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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길 (trekking)

남한산성 산책 - (2015.12.30)

by the road of Wind. 2015. 12. 31.

남한산성 산책  - (2015.12.30)

 

 

오후 늦게 남한산성을 일부 산책하고 왔다. 아주 간단히 머리를 식힐 겸 다녀왔다. 남한산성은 현재 살고 있는 곳과 멀지않고, 과거 남한산성 아래 송파대로 변에 살 때는 거리가 지척이어서 이곳 남한산성으로 마천동을 들머리로 등산을 참 많이 하기도 하였다. 남한산성은 산성을 중심으로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천혜의 요새와 같은 산 주변의 아름다운 소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산림이 무성하고 좋기 때문에 부담없이 많이 찾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는 무수한 음식점들이 영업을 하고 있어서 먹거리가 풍성하다. 특히 지금은 옛날과 달리 이 일대가 최근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선정되어 없던 시설들이 속속 건립되고 정비되었다. 그 예로 남한산성 행궁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많은 산 봉우리 들이 애워싸고 있는 경관이며 산성 안의 유적들, 사찰들이 볼만 하며, 서울, 성남 지역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많다. 특히 높은 위치의 수어장대 및 근처 에서 보는 경치가 탁월하다. 남한산성은 서울 방향으로는 매우 가파르고 거친 지형을, 광주 방향으로는 유순하고 어느정도 평탄한 지형을 보여주고있다.      

 

오늘의 산책로남한산성 남문(지화문) -> 제2옹성, 남장대 터 -> (원점 회귀).

 

남한산성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은 1936년의 병자호란의 치욕적인 역사적 사실이다. 후금의 무리한 요구와 사죄 요구를 거절하자  청 태종이 12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공하여 한양으로 진군하였다. 이에 강화도로 피난하려던 조정은 청군의 선발대에 가로막혀 강화도를 포기하고 이 곳 남한산성으로 피신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성 안에는 1만 3천여명의 군사와 양곡 1만 4300여석과 소금 90여 석이 있어 겨우 50일을 버틸 수 있는 식량 사정이었다. 동시에 큰 저항을 받지 않은 청군은 남한산성 아래 탄천 부근에 포진하였다. 이런 전세에서 주화파 (최명길 일파)와 주전파 (김상헌 일파)의 격렬한 논쟁이 대립하였으나 이듬해 1월 강화도가 함락당하고 그 곳에 있던 왕자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과 처녀들이 청군의 포로로 잡히게 되면서 강화론이 우세한 상황으로 발전하였다. 피신 45일 정도 지나자 더이상 버틸 힘을 상실한 인조가 성문을 열고 나가 매섭고 추운 날씨에 조선의 왕 인조는 소복을 입고 높은 단상의 청 황제에게 치욕적인 삼배구고두의 항복의식을 행했디. 삼배구고두 3번 절하고 한번 절 할 때 3번씩 총 9번 머리를 땅에 찧는다란 뜻이다이마에 피가 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일국의 군왕으로서는 보통 치욕이 아니다. 소현세자등 많은 사람들이 삼배구고두를 행했다. 청 태종은 이를 기념하여 삼전도비를 세우게 하여 지금의 석촌호수 인근에 세우도록 하였다.   

 

 

남한산성(南漢山城): 경기도 광주시, 성남시, 하남시에 걸쳐 남한산(480m) 을 중심으로 하는 산성(山城)이다. 병자호란 때 우리나라의 치욕적인 수난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대외정세에 둔감하게 대응한 국제정치의 실패의 결과이다. 난한산성의 역사는 백제의 수도인 하남위례성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조선 시대에 인조숙종 때에 산성을 증축하여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남한산성의 성벽국가사적 제57호남한산성은 1971년 경기도립공원 제158호2014년 세계문화유산 에 등재되었다. 남한산성에는 원성과 외성, 옹성, 4대문, 암문, 치, 장대, 포루, 수구, 단, 묘, 공해, 정, 사찰, 제당 등 많은 시설물과 행궁 있으며 그 중 성곽 ,수어장대,숭렬전,청량당, 현절사, 침괘정, 연무관, 지수당, 장경사, 망월사지, 개원사지, 남한산성 행궁이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주요 시설에 대한 간단한 개략을 알아본다.

 

성곽 : 원성과 외성으로 나뉜다. 원성은 하나로 연결된 본성이며, 외성으로 봉암성과 한봉성, 신남성이 있으며, 두 개의 돈대가 있다.
성벽: 원성은 높이가 약 3~7m내외다.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성문: 남한산성에는 남문(지화문_至和門), 북문(전승문_戰勝門), 동문(좌익문_左翼門), 서문(우익문_右翼門) 의 4대문이 있다.  
외성: 외성은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의 3성이 있다. 

