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아들아, 멈추어 있을 것 같은 시간이 흘러간다.
모든 사물이 사라지고, 떠오르고 멀어져 간다.
창밖의 푸른 하늘과 구름 한점도 멀어져만 간다
눈 아래 무수한 단독들이 몸을 기대어 모여있다.
그 언저리에 새로운 건물들이 나무처럼 키를 키우고 있다.
이처럼 사라진 공간에는 무엇인가 들어서게 된다.
생명은 약동으로 자라나며, 그리고 소멸함을 안다.
아들아, 너의 따스한 손길이 나의 손을 빠져나가
지금은 체온을 느낄 수 없다. 숨 쉬는 하늘도 서로 다르다.
언젠가는 떠날 것을 알았지만 현실감은 없었다.
6년전 설날의 가족 사진 한 장에서
오묘한 시간의 심연으로 들어가본다.
손에 손, 따스한 미소는 사진 속에서 피어나고 있다.
졸린 듯한 손자의 모습이 어렸을 적 너를 닮았구나.
멀리 불암산이 약간 흐린 모습으로 바라보인다.
불암산 정상의 태극기가 눈에 선하다.
며느리와 함께 했던 그 시간이 마음으로 다가온다.
서 있는 시멘트 건물들과 움직이는 길 위의 사람들,
빨리 달려나가는 차량들이 긴 흐름을 이루고 있다.
이런 분주함이 어떤 삶의 긴장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세상은 항상 거기 있는 것 같은데, 우리들은 멀리 있구나.
멀리 있는 풍경을 바라본다. 아스라하다. 우리의 흘러가는
강물은 어디쯤에서 다시 만날까?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기억이 희미해 지고 사랑이 마르면 서로를 알아 볼 수 있을까?
그리움으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북한강, 남한강이
양수리에서 만나 드넓은 호수를 이루지 않느냐?
마른 체구에 어린 아이를 업고 인천 철마산 아래 가좌동 길을 걸어가는
그 어머니는 세월의 주름과 함께 할머니가 되어 거실에 누워있다.
과거를 알지만 붙잡을 수 없다. 아름다운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창밖 하늘을 쳐다보며 희미한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다.
옛날의 시간들이 나무 숲으로 걸어가고 있다. 느린 보폭으로
나도 숲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 ( 2020.0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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