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급실 스케치 - (2015-01-29)
할미가
응급실에 갔다.
솜으로 코를 막고
얼굴에 붉은 수채화를
그렸다
링게르 꽂힌 팔을
힘없이 늘어뜨리고
두 눈을 껌뻑이며
천장을 쳐다보고 있다
치열한 전장의
야전 병상같은 곳에서
황망한 시선은
멀리 멀리 앞날을
바라보는 듯 하다
돐도 지나지 않은
손녀는 밝은 미소를 흘리며
이것도 신기하고
저것도 신기하다
아, 세상 참 기묘하다
리빙스턴이 신천지를
발견한 듯 하다
젊은 의사는
콧구멍에서
무슨 보물이라도 찾듯
열심히 무얼 찾는다
그러다 보석인가?
지직 인두로 지져버린다
경황없는 하루다
이것들 모두 기억의 방에
들어가 잠들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무인 고도의 깃발처럼
혼자 나부끼다
언젠가는 빛바랜
벽위의 풍경화로 걸릴 것이다
▒ 손자를 데리고 밖에 나갔다 어린이 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들어오니 집 사람이 코피를 쏟으며 한 손으로는 코를 막고 한 손으로는 손녀를 앉고 난리가 나있었다. 나도 정신이 없어졌다. 아침에 어린이집 가기 전에 손자를 병원 부터 데리고 갔었는데, 아차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온 것을 알았다. 엇그제에도 집사람이 코피를 많이 쏟았는데 어제는 괜 찮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자 마자 코피가 또 쏟아진 것이다. 한 20여분만에 겨우 지혈을 시켰는데 아침을 먹고 나니 또 다시 코피가 약간 흘렀다. 그래서 오전에 이비인후과에 가려고 했었는데 내가 없는 사이 코피가 마구 쏟아진 것이다. 집사람도 무척 놀라고 손녀를 데리고 어디를 뛰어갈 수도 없고 집에서 발만 동동구르고 있었던 것이다. 집은 마치 아수라장이 된 것 같이 피를 닦은 휴지가 산더미 같고 여기저기 피 흔적이다. 그래서 인근 대학병원에 응급실로 달려갔다.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치료받는 집사람이 가엽고 측은하였다. 그런데 함께 데리고 간 우리 손녀는 웃으며 너무 잘 논다. 이런 광경이 무슨 풍경화를 보는 듯 하였다. 아이쿠 조용할 날이 없구나. 이런 것이 삶인가?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겠다. 인생은 항상 새롭게 경험하고 배워가는 과정인 것 을 느낀다. 자식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자식 사랑을 알 것이며, 손자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손자 사랑을 알 것이며, 결혼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부부 사랑을 알 수 있다 하겠는가? 인간은 나이에 따라 배우는 바도 다르고 인생 경험도 다르기 때문에 노소를 떠나 항상 배우는 자세로 일관해야 마땅하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은 어떻게 지나 갔는지 모르겠다. 인생은 항상 예측 불허이다. 그래서 부처도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하지 않았던가. 고통의 바다를 항해 하는 것이 인생길이다.
▒ 코피 후기: 1/31, 이틀이 지난 오늘 다시 집사람으로 부터 그날의 코피 상황을 이야기 들었다. 코피가 얼마나 많이 흐르던지 주루륵 주루륵 하고 피가 막 목으로 넘어가는데 말도 못 하겠고 손녀는 있는데 혼자서 주변에 전화해도 통화중 모두 받지는 않고 남편에게는 연락이 안되는 정말 악몽같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119를 부르면 손녀가 놀랄 것 같아 부르지도 못 하고...정말 아찔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내가 그날 아침 상황을 좀 안이하게 본 것이 잘못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병이 아니면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 할 수 있다. "내가 어린애와 함께 갑자기 잘 못 되서 어쩌지도 못 하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폭포수 같은 코피....지금 우리 자녀들도 그런 심각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도저 하지 못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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