옹성: 주 성곽에서 돌출 작은 성곽으로, 적군을 옆에서도 공격할 수 있다. 연주봉옹성, 장경사 신지옹성 등 총 5개의 옹성이 있다. 

여장: 성위에 낮게 쌓은 담이다. 몸을 숨겨 총이나 활을 쏠 수 있게 만든 시설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하부는 석재로, 상부는 전돌을 사용한다.    
암문: 암문은 적이 관측하기 어려운 곳에 만든 성루가 없는 성문이다. 남한산성에 16개가 있으며, 우리나라 성곽 중에서 가장 많다.

수어장대(守禦將臺): 장군의 지휘소다. 2층으로 되어있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남장대 터:  제2남옹성 바로 곁에 있다.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있다.  

동장대 터: 남한산성의 동쪽에 있던 장대로 수어청에 소속된 5영 중 좌영장이 지휘하던 동장대가 있던 곳이다.
남한산성행궁: 광주 행궁이라고도 불린다. 유사시 왕이 피난할 수 있도록 준비된 예비 궁궐이다. 총융사 이서의 계책에 따라 완성되었다.
숭렬전: 백제의 시조 온조왕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드리던 사당이다.

청량당: 수어장대 담 밖 서쪽에 있는 당집이다. 남한산성의 동남쪽 부분 축성 책임자 이회와 그 부인, 그리고 서북성 축조 담당 벽암스님의 혼령을 모신 사당이다. 이회는 모함으로 참수를 당했으나 후에 누명이 풀렸으며 이곳에 봉안되었다.
연무관: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다. 현재는 건물 복원 작업을 위한 주춧돌만을 남기고 있다.
장경사: 대한불교 조계종 조계사의 말사이다. 남한산성 내에 존재했던 9개의 사찰 가운데 당시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현존하는 유일한 절이다.
국청사: 남한산성 안의 산성리에 있는 절이다. 승군의 숙식과 훈련을 담당하고, 비밀리에 군기와 화약,군량미 등을 비축하였던 사찰이다

 

 

 

 

남한산성터널 지나기 전 '옛남대문매표소앞' 정류소에서:

 

산성터널 방향의 경치. 지나가는 길에 갓길 주차를 잠깐하였다. 시내버스 정류소가 있다. '옛남문매표앞' 정류소이다. 남한산성 종점에는 9번, 9-1번, 52번 버스가 있다. 대중교통이 편리하가. 남한산성역에 내라면 버스를 탈 수있다.

 

감시초소가 있는 곳은 성남 남한산성공원에서 계곡을 따라 오다 백련사를 거쳐 이 곳에 오르는 게단이 끝나는 지점이다. 

 

남문방향을 바라보다. 흐릿하다. 오늘 저녁 눈 소식이 있으며 날씨 상태가 좋지 않다.

 

 

남문 앞 주차장에 내려 산책 시작...

 

남문 들머리에 간이매점이 있다. 칡뿌리...와우 대단하다. 위장에 좋다는디...

 

주차장 방향을 바라본다. 이곳은 간이 주차장이다. 저 아래 산성마을엔 큰 대형의 주차장이 있다.

 

왼쪽의 건물은 '台原(태원)'  이란 간판을 걸어놓은 개인 주택이라고 한다. 건물 뒷편의 뜨락에는 무수한 장독대와 석탑들이 있었다. 저기 지화문(남문)이 보인다.

 

남한산성도립공원 안내판...

 

동문...지화문(至和門) 앞에서...

 

 

지화문을 나서면서 바라본 보호수...

 

보호수: 느티나무, 약 350년의 수령, 14~16M 높이, 0.9~1.37M 둘레....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 산 132-2 소재...

 

남한산성은 인조 4년(1626년) 완공 되었으며, 느타나무도 당시의 성곽사면에 심어 처페역할 및 토양 유실 방지 목적으로 심었다고 추정됨. 바로 옆의 순환도로터널 개통으로 페도가 된 이곳을 2006년 정비하였다.

 

 

수어장대가 있는 청량산 방향으로 바라본다. 견고하게 축성된 성 외곽을 바라보며 인간의 전쟁놀이를 생각해 본다. 위정자들은 그 중 특히 독재자들은 왜 전쟁을 택하여 민폐를 초래하고 민초들의 목숨을 희생 시키는가? 인류 역사상 계곡 반복 게임 같다. 성은 본질적으로 방어 목적이다.

조선 태종은 대외 사정의 악화로 사전에 전쟁 대비를 목적으로 조선의 수많은 곳에 산성을 구축하려는 구상을 하게 되었다.  

 

이 견고한 모양의 아치형 성문...

 

지화문 현판...평화에 이른다 뜻의 성문이다.

 

지화문...정조3년 성곽 개보수시 지화문이라 칭하였고 4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하다. 중심문이며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있는 문이다. 

