다시 성지 방향으로 올려다본다..

 

 

 

들어 갈 때 방명록을 기재하는 게이트 같은 곳이다...

 

 

돌아오는 길..퇴촌 이 집...<엄지매운탕> (031-767-5839/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광동리 234-1) ..

 

<엄지매운탕> 집...

 

 

아, 이 집의 매운탕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최고다. 엄지를 치켜세우고 싶다. 사실 이 집의 매운탕 맛을 다시 보려고 벼루고 벼렸다. 혼자 올 수는 없지 않은가?  이 허름한 집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맛이 나오다니? ....허허...웃음이 나온다.  단연 최고다...집앞에 주차장도 괜찮다...모두들 분원으로 매운탕을 먹으려 가는데 두 곳의 매운탕을 먹어본 다음 나는 여기다 하고 무릅을 쳤다....  가격도 최고로 착하다...놀라울 따름이다..수족관에 매기등 고기가 살아 퍼득인다....매운탕은 활어를 써야 제맛이 난다. 어느 곳에 가니 냉동을 쓴 집도 있었다....손님들로 항상 북적이는 곳...이 집이 정답이다....

 

 

 

 

 

 

 

 

 

수족관 외관이 녹 슬었다고? 외관이 문제가 아니다. 수족관의 깨끗한 물과 싱싱한 활어가 문제다...외관은 전통을 말해주는 증명서 아니겠는가?    

 

 

 

다시 팔당호반에서...차를 세우고...

 

 

 

 

 

 

 

 

 

팔당댐 인근 두물머리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팔당으로 넘어오다 차를 잠깐 세웠는데 근처에 한확선생 신도비가 있었다...

 

 

확선생신도비 (유형문화재 127호)..

 

한확(1403~1456): 조선 초기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 자(子)는 자유(子柔)이며, 호(號)는 간이재(簡易齎), 시호는 양절(襄節)이다. 누이가 명나라 성조(城祖)의 후궁이 되어 명에 가서 벼슬을 하는 동안 수차례 모국과 왕래하면서 국교(國交)를 원활히 하였다. 누이가 명나라 성조의 비로 뽑히자 1417년(태종 17)진헌부사로 명나라에 가서 광록시소경(光祿侍少卿)을 제수 받았다.   이듬해 세종이 즉위하자 명의 책봉정사(冊封正使)가 되어 귀국하였고, 1435년(제종 17)에 중추원부사가 되었다. 1453년 계유정란 때 수양대군(首陽大君)을 도와 정난공신 1등에 책록되고 서성부원군(西城府院君)에 봉하여 졌다.   1455년(세조 1) 좌의정이 되고, 좌익공신 1등에 오르고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개봉되었다. 1456년 사은사 겸 주청사로 명나라에 가서 세조의 왕위찬탈을 양위라고 명나라를 설득하였고, 귀국하는 길에 사하포(沙何浦)에서 숨졌으며 세조묘(世祖廟:종묘에 안치된 세조의 위패)에 배향되었다.   신도비는 장방형의 비좌(碑座) 위에 대리석으로 된 비신(碑身)과 이수를 올려놓은 형태로 매우 크게 조성되어 있다. 비좌는 이중의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올려놓았는데 상부에는 복판연화문(覆辦漣花文)을 새겼다, 아랫부분은 2층으로 나누어 각각 안상 문양을 새겼다. 쌍룡을 조각한 이수는 그 문양이 매우 섬세하며, 쌍룡을 중심으로 주위에 운문(雲文:구름모양)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어세겸(漁世謙)이 찬(撰)한 것으로서, 비문 상단에는 '양절한공신도비명(襄節韓公神道碑銘)'이라고 전액(篆額)하여 있다. 비문 끝에는 '홍치팔년팔월(弘治八年八月)'이라는 연기(年記)가 있어 비의 건립연대가 1495년(연산군 1)으로, 선생이 타계한 지 39년 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 < 남양주시 문화관광과 >

 

 

 

 

가을 배추가 아주 풍년이다...

 

 

CAFE의 수 많은 장독들....멋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