 

 

넘문을 올려보면 성문이 극히 우람하게 보인다. 위풍당당하다. 위엄이 있어보인다.

 

성 아래 산책로...

 

 

 

 

 

남문에 올라서서...

 

청량산, 수어장대 방향을 바라보다. 남문을 기준으로 북서 방향이다.

 

남쪽 방향...저 성길 안쪽 길을 산책 하였다. 

 

성곽 보수 중...

 

성길을 오르다 뒤돌아 본다. 

 

 

휑한 하늘과 남한산성...멀리 흐릿하게 푸르게 보이는 산이 청량산이다. 그 위에 최고의 지휘소 수어장대가 서 있다.

 

편안하고 정겨운 길...무념무상으로 걸을 수 있다.

 

 

능선 고개를 오르며...

 

성을 보호하기 위한 시멘트 포장...성곽의 윗 부분은 물이 스며들지 않게 구축된다.

 

소나무 한 그루...독야청청하다...만물을 고요한데 움직이는 것은 오직 나 혼자다...바람도 고요하다...

 

성곽 능선 길을 걸으며 성곽 멀리 제2옹성을 바라본다.

 

검단산 방향..검단산은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면 검복리 산 99-10에 소재한다. 하남시에도 팔당호수 곁에 검단산이 있다. 성곽 복원 작업 중.. 

경기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과 광주시 중부면 불당리의 경계를 만든다.

 

 

 

 

옛날의 성곽을 보면 향수같은 것을 느낀다. 황성옛터란 유행가 생각이 난다.  

제7암문 위의 길...멀리 검단산이 보인다.

 

남문 방향의 경치...우측의 봉우리가 청량산 정상이다.

 

걸어온 성길...겨울의 성길...조용하기만 하다.

 

제7암문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 일종의 시멘트 차도이다. 차를 가지고 이곳으로 올라본 적이 있다. 산성마을 종로와 검단산을 이어준다....

 

서어나무...그리고 나무로 만들어준 새집...겨울의 스산한 기운이 느껴진다. 나뭇잎은 어디로 갔는가? 오직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나목(裸木)으로 서 있다.

 

제2남옹성의 측면 모습...왼쪽에는 남장대 터가 있다.

 

남장대 터...주춧돌만 남았다.

 

제2남옹성...튀어나온 옹성 부분이기 때문에 측면에서 성을 기어오르는 적들을 감시하고 공격하기 좋다.

 

광주 방향의 경치...광주 중부면 오전리, 불당리 방면이다...이 곳의 스카이라인이 머나먼 곳에의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제2남옹성 팻말...제2남옹성은 현재 밝혀진 옹성의 둘레가 318m 이며 옹성의 끝에는 동서남(東西南) 세 방향에 포대가 설치되어 있고, 한방향에 3문의 포혈이 설치되어 있다.

 

 

 

제2남옹성으로 통하는 암문이다.....

 

성남 은행동 방향...저 산아래 백련사가 있다. 그 아래 산길을 내려가면 남한산성 공원 입구이며 성남 시내이다.  

 

제2남옹성 앞에 또다른 옹성 공사...검단산과 그 위의 커다란 철탑이  보인다. 통신탑인가?

 

남장대 터 앞 이정표...<- 남문 0.7KM, -> 동문 0.9 KM, -> 개원사 0.6KM  

 

남장대 터...주춧돌만 남아있다.

 

 

소나무와 이정표...<- 지화문(남문), 좌익문(동문) -> ...

 

바라보고 싶은 성의 흐름....

 

키 큰 소나무와 멀리 청량산 줄기의 산  능선이 아름답게 보인다. 

 

 

제7암문... 이정표 ....<- 좌익문(동문), <- 남장대 터,  -> 지화문, -> 남한산성공원, -> 종로... 여기를 통과하여 검단산으로 들어간다.

 

 

제7암문에서 성길 대신 그 옆의 산길로 하산한다.

 

푹신한 걷기 좋은 숲 사이 산길을 내려오니 '태원'이란 개인주택 뒤 부분이다.  저기 수많은 장독들을....저런 엄청난 장독들은 처음 보았다.  

 

지화문(남문) 을 다시 보다. 건축미가 아름답다.

 

개인 집 뜨락의 석탑들....

 

 

비석 군....

 

지화문 을 다시 올려본다.

 

남문 초입...간이매점이 있어 산책객, 등산객, 탐방객들에게 편리하다. 하산 완료...

 

 

주차장...오늘 짧은 산책으로 산길을 좀 걸었다. 산길은 조용하여 언제나 좋다. 흐린 날씨를 배경으로 산천이 너무 조용한 것 같다. 쓸쓸하다.

인생의 노년기 모습과도 흡사하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아침에 눈 뜨면 잠깐이다. 

년말이다. 오늘 내일이 지나면 한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더한다. 새해의 건강과 희망을 마음 속에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